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 출판저널의 30주년. 세상은 바뀐다. 그래서 그들은 고민을 한다. - [문학]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어릴 적 내 꿈은 '교수'였다.
글 입력 2017.08.2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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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꿈은 역사 교수!!!
이제는 빛바랜 '나의 꿈'. 뒤에 보면 2008년이라고 쓰여져 있다. 초2 때이다.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어릴 적 내 꿈은 '교수'였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교수같이 똑똑한 사람이 되면 글을 많이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글을 좋아한다. 아주 많이. 그래서 자기소개할 때 '글쓰기'라는 단어를 빠트리면 섭하다. 처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자기 소개를 하고 나면 '아 소설을 쓰는 걸 좋아하겠구나'라고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소설과 다르다. 나는 낭만적인 문학소녀는 되어 주지 못한다. 내 눈이 꿈 속에 있는 것을 지긋지긋해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문학은 나를 마구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랑스러운 분야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문학이 아닌 것, '비문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까지 말하면 사람들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신다. '엥???왠 비문학??' 하고 말이다.

비문학의 무엇이 좋냐고 물으신다면, 수많은 글자들이 글쓴이의 손끝에서 우연히 만나 그토록 아름다운 의미를 현실 속에서 말 그대로 '구현한다'는 점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나는 마음에 드는 비문학 책을 만나면 '으힣힣힣히' 라는 변태같은 웃음을 지으며 (친구들은 깜짝 놀란다) 어떻게 이 부분에 이 단어를 넣을 생각을 했는지 글쓴이의 그 생각과 그 글의 아름다움을 하루종일 생각한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분명 이것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까지도 비문학이 쓰이고 읽히는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학기 중 전공과목 책보다 끼고 살았던 교양과목 책의 일부분을 소개해 보겠다.


인간은 두 경향의 현대미술가들이 상정했듯, 뿌리를 끊고 공허한 세계로 비상할 수 있는 정신적인 존재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정신을 버린 채 직접성의 대해에 뛰어들 수 있는 자연으로서의 존재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 미술론 강의, 오병남 지음.


미술의 추상 형식주의와 추상 표현주의에 대한 논리를 30지면을 할애해서 차곡차곡 쌓아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내던진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내가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직접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시험공부 도중 울 뻔 했다. 너무 아름답다. 이런 글을 읽을 때 황홀한 맛이 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책의 맛이다.

내가 어릴 적 처음 '비문학'을 접한 매체는 잡지였다. 위즈키즈나, 어린이 과학동아 같은 것 말이다. 그 속에는 소설도 있고 시사 논평도 있고, 잡다하다. 잡지 (雜誌) 를 한자 그대로 해석해 보면 '잡다한 것을 잡다한 방식으로 기록한 종이'다. 잡다한 글을 접하게 해 준 잡지는 어떻게 보면 나에게 '책의 맛'을 알게 해 준 스승님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기회에 읽게 된 30년 된 잡지, 출판 저널의 뼈저린 고민이 깊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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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스스로를 반성해보자면, 하루 종일 책 속에서 읽는 활자와 정보의 양보다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에서 읽는 활자와 정보의 양이 훨씬 많다는 것을. 그리고 변명거리도 있다. 나는 이 '아트인사이트'라는 사이트를 페이스북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게다가 지원 시기까지도. 거기다 PPT 다루는 법, 교외 활동, 맛집 정보는 페이스북에 다 나와 있다. 스크롤을 아래로 쭈욱 내리다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나온다. 그런 취향을 좋아할 만한 친구 이름을 끄집어 내 태그하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종종 나도 그 끄집힘을 당한다. 덕분에 멍 때리다가 이유 없이 불안해질 때, 페이스북 알림이나 카카오톡 메세지를 확인하면서 그 불안이 안정된다. 왜냐하면 그 세상에 있으면 몇 시간이 우습게 '순삭'되기 때문이다. 쉽고, 빠르며, 단순하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나는 20년 후 내가 읽으면서 황홀해 마지 않던 그 아름다운 비문학들을 지킬 수 있을까? 비문학은 그때까지 이 지구상에 있어 줄까? 생각없이 모바일 라이프를 헤헤 거리며 즐기던 어느 순간에, 이런 물음이 들었다. 자각한 것에는 계기가 있었다. 위에 인용한 그 아름다운 글을 쓰신 노교수님은 내가 수업 쉬는시간에 핸드폰을 볼 때마다 '무슨 핸드폰을 그렇게 자주 보니?'라고 물으셨다. 수업을 녹음하느라 우연히 녹음된 내 대답은 이것이었다. '얘들이 제 상황을 궁금해 해요.' 노교수님은 나를 이해하시려는 듯 침묵에 빠지셨다. 매번 이해하시려는 듯 내가 핸드폰을 꺼낼 때마다 물으셨다. 무슨 핸드폰을 그렇게 자주 보냐고. 종강 할 때까지 그러셨다. 미학 교수님이셔서 그런지 가끔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내 행동을 연관지어 보시기도 하셨다. 끝내 이해하시지 못하셨다. 나는 나의 아름다운 글과 멀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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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저널 30주년 잡지의 구성은 이런 나에게 이 잡지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도록 했다. 에세이 코너에는 소설 같이 아름다운 한 책방이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경영난을 겪었음을 전달한다. 나는 그 모습이 내가 좋아하는 '비문학'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아름다워 추앙할 만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가 없어 존재 자체가 불안불안한 모습 말이다.

O2O, O4O라는 단어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나에게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단어들이다. 지난 학기에 그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제를 한 학기 내내 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칼럼 중의 문장을 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오프라인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미래의 독자들에게 더 큰 흥미와 재미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매장이 될 수 있도록 스마트하게 진화해 나가야 한다. 공간의 가치가 새로운 출판의 희망이다.


미래에는 글쓴이와 독자 사이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매장이 필요하게 되겠구나. 그것을 내가 두드러기 날 정도로 끔찍해하는 내 잘못된 선택,  현재 진지하게 전과를 고민하는 내 전공인 경영학이 지배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좋아하는 '비문학' 자체의 흥미와 즐거움은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인터뷰 부문에서는 내가 살아온 삶보다 더 오랫동안 책밥의 힘으로 살아오신 분들 - 한 분은 전통 방식을 지키고(신중현 학이사 대표) 다른 한 분은 색다른 방법을 도전한다(서영택 밀리의 서재 대표) - 과의 인터뷰가 있다.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을 취재하는 '인터뷰'라는 부문이 첨예하게 이 잡지의 고민과 맞물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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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전과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철학과로. 왜냐하면 철학은 내가 생각하는 '비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장난식으로 말했듯, 내가 사랑하는 '비문학'은 보편적인 무언가를 정말로 지니고 있으며 그 보편적인 무언가는 현 시대에서도 의미가 있을까? 즉 아직은 경영학도이므로 경영학적 언어로 말하자면, '수요가 충분히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철학과를 졸업해서 내가 만들어낼 생산물은 현 시대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즉, '그들의 니즈에 충분히 부합할까?' 내가 던진 물음과 그 물음에 끼워 맞춘 경영학적 언어는 잘 들어 맞는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자각밖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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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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