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연극 [이층의 비밀], 유쾌함 속에 담긴 매력적인 씁쓸함

글 입력 2014.07.04 13:5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지난 수요일,

오랜만에 대학로 공연을 보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산-1.jpg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이라

결국 또 다시 일회용 우산을 새로 사고서

일회용 우산 컬렉션이 만들어진다며 투덜대는 날이었어요.

 


이층의 비밀.jpg

사실 비가 오는 날은 

갑자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감성에 빠지거나 차분해지거나 피곤해서 일찍 자곤 하지만

연극 <이층의 비밀>을 보고 잔뜩 웃고 나니

집에 돌아가는 길도 말똥말똥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프리뷰 때는 <라이어>의 작가인 레이 쿠니와 달리 

<이층의 비밀>을 쓴 마이클 쿠니가 좀 더 어두운 이야기를 많이 쓰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요.

 

완전히!

완전히!!

 

 

으엉.jpg

네, 저의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임기응변의 끝판왕을 보고

이리 저리 꼬이는 거짓말들에 관객석에서 절로 빵빵 웃음이 터지는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분명 다른 점들이 눈에 띄기는 했어요.

 

사회문제.jpg

우선, 보험횡령과 실직이라는 사회 문제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직이라는 상황만으로 보험 횡령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연극에서는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보험횡령을 하고 있고

또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내용이 언급됩니다.

 

 

비밀1.jpg


연극의 제목인 <이층의 비밀>과는 무슨 관련이 있냐구요?

엄밀히 말하면 [이층의 비밀 = 에릭의 비밀]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침 어엿쁜 아내와 결혼을 준비 중이던 주인공 에릭 스완이

실직했다고 말하고 결혼을 하고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게 되자

예전에 2층에 살았던 루퍼트 톰슨, 그리고 현재 2층에 살고 있는 노만 맥도날드인 척 하고 보험금을 횡령하게 된 것입니다. 



횡령.jpg

사실 에릭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서 보험금을 횡령하기 시작했는지는 

약간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삼촌인 조지 스완과 '파트너'가 되어서

루퍼트 톰슨의 의료 기록을 제출하고 계속 매달 각종 명목으로 보험금을 탔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건 삼촌인 조지는 에릭을 딱히 판단하지 않고, 

약간 재미있고 신기한 것,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격상 고민없이 이를 도와줬다는 것입니다.

연극의 시작에서도 삼촌 조지는 여장을 하고 에릭과 함께 보건복지부 직원을 속이기도 했죠.

 


전환.jpg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에릭이 더 이상 횡령은 그만하고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으로 보험금을 타왔던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고 해결하려 했던 것이 문제를 겉잡을 수 없이 부풀리게 됩니다.

 

 

복잡함.jpg


전에 2층에 살던 세입자 루퍼트 톰슨의 보험금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확인서명을 받으러 온 

보건복지부 감찰과 직원,

노만 맥도날드의 보험금을 타다가 그가 죽었다고 통보를 하자 달려온 상조회사 직원,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알아서도 안 될 에릭의 아내,

에릭의 보험금 횡령 파트너인 삼촌 조지,

 

에릭이 루퍼트 톰슨과 자신의 명의로 보험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분노한 예비신랑 노만이

 

한 집 안에 있으면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의 향연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농락.jpg

신기한 점은 에릭이 보험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협조하게 되는 노만입니다.

결혼식이 3일 남았으니 차질없이 예정대로 진행하기 위해 에릭에게 협조하게 되고

 

나중에는 어차피 빼도박도 못할 공범이 되었다며

노만을 옭아매는 에릭이 어떤 면에서는 대단할 따름입니다.

 

결혼식이 조금 미뤄지는 것이

자신의 집주인이 계속 해온 거짓말을 이해할 정도로 중요한 걸까요?

 

계획대로의 결혼식을 명분으로 

그는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하게 됩니다.

 

방관자23.jpg

사실 에릭이 이리저리 터무니 없는 말을 하고 의심의 여지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명을 받으러 온 보건복지부 감찰과 직원 또한 의심만 약간 하고 

그저 이 상황을 계속 흘러가게 만드는 방관자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시스템을 속이게 만드는 또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느슨한 시스템 자체일 수도 있겠죠.


관대함.jpg


처음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열심히 거짓말을 하고 횡령을 하던 에릭에게 세상은 참 관대합니다.

 

보건소 감찰과 부장은 이런 에릭의 '뛰어난' 재능이 아까워 

그에게 일자리를 주기로 합니다. (!)

 

그의 아내도 그를 질책하기는커녕 그의 '마음고생'을 걱정하며 그와 오히려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기엔 어딘가 불편한 건 괜한 느낌일까요?


 

좌절2.jpg

오히려 자신의 결혼이 제 날짜에 이뤄지길 바랬던 노만은

약혼녀가 엄청난 오해를 하게 되면서

결혼이 파토날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무려 상조회사 직원까지도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오해를 하게 되죠.

결국 그에게는 도용된 명의와 다량의 멘붕, 그리고 떠나간 약혼녀만 덩그라니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네요.

 

주객전도.jpg

협조하기로 선택한 노만을 선량한 피해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에릭과 노만의 상황이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연극 자체는 너무나 웃기고 재밌게 봤지만

유독 왜 에릭에게 일자리를 주었을지 그 부분이 정말 이해가지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면 작가였던 마이클 쿠니가 이런 웃음과 결말을 의도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생각없이 신나고 즐겁게 터져나오는 웃음  대신 아이러니와 모순에서 나오는 웃음이었던 것이죠.


나비효과.png

정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외부효과, 나비효과 같은 각종 '효과'들이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특별한 의도 없이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외부효과.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 저멀리 어딘가에서는 태풍이 될 수 있다는 나비효과.

둘다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표현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마이클 쿠니가 보여주었던 에릭이 사는 세상과

어디가 비슷하고 또 어떻게 다를까요?

 

영향2.jpg


그 답이 무엇이든 

우리가 주변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은 정말 크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평생동안 최소한 200명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200명의 원칙처럼 말입니다.

 

처음에는 웃음과, 그리고 곱씹어볼수록 씁쓸하면서도 필요한 질문을 던져준

반전매력의 연극 <이층의 비밀>이었습니다.

 

 

배우들.jpg

7월 27일까지 계속되는 <이층의 비밀>

작품을 환하게 빛나게 만들 만큼 멋진 연기를 해주셨던 극단 등대 한 분 한 분을 실제로 만나보세요!

월요일 공연만 살포시 쉰다는 점만 기억해주세요!

 

이 리뷰는 ART insight와 함께 합니다.

더 많은 정보와 소식을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

http://www.artinsight.co.kr/n_news/main/index.html를 클릭하세요!

 

artin.png


[장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