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 바로 지금이 화양연화이기를 [여행]

글 입력 2017.08.1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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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별 문제없이 살다가도, 갑자기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이 있다. 사람이란 동물은 참 간사해서 낯설고 새로운 것에 부딪혀야 하는 순간에는 익숙하고 편안한 것으로 회귀하고 싶어하지만, 반대로 익숙하고 눈에 익은 일상들이 반복되기 시작하면 답답함을 느끼며 새로운 것을 갈망하기 시작한다. 누가 도대체 인간의 그 이상한 마음을 ‘청개구리’라고 비유해 일컫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말고는 당최 나의 요즈음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음껏 쉬면서 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막상 그런 시간이 며칠 주어지니 금방 싫증이 났다. 그리고 이 고루한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어졌다. 나의 일상은 익숙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눈에 익은 이 풍경 속에서도 크고 작은 갈등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었고, 평탄하게 보이는 시간의 모서리 어딘가에는 반드시 슬픔 같은 것이 끼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즈음의 일이었다.
 
 그런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오후,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몇 주 후 시작되는 1년 간의 미국 어학연수를 앞두고 친구는 무척이나 외롭고 심심한 기색이었다. 정신 없이 유학 준비며 영어 공부에 몰두하다가 출국 전까지 갑작스러운 자유가 주어지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돌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주변 친구들 또한 각자의 일로 모두 바쁘다 보니 갑작스럽게 불러내기도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낯선 곳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친구에게는 지금의 이 자유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기에 후회 없이 순간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클 터였고, 그래서 더 외롭고 무료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었다.
 
 결국 통화를 시작한지 5분 만에, 눈앞에 놓여진 자유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우리는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6시간만, 그만큼만 이 자유를 행복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친구의 낡은 하얀색 중고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건 정말 급작스럽고도 엄청나게 멋진 계획이었다. 우리는 먼저 친구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팬케이크로 배를 채우고 해가 지면 북악 스카이웨이, 도시의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일정을 정했다.





 친구의 차에 마침내 몸을 싣고서, 우리는 뜨겁게 달궈진 도심의 아스팔트를 달리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지나치던 한강의 표면은 따가운 햇빛을 받아 연신 반짝거렸고, 우리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오늘의 자유 속에서 그 반짝임은 어딘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드라이브의 신나는 기분을 극대화시킬 음악을 끊임없이 흥얼거리며 올림픽대로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잠깐 차 안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동시에 창문을 살짝 여는 소소한 사치를 부려보기도 했다. 알 수 없는 해방감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델마와 루이스의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문득 그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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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미처 초보운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헌법처럼 충실히 따르며 구불구불한 길을 돌고 돌아 팬케이크를 파는 부암동의 한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는 작은 음식점 골목에서 주택가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해 있었다. 서투른 솜씨로 주차를 마친 후 들어간 카페에서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팬케이크와 음료를 먹으며 각자의 고민과 요즈음의 생활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작고 빈티지한 느낌의 소품들로 가득한 카페에서 나누기에는 좀 무거운 주제인 듯도 싶었지만 무겁게 느껴졌던 각자의 삶을 그렇게 나누어 메자, 한결 가볍고 개운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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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지자 우리는 카페에서 나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시인의 언덕에 들러 잠깐 산책한 뒤 다시 북악 스카이웨이로 향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목적지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경사가 급한 언덕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여러 번 길을 잘못 들기도 해 아직 초보운전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친구와 친구의 낡은 자동차가 꽤 고생을 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해는 완전히 져서 밤이 되고,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마침내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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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각정에 오르면 남산타워와는 또 다른 서울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팔각정 앞쪽으로는 시내를 비롯한 화려한 도심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면, 뒤쪽으로는 북악산 자락의 조용한 주택가들이 만들어내는 소박한 야경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모습이 무척 맘에 들어서 몇 번이고 팔각정 주변을 돌았다. 같지만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하고 눈부시도록 밝은 도심의 불빛과 산으로 둘러싸여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주택가의 불빛이 공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늘 속해 있던 일상을 단지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본 것뿐인데 이토록 특별한 풍경이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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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이 목적 없는 짧은 여행의 진짜 목적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예고도 없이 드라이브를 시작했지만 우리가 결국 다다른 곳은 일상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지켜볼 수 있는 곳이었듯이, 매일의 삶을 어떤 시각에서 보는지에 따라 일상은 특별해 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평범하지만 특별한 진리를 마주했을 때 이제 나는 일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게 되었고, 일상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풍경이 내게 그토록 말해주고 싶어한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예쁘다’는 말을 계속 하고 있을 때, 친구가 말했다. “행복하다. 오늘 뭔가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나는 그 말에 별다른 대답 없이 웃었다. ‘나도 그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것만은 확실했다. 생각에 잠긴 것도 잠시, 사진을 찍자는 친구의 말에 우리는 곧 여느 20대처럼 카톡 프로필로 쓸만한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열심히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고 나는 한편으로 오늘의 짧은 여행이 오랜 시간 낯선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야 할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추억으로 남기를 소망했다. 마치 내가 오늘을 내 생의 ‘화양연화’ 중 하나로 남기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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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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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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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현정
    • 작가님이 그날을 너무 좋아했다는 것이 글에서 느껴져요. 친구분도 정말 좋았을거예요^^ 다음에는 에디터님이 먼저 전화해서 가보자고 해보세요. 또 다른 좋은 날이 올 것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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