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몸치, 춤을 찬양하다 [문화 전반]

춤꾼을 볼 때 드는 지극히 솔직한 생각
글 입력 2017.08.1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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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은 왼손잡이의 날이다. 유년 시절 ‘천재’가 되겠다며 왼손으로 글씨 연습하던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엄마의 표정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상은이도 왼손잡이였다. 앙증맞고 귀여운 글씨체가 ‘왼손’으로부터 나오는 걸 보며 신기해한 적도 있다.
 
TV를 즐겨보던 상은이는 특히 춤에 관심이 많았는데 당시 우리 반에서도 춤을 잘 추는 편에 속했다. 상은이를 포함해 춤 혹은 무대에 욕심 있는 몇몇 친구들 덕에 ‘모태몸치’인 나도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춤을 춰 망신을 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우리는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았고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 전날과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생활에 지쳐있던 어느 날, 상은이가 예술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란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SNS로 살펴보니 그곳에서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전문적으로 춤을 배우고 있었다. 국영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나와 달리 상은이 주위는 어딘가 자유분방해보였다.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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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붙잡는 순간’(2011), 리카르도 그라지아노, 리카르도 로데스, 대니얼 브라운, 옥타비오 마르틴/ 플로리다 주, 새러소타
 
 
지금은 당시 SNS에서 본 사진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입시 과정 속에서 희비가 교차했듯 상은이 겉으로는 재밌어보여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부러운 게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유연성’이다. 어디서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레를 배웠었다’고 말하면 다들 놀랄 정도로 유연성과 거리가 멀다. 한창 살이 쪘을 땐 다이어트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뻣뻣한 내 몸은 낯선 움직임을 어색해했다.
 
유연하지 못한 내 몸이 원망스러웠던 건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클럽을 갔을 때다. 평소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놀렸던 친구는 의외로 파격적이고 ‘꽤 괜찮은’ 몸동작을 선보여 나를 당황시켰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상체로 부드럽게 리듬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차려보니 동요제에 나올법한 율동처럼 절도 있고 딱딱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음악은 정말 신나는데 제대로 표출이 안 되니 어느 순간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원망의 대상은 물론 나였다.
 
그 후로도 클럽을 몇 번 가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몸이 유연해지길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훌륭하게 몸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더 효율적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에서 각종 안무 커버 영상을 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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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 키스’(2012), 2 마이클 재거, 에비타 아르체/ 뉴욕 주, 뉴욕


춤은 참 멋있는 수단이다. 전달 효과가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앞사람에게 침을 튀겨가며 말을 뱉어내는 사람보다 몸을 사방으로 움직이며 시선을 사로잡는 이에게 눈길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춤은 시랑도 비슷하다. 처음 접했을 때 감정이 담긴 충격을 준다는 것, 그리고 볼 때마다 색다르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장황한 수식어를 늘어놓지 않을 수 없는 영상이 있다. 2016년 서울공연예술학교 2학년 실용무용과 7기 퍼레이드 영상으로 유튜브 조회수가 무려 3백만이 넘는다. 신나는 노래에 맞춰 군무를 선보이는 모습을 보며 몸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을 가장 크게 느꼈다. 춤은 가장 강력하고 역동적인 언어다.
 
2013년 사진작가 조던 매터의 전시회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보러 갔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어딘가로 날아갈 듯 점프하는 무용수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 춤은 진정한 자유 그 자체였다. 온전히 자신의 소유인 몸을 최대로 이용하는, 순수한 자유였다.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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