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극, 또 비극, 마지막까지 비극. 그러나...

연극 '트로이의 여인들' 리뷰
글 입력 2017.08.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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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을 5분 앞두고 꽉 찬 객석에선 기대감이 서린 목소리들이 오고 갔다. 8시가 되자 콘트라베이스와 기타 연주자가 등장해 악기를 조율했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밀짚모자를 쓴 사내가 나타난다. 테티스의 결혼식부터 트로이의 몰락까지 간결하고 재치 있게 설명을 이어간다. 관객들도 사내의 호흡을 따라가며 극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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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3명의 여인들이 양쪽에서 등장했을 때, 내가 공포 연극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여인들의 드레스는 초라했다. 하지만 그들의 등장은 압도적이었다. 아니, 관객을 압도한 건 그들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화려한 삶을 살았을 그들은 새롭게 펼쳐질 비극적인 운명을 덤덤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슬픔, 증오, 절망의 공기가 극장 안에 깊숙이 퍼졌다.
 
연극은 ‘비극’의 연속이다. 여인들의 입에선 차례로 불안이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일부는 슬픔을 담아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잃게 되는 여인들은 울부짖는다. 13명이 한목소리를 내며 동시에 말하는 장면은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시끄럽고 우울하지만 한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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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정점을 찍는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조국은 눈앞에서 불타고 있고 배 아파 낳은 아이는 교활한 장군의 말에 따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진다. 적국 장수와 사랑에 빠졌던 트로이 여인은 갈가리 찢겨져 장수의 무덤에 버려진다. 차마 견딜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인들 중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자의 감옥 안에서 평화를” 그리고 “그 삶이 길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스스로 生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마지막 자존심이자 존엄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난 헬레네도 여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그녀는 "내가 의도한 게 아니다"라고 외치며 뻔뻔하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어쨌든 생명을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로이 여인들과 비교해 안쓰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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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작품, 특히 완벽한 ‘연극’에 대한 기대감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트로이의여인들’은 다르다. 한치 거짓도 없이 내가 여태껏 봐왔던 연극 중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 물론 그간 멜로, 코미디 등 가벼운 연극을 관람했던 사실을 고려해야겠지만. 10명이 넘는 인물들의 동시다발적인 등장, 왕비의 소름끼치는 포효 등 연극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 요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다음 공연이 기다려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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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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