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02. 저는 자유를 사랑하는 자유인이에요 : 최지은

글 입력 2017.08.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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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當身)
 
1. 듣는 이를 가리키는 이인칭 대명사

2. 문어체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우리는 두 번째 당신을 정하는 데 큰 고민이 없었다. 당신의 그림은 우리로 하여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면 으레 드는 불편함보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린 작가를 만나러가는 설렘이 컸다. 우리는 그렇게 당신을 만났다. 어색한 인사로 시작한 인터뷰는 어느새 당신과 우리, 수다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당신의 이름은 최지은. 작품기고에 당신이 게시하는 ‘프레첼 체다치즈’ 시리즈에는 당신만의 화풍이 드러나는 독특한 그림들이 담겨 있다.





(*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질문과 답변에는 ‘~해요’체를 사용하였으며,
글의 진행과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수정된 부분이 있습니다.)

 
Freedom.jpg


Q. 자기 자신을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A. 자유를 사랑해서 자유인이구요, 즐거움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아요.
 

‘자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대. 자유라는 말은 아주 가까우면서도 낯선 말이다. 곳곳에 있으면서도 아직 내 피부에는 와닿지 못한 말. 그 말을 망설임 없이 입에 올리는 당신. 그런 당신이 부러웠다.


Q. 아트인사이트에 올리는 작품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

A. 전공이 서양화였지만, 문득 회의감이 들었어요.
갤러리에서만, 한정적인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예술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게 슬펐구요. 예술은 사람들이 봐줄 때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예전에 했던 작업들과 지금 하고 있는 작품들을 주로 올리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작품을 기고하고 있어요.
 
Q. 본인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으로 표현하고 싶으신가요?

A. 노란색이나 오렌지색? 오렌지색에 가까운 거 같아요.
좋아해요. 보고 있으면 신이 나는 것 같아서요.
   

조금은 의외였다. 당신의 그림에는 왠지 모를 우울한 감성이 어려 있었기 때문에. 즐거운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즐거운 걸 좋아하는 사람과 그 감성이 배어 있는 사람은 다르다. 당신은 우울한 감성의 그림을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당신은 당신의 그림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Q. 작업을 할 때, 오일파스텔을 주로 사용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재료가 어떤 특성이나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강약이나 선을 조절하기가 좋아요. 문지르는 느낌도 좋구요.
궁금해하실까봐 가져왔는데.......
(파스텔을 꺼내며) 그냥 크레파스인데, 낙서 하듯 그릴 수 있어요.
크레파스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쓰기가 편해요.
진한 정도나 두께를 조절할 수 있어요.
가늘고 자세한 작업은 힘들지만, 전체적인 틀을 잡기가 쉬워요.
붓 같은 도구들은 챙기기 번거롭고, 색연필 같은 종류를 좋아해요.
그런데 콩테나 목탄은 색이 다양하지 않아서.
이건(오일 파스텔은) 색도 다양하고 조절도 할 수 있어요.

Q. 일반 파스텔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보통 파스텔은 가루 날림이 심해요.
조금 더 부드럽고, 가루를 뭉쳐놓은 느낌?이 나요.
이게 좀 더 쓰기 편해서 좋아해요.

Q. 이름이 오일파스텔인데 그럼 오일이 들어있는 건가요?

A. 유화에서 기름으로 물감을 녹여서 쓰듯,
오일 파스텔은 파스텔이지만 기름에 녹아요.
수채 색연필이 물을 묻히면 번지듯, 기름에 녹아요.

Q. 손에 묻을 것 같은데 낙서(?)하기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A. 확실히 손에 묻는 것 있어서 뭔가를 깔아놓고 해요.
하지만 낙서하기는 편해요. 편해서 애용하죠.

Q. 색연필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색연필은 아무리 진하게 칠해도 이것만큼 진하게 나오지는 않아요.


프레첼체다치즈.jpg
<프레첼 체다치즈 : 펜 드로잉 外 5작품 중 인용. 원본>

 
우리가 사전조사 때부터 궁금해 했던 오일 파스텔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당신은 갖고 온 오일 파스텔을 보여주었다. 어릴 때 쓰던 크레파스와 닮은 아이들이 필통에 빼곡히 담겨있었다. 당신이 사용한 만큼 각각 다르게 닳아있는 파스텔의 모습이 어릴 때 쓰던 크레파스의 모습을 연상시켜 웃음이 났다.


Q. 색 배치가 특이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글에서는 잡히는 대로 채색을 하신다고 쓰신 걸 봤어요.
그래도 색 배치에 신경 쓰는 부분이나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A. 표현하기 좀 힘든데,
예를 들어서 그냥 보면 이게 (손을 가리키며) 살색으로 보이지만,
집중해서 보면 다른 색으로도 보여요.
손 잡히는 대로도 쓰지만, 보통은 느껴지는 색으로 칠해요.

Q. 관찰인가요?

A. 관찰이라기보다는……. 아, 표현하기 진짜 애매하네요.

Q. 보이는 색이 아니라 느껴지는 색?

A. 네, 맞아요. 그런데 느껴지는 게 실제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Q. 인물 드로잉에서 얼굴을 칠할 때,, 색 배치가 특이해보였어요.
여백도 많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 같았는데.......
저는 스케치를 하고 채색에서 꼭 망해요.(웃음)

A. 저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보인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보이는 대로 칠하되, 집중을 더 많이 하게 돼요.
색 고르고 칠하고를 빠르게 해야 하니까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그 색을 놓치기 전에 빠르게 작업하시는 건가요?

A. 그렇죠.

Q. 이어서 그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신가요?

A. 아 그건, 드로잉 수업 때 했던 건데,
컨투어 드로잉(contour drawing)이라는 기법이 있어요.
손을 안 떼고 그리는데, 화지를 안보고 그리는 거예요.
이거(옆에 있던 컵)를 그린다면, 제 시선이 달팽이 기어가듯
이걸 하나하나 따라가는 거예요.
디테일하게 보면 이상한데 멋있어 보이기도 해요.
손 안 떼고 선을 다 이어서 그리는 거죠.

Q. 나중에 화지 위에서 손이 나가있고?(웃음)
그걸 잘 표현하는 작가가 에곤 쉴레라고 생각하시나요?

A. 아, 에곤 쉴레 너무 좋아요.
그 공간의 여백이 있는 게 너무 예뻐요.
너무 좋아해요. 진짜 멋있어요.

Q. 에곤 쉴레를 모르는 이들에게 에곤 쉴래를 소개한다면 뭐라고 하고 싶으세요?

A. 제가 소개하는 것보다 영화를 추천하고 싶어요.
에곤 쉴레를 주제로 한 영화가 있어요.
개봉한 데(영화관)는 많이 없지만, 저는 좋아하니까 보러 갔죠.
제목이 ‘에곤 쉴레’고, 약간 외설적인 그림들도 많이 나오는 영화이긴 해요.
에로티시즘과도 연관이 있어서.
 

3.jpg
 <당신이 즉석에서 그린 손 그림. 종이에 오일파스텔>


색 배치로 시작한 질문은 꼬리를 물고 당신이 좋아하는 화가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초보 인터뷰어인 우리는 자연스레 수다의 장이 되어가고 있는 인터뷰의 분위기가 낯설면서도 즐거웠다. 당신당신의 그림에 대해 생각하며 어떻게 그 방식을 우리에게 이해시켜줄 수 있을까 고민했고, 좋아하는 화가를 이야기하며 목소리에서도 확연히 드러날 만큼 들떴다.


Q. 쉽게 그려지는 그림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제가 끈기가 없어서요. (웃음)
큰 캔버스에 그리려면 오래 걸리고, 유화는 더 오래 걸리기도 해요.
그걸 끌고 가는 게 너무 힘들더라구요. 오래가는 걸 못해요.
제가 게을러서 그래요. (그림이) 크면 집중력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어요.
 
Q. 선과 인물의 표정에 대한 생각이 인상 깊었어요.
최대한 삭제하고 응축시켰을 때, 그림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종이 위에서 무엇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시나요?
공백이 지은씨의 그림에서 어떤 걸 드러내주나요?

A. 그냥 제 성향 자체가 채워진 것보다는 빈 부분, 여백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전 정말 자유를 사랑하거든요. 여백, 빈 공간이 자유처럼 느껴져요.
인물도 똑같이 그리는 게 싫어요.
색도 맘대로 쓰고, 선도 그리다가 중간에 멈추고 끝내고 그러는 게 좋아요.
틀을 잡아서 그걸 규정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그대로 놔두고 싶다고 해야 하나?
 
Q. 예술관이 뚜렷하고, 취향이 확고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그런 지은씨의 그림을 보며 사람들이
그린 작가의 감정에 공감하는 게 좋으신가요?
아니면 새로운 걸 발견하길 바라시나요?

A. 발견이라고 하기도, 공감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 거 같아요.
그냥 맘대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알아서 봐주길.
저는 그저 보이는 대로 느껴진 대로 그렸을 뿐이니까,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해석하는 건 보는 사람들의 자유라고 생각해요.

Q. 지은씨 그림이 사실적인 묘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실적인 묘사였네요.(웃음)

A. 좀 그렇죠? 보는 분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Q. 드로잉을 하면서 ‘이거는 그려보고 싶다, 도전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대상이 있으세요?

A. 평소에는 딱히 없는데, 어제? 그저께부터 자화상을 그려보려고 생각중이이에요.
그래서 가져왔는데....... (노트를 꺼내며)
이게 올렸던 작품들인데, 스캔한 것도 있고, 안한 것도 있어요.
원래는 이런 식으로 다른 친구들을 그렸는데(인물드로잉),
자화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본 적이 없어서…..

Q. 인물을 그리는 방식이 독특하셔서
본인 얼굴은 어떻게 그리고 싶은지 질문하고 싶었는데,
본인 얼굴은 아주 사실적으로 그린 것 같아요.

A. 사실적으로 그리는 걸 할 수는 있는데, 일부러 그동안은 안했었어요.
사실 요즘 좀 기분이 안 좋아서…….
자화상을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한 게, 다른 사람 특징 잡는 건 쉬워요.
보이는 대로 그리면 되니까. 그런데 정작 저는 저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어젯밤에 그렸어요.
이런 방식(사실적)으로 그릴 수는 있는데,
이건 제가 타인의 개성을 그리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느껴지는 제 감정을 표현하는 거라서.
타인은 제 소재일 뿐이에요.(웃음)
너무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지만, 그림을 남을 위해 그리지는 않아요.
제가 재미있기 위해서 그리는 거지.
그래서 보통 내가 어떻게 느끼는 지를 표현하는데, 정작 나는?
나는 어떤지를 그려보고 싶어서…..

Q. 아직 자신이 어떤지 발견하지 못하셨나요?

A. 아직은요. 자화상 되게 오랜만에 그려서요.

Q. 예쁘게 잘 그리신 거 같은데요?

A. 원래 그림은 미화시켜야죠.(웃음)


4.jpg
 <당신이 가지고 온 노트>

 
취향과 예술관이 확고한 당신은 정작, 당신당신을 몰라 자화상을 시작하려한다고 얘기 했다. 타인의 특징을 잡아내기가 더 쉽다는 당신. 사실 그렇다. 적어도 시각에 관한 한, 우리가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것은 자신일 테니. 문제는 인간이 시각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고 있나? 어느 부분을 미화해야할지, 어느 부분을 삭제시켜야할지.

 
Q. ‘13월’이라는 모든 여유가 갖춰진
본인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A. 그러면 저는 세계 명소들을 다 돌아보고 싶어요.
갈 수 있는 기간이나 나라가 한정되어 있을 텐데,
시간, 경제적 조건이 다 갖춰져 있다면 그런 명소들을 다 돌아보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근데 나는 그걸 안 겪어봤으니까.
해봐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남들이 다 좋다고 해서 가는 게 아니라,
왜 이게 유명하지? 궁금해서 가는 거?

Q. 어디가 제일 가고 싶으세요?

A. 저는 뱅크시 좋아해서. 영국의 스트릿 아티스트인데요.
그 사람 벽화를 보러 가고 싶어요.
 
Q. 질문릴레이가 있는데요. 저번 인터뷰이께서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싶을 때 특별히 찾는 장소가 있는 지를 물었는데, 있으신가요?

A. 집이요.(웃음) 침대?

Q. 부연이 필요가 없겠네요. 다음 인터뷰이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A. 아, 좀 뜬금없을 것 같은데, 바꾸고 싶은 헤어스타일이 있는지가 궁금해요.
제가 요새 머리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는 중이라.
 
Q. 인터뷰 오는 길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과,
인터뷰 끝나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A. 어, 집이 가까워서 인상 깊은 장면이 없는데
당장 기억나는 거라면 카페 위치 사진 찍은 거?(웃음)
이렇게 하면 찾아오시기 쉽겠지? 싶어서

Q. 인터뷰 끝나고는요?

A. 저질러 놓은 일을 처리해야죠.

Q. 어떤 일인데요?

A. 스터디라든지, 프로젝트….
책 만드는 걸 하겠다고 했다가……(한숨+웃음)
서양화가 전공인데, 문예창작을 복수전공하고 있어요.
원래는 강사 쪽을 준비하다가 디자인 취업을 준비하고 있어서,
포트폴리오로 책을 만들고 있는데…….

Q. 저희는 전공인데도 글 안 쓰고 있어요.(웃음)

A. 책을 만들겠다고는 했는데 해야 해요.

Q. 글/그림에 둘 다 지은씨 이름이 들어가면 멋있을 것 같아요.

A. 그게 꿈이에요.

Q. 이루시길 바랍니다.

A. 감사합니다.(웃음)
 

글에는 빠져있지만, 우리는 당신이 가져온 오일 파스텔을 직접 써보기도 했다. 이거(?)가 재미있다는 당신의 말에 끌려서. 당신은 우리의 손이며 귀를 즉석에서 그리기도 했다. 우리는 눈앞에서 당신에 의해 그려지는 우리의 몸을 낯설면서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취향이 확고한 당신이라고 느꼈는데, 그 취향을 찾기까지 당신이 고민하고, 집중하고, 받아들이는 당신만의 과정을 겪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도 당신은 여백을 그려내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 삶의 여백을 찾음과 동시에, 당신이 보여줄 다음의 자유를 기다린다.


5.jpg
<당신이 즉석에서 그린 귀 그림. 종이에 오일 파스텔>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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