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열,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다 [영화]

픽션없이 픽션같은 이야기
글 입력 2017.08.0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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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 <동주>를 이을 이준익 감독의 새로운 역사 시대극이 등장했다. <박열>, 앞선 두 작품들과는 달리, 대중들에게 매우 생소한 인물이며 대한민국이 아닌 1920년대 일제강점기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준익 감독은 20년 전 한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독립운동 서적 속 '박열'을 만난 이후 오랫동안 이 작품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그 오랜기간의 공이 담겨있기 때문일까, 이 영화는 다양한 부분에서 매우 압도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결코 일반적인, 보통의 독립투사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를 고발하려는 것도 아니고 우리 민족을 위로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소재의 신선성만으로도 이 영화는 주목할만 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 역시 참으로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그저 주인공을 빛나게 하기 보다는 각각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지니는 것 역시 눈에 띄는 점이다. 영화 제목이 곧 주인공일 만큼 '원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배우 이제훈보다는 다른 등장인물들의 필모그래피가 궁금해지는 것은 그때문이리라. 영화 <박열>의 매력을 한 번 샅샅이 파헤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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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열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이며 일본에서 인력거꾼으로 돈을 버는 조선인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불령사'라는 조직을 구성하여 항일운동을 해나가고 있다. 노선을 따지자면, 무력노선. 식민지배에 일조한 친일파를 폭력으로 응징하기도 하고 제국주의의 우두머리들에게 폭탄을 던질 계획을 구상하기도 한다. 그런 그의 곁에는 불령사 친구들 외에도 든든한 지원자가 한 명 더 있었다. 그의 파트너이자 애인, '가네코 후미코'. 그와 그녀는 아나키스트로서 일본의 제국주의를 극도로 혐오하는 것이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이 영화의 특이점은 이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대 일본, '무고한 한국인과 악랄한 일본인'을 그리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범죄를 저지른다는 헛소문을 퍼트린 정치적 우두머리들을 비난하되, 한국의 뜻과 함께한 선량한 일본인들도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피식민지 국가의 국민으로서보다는 인류의 동등성을 주창하는 아나키스트로서 일본의 제국주의를 타파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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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히 인간으로서 허용될 수 없을 일본의 잔혹한 조선인 학살은 마치 픽션처럼 낯설게 느껴지지만 모든 것은 '팩트'이다. 후미코와 박열의 러브라인 역시 역사극에 가미된 픽션이 아닌 명백한 사실이다. 이 객관적 상황들과 주관적 감정들이 영화 속에서 매우 적절히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은 이준익 감독의 내공을 더욱 가늠케 한다. 시대를 앞서나갔던 두 인물의 사상은 당시 극도로 '불온한' 취급을 받아야 했지만, 그들은 대역죄로 기소된 법정에서 지금 보아도 놀라운 요구들을 했다.


첫째, 나는 피고 아닌 조선민족의 대표로서
일본천황을 대표한 재판관과
동등한 자격으로 법정에 설 것이다.
재판관이 천황을 대신해 법관 법의를 입고 나온 것이라면
나도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입장이니
왕관과 왕의(王衣)를 착용케 해줄 것.

둘째, 재판관이 심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조선민족을 대표한 내가 먼저
법정에 서게 된 취지를 선언하게 해줄 것.

셋째, 법정용어는 조선말만 쓸 것.

넷째, 피고의 좌석을 재판관과 동등하게 높일 것.


  감옥에서 이어진 고문을 버티고 죽음의 문턱에 섰음에도 그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사형선고를 받으며 "만세"를 외쳤다. 이러한 이야기만으로도 한껏 꾸며진 한 편의 극적인 서사시가 완성되는 것 같지만 모두 사료에 근거한 스토리라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픽션없이 픽션같은 이야기, 그 자체가 이 영화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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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단순히 즐기려고만 한다면 즐겁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은 평점이 그 방증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어쩌면 흥행이 보장된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 한 편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역시 작품성으로 인정받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준익 감독을 명감독이라고 불리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괜히 '믿고 보는 이준익'이라는 말이 있을까!


[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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