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옥자야, 옥자야' 인간의 이중성을 향해 부르짖다 [영화]

우리의 식탁 위, 그 너머의 진실
글 입력 2017.08.1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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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영화를 말하는 기준은 수없이 다양하지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도 그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영화는 자체의 아름다움으로써 그 순간 향유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삶에서 오래도록 남아 기억되기도 한다. 모든 이들은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바라보기에 그것은 결코 일률적이지 않지만, 때로는 영화가 누군가에게 하나의 '계기'가 되어줄 수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문화예술의 무궁무진한 힘이 아닐까. 오늘은 강력한 힘으로 최근에 필자를 변화시킨 영화 한 편을 소개해보려 한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옥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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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자>는 공장식 축산에 기반한 인간의 잔혹한 육식주의를 명백히 조롱하고 고발하고 있는 영화이다. 아니, 엄연히 말하면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있던 사실이기에 고발했다기보다는 각인시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우리는 육식주의의 이면을 잘 알면서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동물을 좋아하고 가여이 여기면서도 그들에게 가해지는 비윤리적인 살생과 육식은 마치 별개의 것처럼 분리시켜 생각하려고 한다. 하지만 <옥자>에서는 '옥자'와 함께 자란 산골소녀 '미자'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의 끔찍한 합리화가 낱낱이 벌거벗겨 진다, 옥자는 글로벌 종자회사 '미란도 코퍼레이션'이 슈퍼돼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서 길러낸 슈퍼돼지들 중 하나이다. 한 할아버지와 소녀의 손에서 산골을 뛰어다니며 자란 옥자는 모든 면에서 다른 돼지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났고, 슈퍼돼지 프로젝트의 막을 내리는 콘테스트를 위해 미란도가 산골에서 옥자를 빼내어 데려가는 내용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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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도 코퍼레이션의 '낸시 미란도'


  그런데 이 싸움은 한 명의 개인 미자과 대기업 미란도의 양자대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옥자를 다시 데려가기 위해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온 미자 앞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바로, 동물해방전선, ALF(Animal Liberation Front), 동물권을 위해 매우 급진적인 노선을 취하는 행동단체이다. ALF는 결과적으로는 미자의 조력자였지만 사실 둘의 이해관계는 꽤나 달랐다. 옥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ALF는 미자의 요구를 묵살한 채 행동을 개시하기도 했다. 동물권을 위해 행동하는 '인간'들이 현실과 타협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코 ALF가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이 영화 곳곳에서 보여주는 조직의 방향성은 관객에게 비윤리적 육식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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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인간의 이중성은 독특한 장면 연출을 통해서 매우 극대화된다. 이를테면 미란도의 실험실에서 동물학자가 옥자로부터 고기샘플을 얻기위해 살을 뚫는 샘플링 기계를 꽂는 그 순간, 슈퍼돼지 페스티벌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소시지를 들고 극찬하는 장면이 비춰진다. 공장 안에서 기계에 들어간 돼지들이 비명도 없이 목숨을 잃어가는 장면 뒤에 컨베이어벨트 위의 가공된 살덩이들이 한참동안 비춰진다. <옥자>는 봉준호 감독이 여러번 말했듯 육식반대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마주해버린 진실은 기어코 육식을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갈 때까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일말의 죄책감없이 외면했을 수많은 생명들에게 '감정'을 느꼈다. 스무 해 남짓하게 이어져온 한 인간의 육식생활에 '거부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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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을 알지도, 알려고 한 적도 없었건만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저히 식탁 위 놓여진 살덩이들을 감히 집어들 수 없다. 어쩌면 잠깐의 헤프닝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사시간 옥자의 비명소리가 오랫동안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감독이 의도한 바를 떠나, 이것이 한 명의 관람객에게 미친 <옥자>의 힘이다.


[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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