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무가 그리워, 연극 '네더' 속 나무의 의미 [연극]

가상세계에서의 윤리적 한계는 어디까지 허락될까, 욕망을 채워도 나무가 그리운 이유
글 입력 2017.08.2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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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토요일, 연극 네더를 관람하기 위해 대학로를 찾았다. 네더는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3관에서 상영 중이며 가상현실과 실제 삶의 관계에 대해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본격적인 리뷰를 시작하기 전 아래에 네더의 시놉시스와 상세 설명을 첨부한다. 조금은 어려운 주제의 연극이기 때문에 필자의 리뷰를 보기 전 아래의 자료를 먼저 읽으면 이해가 조금 더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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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무대 위는 가까운 미래,
인터넷 다음 세상의 어디.

사용자들은 로그인을 통해
‘네더’로 들어가고
또 다른 자신을 창조해 원하는
욕망을 마음껏 누린다.

이런 세상에서 형사 모리스는,
소아성애나 살인과 같은
극단적 환상을 만끽하도록 유도하면서
수익을 내는, ‘은신처’의 존재를 파악하고자
소유주인 심즈를 심문한다.

‘파파'라는 아이디를 쓰는 심즈는
19세기의 풍속과 취향을
현실보다 더욱 현실처럼 설정한 뒤,
가장 은밀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인물.

모리스는 그 공간의 불법성을 감지,
심즈의 범죄를 추적해 들어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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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더_포스터_도일.jpg
 


실제와 가상을 잘 표현한 무대


  연극에서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가상과 현실의 공간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주는 무대디자인이었다. 2014년에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무대디자인 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가상과 현실을 한 공간에 함께 구성했지만 뚜렷하게 구분되면서도 한눈에 잘 보이게 만든 부분이 인상 깊었다. 테이블이 있는 곳은 현실 세계의 모리스가 심즈와 도일을 추궁하게 되는 공간이며 그 뒤의 액자 같은 공간은 가상 세계인 네더의 공간이다. 액자의 공간은 때로는 모리스가 확인하는 태블릿 PC의 모니터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면서 주인공들이 그 위에서 연기하게 되면 가상 세계인 네더의 공간으로 변한다.

  상황에 맞게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액자 안의 모습을 바꿔가며 공간을 최소화 한 부분은 사람들이 직접 무대의 세팅을 바꿔 가는 것 보다 시간과 수고를 덜어주어 배우에게도, 관람객들에게도 극의 흐름이 끊기지 않아 좋았다. 또 빔을 이용해 연출한 부분이 가상 세계의 디지털적인 느낌을 더 살려주어 극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했다. 네더를 관람하게 된다면 무대 디자인의 연출에 집중하며 감상해도 좋은 참고와 경험이 될 것이다.


네더_장면사진1.jpg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테이블 세트 뒤로는 가상 세계인 네더를 의미하는 액자형 무대가 있다.

네더_장면사진7.jpg
가상 세계인 네더의 공간임과 동시에 모니터 역할을 하는 액자형 무대



네더에서의 나무의 의미


  우리가 살면서 나무를 그리워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우리 주변에는 항상 나무가 있고, 길을 거닐다가도 쉽게 나무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네더’의 주인공 아이리스는 실제 나무를 그리워한다. 아이리스의 방과 주변은 온통 숲속 같은 모습인데도 말이다.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네더’는 가상현실의 세상으로, 상상이 현실을 지워버린 곳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네더에 있는 모든 것들은 가상의 세상이다. 실제로 만질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닌 가상의 무언가다. 실제로는 채울 수 없는 실물에 대한 갈증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익명으로 네더에 접속하고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이 비윤리적이고 불법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렇게 네더에서 현실의 윤리에 반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네더에는 형사가 있다. 모리스가 바로 그 역할이다. 연극은 형사인 모리스가 도일과 심즈를 심문하는 장면이 주가 되어 이루어진다. 도일과 심즈는 현실 세계에서는 범죄자다. 심즈는 소아 성애를 사업 아이템으로 삼고 어린 아이리스를 이용해 많은 고객을 유치한다. 그 속에서는 성매매, 살인 등의 끔찍한 일도 벌어진다. 도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소아 성애라는 중대한 범죄를 네더라는 가상 현실에서 자행하는 두 사람은 자신들의 행위를 묵인하고, 정당화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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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겪는 모리스와 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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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하는 모리스와 심즈


  가상의 세상에서도 금기는 있다는 형사 모리스와 자신들의 욕망을 네더에서조차 억압당한다면 살 수 없다고 호소하고, 화내는 도일과 심즈의 대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본적 윤리와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범죄의 분야인 소아 성애, 성매매 등은 네더의 세상에서도 불법으로 간주하여야 할까?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은 가상의 세상에서도 침묵해야 할까? 그들에게 현실밖에 답이 없다면 그들은 범죄자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네더에서라도 그들의 욕망을 풀어야 하는 것일까? 네더는 형사의 예리한 심문과 이에 반응하는 도일과 심즈의 장면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높여간다.

  연극을 보기 전에는 현실에서는 윤리적으로 금기되는 욕망을 네더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금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아이리스의 “나무가 그리워.”라는 호소는 이런 나의 마음에 고민을 더했다. 아이리스는 심즈가 구해온 실제 나무 묘목을 보고 뛸 듯이 기뻐한다. 실제의 나무가 그립지만, 현실에서는 살아갈 수도 없고 인정받을 수 도 없는 아이리스의 호소는 나에게도 윤리와 욕망 사이에서의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답이 있음에도 고민하는 내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감정이 이입되는 것을 보니 미래의 가상세계에 대한 규칙이 절실하다고 느껴졌다. 이러한 고민은 등장인물 중 ‘우드너’를 통해 잘 드러난다. 네더의 불법 공간을 고발하기 위해 심즈와 아이리스의 불법 공간으로 잠입한 우드너는 아이리스에 크게 동요하고 그 공간에 매력을 느끼고 심지어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본분을 잊지는 않고 공간을 고발할 주요 단서들을 제공한다. 나는 마치 우드너가 된 기분으로 현실의 범죄와 가상세계에서의 욕망 속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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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는 네더의 공간에서 나무를 그리워한다.


  네더에서의 이 나무의 역할은 머지않아 네더와 비슷한 가상 세계를 가질지도 모르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윤리적 물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가상 현실은 절대로 현실의 것들을 다 채울 수 없다고 일깨워 주는 장치와 같다. 나무를 그리워하는 아이리스의 모습은 가상에서 욕망을 채울 순 있을지라도 그것이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완전하다는 의미는 윤리적으로 옳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가상이 아무리 실제와 비슷해도 절대로 실제일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열심히 글로 설명했지만, 극을 실제로 접하지 않는다면 “나무가 그리워.”라는 대사에 필자처럼 깊게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히 글로 표현한 이 리뷰가 무대에서 화내는 심즈와 도일의 모습, 동요하는 모리스와 우드너, 그리고 천진난만한 아이리스의 웃음 등을 실제로 보고 듣는 것과는 확연히 다를 테니까. 많은 사람이 이 연극을 보고 ‘나무’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 줬으면 좋겠다. 필자가 느낀 나무의 의미를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느꼈을지, 다르게 해석했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또 이 리뷰에서는 다 말하지 못한 인물에 대한 반전이 있으니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연극을 실제로 보기를 권한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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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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