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와 당신의 이야기- ‘4등’ [영화]

글 입력 2017.08.26 16:4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한때 한국 수영의 기대주였던 수영 천재 광수는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자만과 객기로 똘똘 뭉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일로 인해 코치에게 체벌을 당한 후 분한 마음에 수영을 그만두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별 볼 일 없는 동네 수영 강사로 지내던 광수는 수영을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은 작은 소년 준호를 만난다. 처음에는 준호에게 별 관심이 없던 광수는 준호의 잠재력을 알아본 후 그를 훌륭한 선수로 키워내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겪었던 것처럼 똑같이 준호를 가혹하게 체벌하기 시작하고, 반면 그저 수영이 하고 싶은 아이 준호는 광수의 체벌로 인해 과거 광수가 그랬듯, 천천히 시들어 간다.


movie_image.jpg
 

 끔찍하리만치 무섭다. 그리고 아무도 주인공에게 ‘괜찮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4등’ 속에 펼쳐진 세상은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지만, 호러 영화보다 더 무섭고 고어 영화보다 더 잔인하다. 결코 머나먼 곳의 공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4등’은 결국 나와, 당신과,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겪었거나 겪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movie_image9OISCUQY.jpg
 

‘1등’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영화 내내, 이 혹독한 세계가 가르쳐 준 1등이 가진 의미를 아는 어른들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시선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그저 수영이 하고 싶은 준호에게 레인을 따라 물살을 가르는 과정은 자신이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저 ‘행복한’ 것. 목적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준호를 둘러싼 어른들은 그렇지 않다. 가혹한 체벌을 통해서라도 준호는 반드시 1등이 되어야만 한다. 수영은 ‘1등’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고, 레인을 따라 물살을 빠르게 가르는 준호의 모습을 지켜보며 ‘더 빨리, 더 빨리’ 소리치고 1등을 하라며 다그치는 준호 엄마의 모습은 어느 영화의 악역보다도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물살을 가르는 아이가 마치 경마장을 달리는 경주마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로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1등’의 의미란 어른들의 이루지 못한 욕심이 투영되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답습되는 하나의 오래된 관념적 산물이 아닐까. 영화는 내내 아이와 어른들의 모습을 오버랩하며, ‘1등’의 의미에 대한 강렬한 물음을 던진다.





4등-1.jpg
 

레인을 가로지르는 것

“니, 수영은 왜 시작했노?”
“놀려고….”

 당연스럽지만 소심한 목소리로 준호는 대답한다. 준호에게 물 속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준호는 물 속 깊이 잠수를 해, 창을 뚫고 산란되어 물 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손으로 움켜쥐듯 만져보는 것을 좋아한다. 물 속 깊은 곳, 햇빛은 레인을 구분하지 않고 어느 곳에나 찬란하고 따뜻하게 비친다. 1등이 전부가 되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물 표면이 아닌 깊은 물 속, 그리고 그 깊은 물 속에 내리쬐는 햇살. 그리고 레인을 가로질러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헤엄쳐 가는 것. 이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누구나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할 ‘당연한 행복’을 누릴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대부분은 ‘1등’이라는 이정표를 명목 삼아 그 동안 이 당연한 행복에 대한 권리를 침해 당해 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는 비단 준호와 체육계의 얘기만이 아니다. 좁은 입시 문을 통과해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수많은 학생들, 대기업 입사를 위해 현실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취준생들…. 결국, 준호의 모습에는 모든 ‘우리’들의 어제와 오늘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어가 된 것처럼 자유롭게 헤엄치는 준호의 모습이 너무나 평범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다.





4등-3.jpg
 

결국은, 반짝반짝 빛나는

 앞서 말했듯 누구도 1등이 아닌 준호에게 ‘괜찮다’는 말 한마디 끝끝내 건네지 않지만, 아이는 다시 혼자서 수영을 시작한다. 체벌을 계속하는 코치 광수도, 자신의 욕망을 아들을 통해 채우려는 엄마도 더 이상 없다. “엄마, 난 수영이 좋은데. 난 꼭 1등만 해야돼?” 준호가 힘겹게 입을 열어 그 말을 조심스레 건넸을 때, 엄마 정애는 무너지듯 눈물을 흘린다. 1등을 위한 수영을 하지 않겠다는 준호는 그렇게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대회를 준비한다.

 그리고 영화 말미, 준호의 시선에서 담겨진 수영 대회 장면에서 그때서야 비로소 아이는 자신과 물을 제외한 그 어느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자신만의 수영을,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친다. 영화는 이를 준호가 마치 경쟁자 없이 홀로 물 속에 있는 것처럼 레인을 넘나들며 유영하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이후 그 자체로 ‘행복하기만 한’ 수영을 마치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준호는 이윽고 자신 이름 옆에 1등이라고 적힌 전광판의 글자를 본다.

 결국 영화는 내가 스스로 원했기에 얻은 오늘의 ‘1등’이 지닌 특별한 의미에 대한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던지며 이 세상의 모든 준호들에게 희망 어린 따뜻한 응원을 전한다. 그렇게 준호는 내내 반짝반짝 빛날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 모두 또한, 언젠가는 반짝반짝 빛날 것이라고.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4등')


[김현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