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성장과 정체, 그 미묘한 중압감이 가득한 곳. Dublin [문학]

James Joyce의 Dubliners 中 Araby와 Eveline 소개
글 입력 2017.08.1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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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bliners(더블린 사람들)
中 Araby(에러비), Eveline(에블린)

James Joyce(제임스 조이스)


* 본 글에는 해당 작품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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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Joyce(제임스 조이스)의 저서 Dubliners(더블린 사람들)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일어나는 일을 15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그의 대표 소설이다. 제임스 조이스는 1990대 초 더블린에 가득했던 인간의 욕망과 환멸을 다양한 캐릭터들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마비(Paralysis)’를 공통 주제로 하여 인간 삶에 대한 강력한 진리를 피력하고 있다. 15편 중 14편은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 장년기로 분류할 수 있으며, 본 글에서 살펴볼 에러비(Araby)는 유년기에, 에블린(Eveline)은 성년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짝사랑 열병에 드러난 소년의 성장통: 에러비(Araby)


“에러비”의 서술자인 소년은 작품에서 ‘맹건의 누나’를 짝사랑한다. 그는 그녀에 대한 거의 모든 묘사에서 애타는 마음을 비친다. 소극적인 어린 소년이 열렬히 좋아하는 상대를 두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몰래 숨어서 그녀가 동생을 찾는 모습을 바라본다거나, 아침마다 응접실 바닥에 누워 그녀가 나오길 기다리다 갈림길에서 재빨리 앞서 걷는 것 정도다. 그는 그녀를 항상 바라보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그의 일방적인 ‘시선’을 쫓는 우리는 덩달아 조마조마해진다.

예컨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 그녀 몸의 윤곽이 드러나는 장면이나 난간에서 그녀의 목, 머리칼, 손, 속치마의 테두리가 차례로 비치는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숨을 죽이고 그의 “관찰”에 일조하게 만든다. 답답하고 터질듯한 가슴을 한껏 안은 그는 ‘상상력의 발휘’를 또 다른 해소방법으로 사용한다. 그는 시끄러운 시장의 소음까지도 행복한 상상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재료로 승화시키며 혼자 집을 거닐 때도 그녀를 자연스럽게 소환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내 몸은 하프와 같았고, 누나의 말과 몸짓은 그 하프 현을 타는 손가락 같았다”라는 감각적이면서도 어느 정도 관능적인 그의 말은 사춘기의 절정을 달리는 청소년의 감수성과 예민한 감정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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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선 소년의 감정 변이가 뚜렷이 나타나는데, 그저 단순한 감정의 변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년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의 차이까지 부를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는 어느 날 그에게 에러비라는 중동풍의 시장을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한다는 말을 꺼낸다. 놀란 그가 내뱉은 대답은 “내가 가게 되면 선물을 사주겠다”였고, 이는 말을 함과 동시에 그만의 굳은 의무이자 약속이 되었다. 이후 그는 그것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하찮게 보게 되었으며, 다른 데선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한 채 모든 신경을 그 일에만 집중했다. 그런 그였기에 약속을 지키지 않은 외삼촌을 보자마자 화를 내거나 따지고 들기보다 한시라도 빨리 시장에 도착해야만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느리게 출발하는 열차에 그는 울화통이 터졌고 폐장 직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막상 도착한 그 곳에서 상상하던 모습과는 다른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상상했던 신비스러운 동양의 분위기의 부재나 존경할 만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실없는 남녀의 우스갯소리에 그는 왠지 모를 허무와 거리감을 느끼며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고, 그 어떤 상태보다도 행복했던 기다림의 순간과 비교하자 형편없이 절망적인 지경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는 실망하고 좌절하며 결국 분노에 이른다. 이는 그가 철없고 순진한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가는 일종의 성장과정으로 해석되며, 에러비라는 공간은 이를 극대화시키는 장소적 장치로서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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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날 수 없는 그녀의 멍에: 에블린(Eveline)


“에블린”에서 처녀는 떠나려고 한다. 그녀와 과거를 함께했던 이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그녀는 지긋지긋하고 힘에 부친 더블린에서의 삶을 벗어나길 원한다. 작가는 작품의 초반, 그녀의 회상에서 드러나는 과거의 삶, 그와는 달라진 현재 상황과 그녀가 예측하는 미래의 모습을 제시하며 그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회상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생각 없이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던 유년시절을 그리워한다. 해당 인물들의 부재로 더는 이를 경험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그녀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오빠는 죽었으며, 또다른 오빠는 집을 떠났고 곁엔 난폭해진 아버지와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부담감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프랭크의 존재는 마치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넌더리 나는 현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기회였다. 선원인 그와 배를 타고 더블린을 떠나 쟁취할 해방감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일을 실행하려고 마음먹는다. 물론 거리의 풍금 소리로 하여금 떠오르는 “힘닿는 데까지 집안 살림을 보살피겠다”라고 한 어머니와의 약속과 과거 아버지의 유한 모습, 그리고 현재의 삶이 못 버틸 정도는 아니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그녀의 다짐을 잠시 흔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임종 전 “데레바운 세라운!”이란 외침을 상기함과 동시에 어머니의 흔해빠진 희생으로 얼룩진 인생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역시 떠나는 것만이 답이라 다시 마음을 되잡는다. 그녀는 탈출을 갈망함에 틀림이 없다. 어머니와 같은 서글픈 인생의 희생자가 될 수 없다고 믿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프랭크와 함께 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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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탈출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그의 손을 잡지 못한다. 대신 아무 감정 없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에블린은 자신이 더블린을 떠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결국 어머니와 같은 ‘아무것도 못 하는 짐승’이 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기회를 보냄과 동시에 알게 되는 것이다. 그녀에게 프랭크는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그저 탈출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그녀가 느끼는 그에 대한 감정은 그녀가 해방을 꿈꾸는 데서 느낀 그것과의 착각이 아닐까. 그를 보내는 그녀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히지 않은 것은 프랭크로 대표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스스로 체념함으로써 더블린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자각 때문이었고, 이는 그녀 역시 마비로 가득한 “더블린 사람들”의 한 주인공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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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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