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 내리던 휴일, 충청북도 제천으로 향한 이유 [여행]

제천 당일치기 여행기
글 입력 2017.08.27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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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데 부담을 느끼는 나는 당일치기 여행을 선호한다. 꽤 오래전 바다를 보고 싶어 무작정 강릉으로 떠났던, 나의 무모함을 흔쾌히 이해해주는 친구와 함께 충청북도 제천으로 두 번째 여행을 다녀왔다.
 
제천을 가자고 제안한 건 친구였다. 서울에서 가까운 춘천에서 닭갈비를 먹고 배를 채우길 원했던 나와 달리 친구는 휴일을 알차게 쓰길 원했던 것이다. 우린 9시 20분 우등버스를 타고 제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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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졸다 눈을 떠보니 제천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빗방울이 이마를 적셨다. 우산을 펼치고 잠시 고민하던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식당으로 갔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침 일찍 나온 탓이다.
 
1인당 7,000원만 내면 갖가지 한식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한식뷔페 ‘다담뜰’에 도착해 정신없이 먹었다. 호박이 특히 싱싱하고 맛있었다. 접시를 여러 번 비워가며 서서히 에너지를 충천했다. 무거워진 몸이 느껴질 만큼 충분히 배를 채우고 제천중앙시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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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비도 와서 그런지 시장은 썰렁했다. 네덜란드의 한적한 마을이 연상되는 모습에 잠시 옛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찰나에 한쪽 신발끈이 떨어졌다. 친구는 샌들끈이 조인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타이밍이 참 기가 막혔다. 결국 난 나머지 한 쪽 끈을 잘라 슬리퍼로 개조했고 친구는 문을 연 약국을 찾지 못해 편의점에서 밴드와 연고로 응급처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비오는 날 사서 고생을 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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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행은 계속됐다. 다시 택시를 타고 교동민화마을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꽤 있었다. 우산을 든 채 벽화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세련되진 않았지만 제천만의 특색이 드러나는 벽화를 여럿 볼 수 있었다. 대차게 내리는 비가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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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제천의 대표적인 명소라고 할 수 있는 의림지에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폐막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일회용 우비를 뒤집어쓴 자원봉사자 무리들은 부스를 지키거나 무대를 손보는 등 바쁘게 돌아다녔다. 덩달아 기운을 내고 싶었지만 ‘비’라는 녀석이 참 무섭다는 걸 느꼈다.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여러모로 지친 우리는 카페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고구마 라떼를 먹으며 몸을 녹이고 나니 잠이 솔솔 왔다. 집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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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줄을 겨우 잡고 의림지를 본격적으로 구경했다. 우비를 입으니 추위가 덜 느껴졌다. 비가 더 내리고 결국 폐막식 장소까지 변경되는 참사가 일어났지만 우리는 꿋꿋이 의림지 전체를 둘러봤다. 정자에 올라가보기도 하고 동굴 사이로 폭포를 보기도 했다. 떨어져가는 체온과 상관없이 의림지의 공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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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마찬가지로 마무리 역시 음식 이야기다. 의림지를 다 둘러보고 ‘석향정’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옆을 보니 끝없이 올라간다는 바이킹으로 유명세를 탄 ‘의림지 테마파크’의 모습이 보였다. 낡고 쓸쓸했다. 배고픔이 더욱 몰려왔고 없는 힘까지 끌어 올려 마침내 석향정에 도착했다. 맛있었다. 부드럽고 담백하고 맛있었던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
 
나의 제천 여행기는 여기까지다. 석향정에서 저녁을 먹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폐막식을 살짝 엿본 뒤 서울행 버스에 올라탔다. 이날, 친구는 왜 하필 제천을 선택했을까? 아, 원망한다는 뜻이 아니다. 제천과 비는 묘하게 어울린다. 특히 드넓은 의림지 호수의 모습과 조화를 이룬다. 친구의 혜안(?)에 박수를 보내며, 다음번 방문엔 쨍쨍한 햇빛을 받으며 돌아다녀보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다.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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