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의 이야기. 연극, 길 떠나는 가족.

글 입력 2014.07.0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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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떠나는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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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흐라 불리는 천재화가 이중섭의 예술을 표현한 작품이다.
뛰어난 실력과 독특한 자신만의 화법에도 불구하고 세파와 개인적 고통속에서 요절한 비운의 예술가다. 담뱃값 속 은박지 위에 그린 은지화를 비롯해 독창적 화법으로 근대 한국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그의 모습을 연극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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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를 그리는 아이, 이중섭.


소와 흰소 작품이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그림 속의 소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지만, 건드리면 즉각 반격하며 분노를 토할 듯하다. 재료적 질감에서도 그 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역동성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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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부터 공연되어 이 달 13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이중섭 역의 지현준은 연극 속에서 이중섭의 대표작 [흰 소]를 그리고, 배우들은 평면의 달구지를 타고 그림 [길 떠나는 가족]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한국 전통음악에 다양한 장르 결합을 시도하는 월드뮤직 그룹 반(VANN)이 라이브 연주로 극의 감흥을 더한다.

2016년은 이중섭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마흔 살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의 삶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은 그의 작품은 지금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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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난 자유로워져. 누구도 내 그림을 간섭할 수 없어.”





[ 이중섭의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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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덕 군
 
빨리빨리 아고리의 두 팔에 안겨서 상냥하고 긴긴 입맞춤을 해주어요.
  언제나 (지금도) 상냥한 당신 일로 내 가슴은 가득 차 있소.
하루빨리 기운을 차려 내가 좋아하고 좋아하는 발가락 군을 마음껏 어루만지도록 해주시오.
아! 나는 당신을 아침가득히. 태양 가득히. 신록가득히. 작품가득히.
사랑하고 사랑하고 열애해 마지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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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태성에게
 
  그간 잘 있었니?
  아빠가 보낸 그림을 보고...
  "우리 아빠 최고다아 "하고 엄마에게
      애기했다지.
     아빠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더 재미있는 그림을 자꾸자꾸
  그려서 보내주마.
 
  태현 형이 공부할 때는 방해가
  안 되도록 밖에 나가 놀도록 해요.
         

    -   아빠 중섭 -




편지 속에서 그의 사랑이 느껴진다. 멀리 있어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상황. 그리움이 짠하게 느껴진다. 그의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작품활동의 고통과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 국민화가 이중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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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에게 있어 그림은 그의 생존과 생활과 생애의 전부였다.”


황소와 물고기, 아이들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국민작가 이중섭(1916~1956).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아버지를 5살에 여의었지만 넉넉한 집안 사정과 어머니의 각별한 애정으로 비교적 순탄한 학창시절을 보낸다. 이중섭이 살던 지역은 옛 고구려 벽화가 남아있던 곳으로 어릴 적부터 그 벽화들을 보며 기법을 익혔다고 하는데 특히, 논밭 주변을 거닐며 쉬고 있는 소를 관찰하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이중섭의 재능을 알아본 화가 임용련의 권유로 도쿄제국미술학교를 거쳐 문화학원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그는 운명처럼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게 된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원산으로 돌아온 그를 뒤따라온 마사코에게 ‘이남덕’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고 결혼식을 올린다. 행복도 잠시, 6.25 전쟁이 일어나 남북이 갈리자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금지하는 북한 정부를 피해 어머니를 북에 두고 남덕과 아이들, 조카 영진이를 데리고 월남한다. 자애로운 어머니, 든든한 형의 그늘 밑에서 세상과는 담을 쌓고 그림 그리기에만 열중하던 그가 졸지에 가족을 이끄는 가장이 된 것이다. 돈 버는 재주는 전혀 없는 그에게 연고 하나 없는 피난민촌에서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것은 이중 삼중의 버거움이었다. 막일을 하면서 어쩌다 번 돈도 그간 얻어먹기만 한 친구들을 위해 술값으로 대주다 보니 정작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돈은 모을 수 없었고,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덕은 결국 일본행을 택한다. 가족들과 다시 만나기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열지만 설상가상으로 그림을 판 돈을 제대로 수금하지 못해 더 큰 충격을 받아 심신이 지쳐버린 그에게 정신분열증세가 나타났고, 그는 음식과 그림, 남덕의 편지도 거부한 채 세상을 하직할 준비를 한다. 간염으로 적십자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후인 1956년 9월 6일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로 그는 그렇게 세상과 이별한다.

작년 유족들의 경매 출품 위작 논란으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매년 학술세미나, 미술실기 대회, 시낭송 무대 등으로 구성된 이중섭예술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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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에는 '이중섭 거리'와 '이중섭 공원'이 있다. 이중섭 미술관도 있고 이중섭의 거주지도 있다. 현재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주변에는 건축카페와 창작스튜디오 등 예술의 거리가 잘 조성되어 있다. 주변 거리를 걷다보면, 제주도 방문에 더욱 의미있는,, 아름다운 제주를 만날 수 있다.

 주말 오전 10에는 이중섭 미술관 앞에서 해설사와 함께  제주와 서귀포에 대한 역사 그리고 문화탐방을 할 수 있다. 숲과 바다 그리고 해안 코스로 나뉘어져 있다.





- 찾아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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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예술극장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35

을지로입구역, 명동역 6번출구에서 이동.











(출처 : 검색포털 외 )

[하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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