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루한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은 무엇?

그림책 '사라질 거야' 리뷰
글 입력 2017.08.20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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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난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었던 것 같다. 학교 가는 게 즐거웠고 숙제하는 짧은 시간을 빼면 학원을 다니는 일도 나쁘지 않았다. “TV를 너무 많이 본다”는 이유로 3학년 때 집에 있는 TV를 치웠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힘들어한 건 리모콘을 독점했던 아빠였다.
 
해야만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때는 오히려 더 나이를 먹고 나서였다. 세상의 많은 즐거움을 맛본 나에게 따분하게 앉아서 과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의자가 N극이라면 내 엉덩이도 N극이었다. 서로를 끔찍이 싫어한 게 분명하다. 엊그제도 열람실 의자에 앉아있다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휴게실로 향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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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그림책 ‘사라질 거야’(안세정 글, 조현상 그림)는 오히려 나를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반복적으로 해오던 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집어던지고 ‘사라지고’ 싶은 내 모습이 겹쳐졌다. 상황도 유사했다. 특히 ‘자기 싫은데 억지로 자야 한다’는 부분에선 공감이 극에 달했다. 내일 아침을 위해 오늘 밤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여유를 포기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 소년은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해 ‘사라지면 일어날 안 좋은 일들’까지 고려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권태로운 일상, 뜻하지 않은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고난을 겪게 하는 원동력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부분이다.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던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며 힘을 내는 것이다.
 
지금은 힘들더라도,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더라도 누리고 있는 것들, 너무나 당연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를 둘러싼 긍정의 힘을 믿어보자. 조금만 견뎌보자.


P.S. 등장인물의 입체적인 모습, 책장의 독특한 질감도 눈여겨 보면 좋다.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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