[Review] 상상이 현실을 지워버린 곳-네더

글 입력 2017.09.0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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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네더>를 보고 난 뒤에 기운이 쫙 빠지는 것을 느꼈다. 상당히 밀도 있는 연극이었고 대사도 굉장히 함축적이고 상징적이어서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무대 연출은 굉장히 단촐했는데, 앞부분은 현실세계를 그리는 테이블 하나와 가상세계를 상징하는 단상이 있었다. 간결한 것으로 굉장히 심오하고 철학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연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더>는 수사극의 형식으로 사건에 연관된 인물들의 갈등을 가장 좁은 공간에서 생생한 대사로 구축해 낸다. 배경설명이라든지 인물에 대한 소개가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은 상태로 플롯이 내내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인물 혹은 상황에 대한 궁금증을 즉각 해소 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양의 대사에 집중해야 한다. 연극 후반부에 굉장한 반전이 있는데 그 반전을 향해 배우들과 관객들이 서로 술래잡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유추할 수 있을 듯 아닌 듯 헷갈리는 상황이 계속된다. 이런 큰 틀 안에서 예리한 질문을 시도 때도 없이 던지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무대 후반부는 가상현실 세계이다. 사용자들이 로그인을 통해 ‘네더’라는 가상현실로 들어가고 도 다른 자신을 창조해 원하는 욕망을 마음껏 누린다. 이 세계에선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까지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되어있다. 현실세계와 다름없는 감각들을 경험 할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오직 다른 것은 네더에서는 자아의 모습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고 원하는 욕망을 언제든 실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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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부터 매우 위험해진다. ‘파파’라는 아이디를 쓰는 심즈는 소아성애나 살인과 같은 극단적 환상을 만끽하도록 유저들을 유도하면서 수익을 낸다. 심즈는 19세기 풍속과 취향을 더욱 현실처럼 설정한 뒤, 가장 은밀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형사 모리스는 네더에서의 범죄 행위도 마땅히 처벌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상세계에서의 범죄는 처벌 가능한 지점에 있는가? 심즈는 자신이 소아성애자인 것을 알고 현실 세계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가상세계에 몰입하는 것이라 변명한다. 글쎄, 이 주장부터 당위성을 갖기는 힘들다. 그는 아이들의 보호를 위해, 자신의 충동을 현실세계에서 표출하지 않기 위해 네더로 접속하는 것이라는 말로 자신의 도덕성을 변호해 본다. 그러나 그는 단지 현실세계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따르는 사회적 책임과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 가상세계에 접속한 것이다.

또한 그곳에 심즈가 상대해 온 어린아이들이 사실은 캐릭터만 어린아이일 뿐 현실세계에선 어린아이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인격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결국 아이리스가 원한 건 진정한 관계였고 가상세계를 넘어선 사랑이었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그것이 진심이 될 땐 궁극적으로 상대방이 나에 대해 전인격적으로 인정해 주길 원하는 마음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곳에서의 관계는 현실세계의 자아를 외면하게 하거나 현실세계의 자아를 인정받지 못해 상처를 받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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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함부로 단언할 수 없는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만약 심즈가 다른 유저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가상 캐릭터를 두고 범죄를 저질렀을 때 우리는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심즈가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심즈 그 자신이 점점 망가지는 결과가 오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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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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