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의 낭만 : 왕가위와 홍콩영화 [영화]

글 입력 2017.08.1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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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낭만 : 왕가위와 홍콩영화


후덥지근한 공기가 턱 밑까지 차오르고 끈적한 땀이 등을 타고 내릴 때면 홍콩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오른다. 사람으로 가득한 왁자지껄한 시장통, 비가 쏟아져 내리는 밤거리의 연인들, 정신없는 식당의 부엌 속 소리지르는 요리사들.. 왕가위는 이러한 여름의 열기를 아름답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영화 속으로 끌어와 관객의 뇌리를 건드린다. 여름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왕가위의 영화를 찾게되는 것이 그러한 이유이다. 시원한 선풍기, 에어컨 앞에서 마주하는 왕가위의 영화는 여름의 낭만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준다. 예민한 감성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그의 영화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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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1990)

장만옥(수 리첸 역)과 양조위(초 모완 역)가 펼치는 은은하고 미묘한 사랑을 그린 화양연화는 지금까지도 멜로영화 계의 고전으로 자리잡고 있는 영화이다. 각자 배우자가 있는 이웃주민으로 서로에게 격식을 차리던 사이에서,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된 후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 도도하고 남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것보다는 개인적인 생활을 중시하는 리첸과 꿈을 잃고 현재에 공허함을 느끼던 모완은 서로의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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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완은 오랜 꿈이었던 무협소설 지필에 도전하게되고 리첸은 그에게 조언도 하고 도와주게 된다. 주변 사람의 시선과 구설수를 걱정하며 서로 시간차를 두고 건물에 들어가거나, 만남 장소를 따로 만드는 등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외도를 한 자신들의 배우자와 자신들을 구별지으며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은 커지지만 용기가 없는 그들의 사랑은 더욱 고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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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의 영화는 특유의 독특한 사운드 트랙으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화양연화에서는 리첸과 모완이 스칠 때마다 '유메지의 테마'가 흘러나온다. 이와 더불어 음악과 함께 의도적으로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되는 장면은 둘 사이의 긴장감과 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탁월하였으며 몽환적인 느낌까지 주기도 하였다. 결코 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둘을 기리는 위로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특히 화양연화에서는 세로로 분절된 화면들과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프레임 안의 프레임 기법이 많이 사용되어 만화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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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Chunking express, 1994)

중경삼림에는 서로 관련이 없는 두 이야기가 담겨있다. 홍콩의 복잡한 시장과 건물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두 이야기에는 모두 경찰인 남자주인공이 등장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시련을 당한 경찰 223(금성무)과 마약밀매업을 하는 여자(임청아)의 짧고 미묘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자친구에게 차인 후 한달 째 되는 날인 5월 1일의 파인애플 통조림을 수집하는 경찰 223. 그는 여자친구가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마약 밀매업을 하는, 날씨가 어떨지 몰라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는 여자는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술집으로 향한다. 마침 경찰 223은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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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에는 여자친구를 위해 매일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경찰 663과 페스트푸드점 알바생 페이가 등장한다. 남몰래 663을 좋아하고 있던 페이는 어느날 그의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통보 편지와 아파트 열쇠를 맡게된다. 663이 출근한 사이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물건을 바꾸어 놓는 대담한 장난을 벌인다. 머지않아 663은 집에 생긴 변화들을 알아채기 시작하고 불시에 집 문을 열자 눈앞에 서있는 페이와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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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줄거리로 전달하기에 이 영화는 보다 세세하며 은근한 구석이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끌림으로 가득한 영화이다. 완성된 대본 없이 그날 그날 쓰여진 대본으로 촬영을 하였다는 후일담도 있는데 이러한 방식이 영화 전반에서 엉성하면서도 매력있는 분위기로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듯하다. 또한 중경삼림에도 California Dreamin이 전반적으로 깔리며 극의 분위기를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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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소음과 후덥지근한 공기, 끈적하고 습한 날씨 같은 불쾌한 것들로 가득찬 화면들이지만 이 영화 안에는 진정으로 여름에 기대했던 것들이 담겨있다. 끈기있는 열정과 찐득한 미련, 즉흥적인 일탈과 그 후에 찾아오는 차갑게 맑은 현실과 같은 것들 말이다. 

왕가위의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면 해피투게더(1997)와 아비정전(1990)도 함께 찾아보길 권한다.


(이미지 출처 : 영화 내 캡쳐, 네이버영화)


[유세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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