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과 카메라, 선택의 기로 [여행]

사진이냐 여행지에서의 집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글 입력 2017.08.08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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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여행에서 사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말을 한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없는 말이다. 정성스레 기록한 여행 사진들은 여행을 추억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지만 사진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정작 여행의 순간에는 집중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바쁜 학기 중을 피해 방학 때마다 짧게라도 여행을 떠나는 편인데, 오늘은 여행 중에 느끼거나 여행 후에 겪었던 카메라와 사진에 대한 생각의 변화에 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여행과 카메라, 선택의 기로



무거워도 괜찮아, 어쩌면 사진을 위한 여행 - 홍콩과 오사카, 교토

  대학교 1학년 때에 문득, 한살이라도 어릴 때 해외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나는 당장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열심히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친구와 의논해 짧은 홍콩행을 계획했다. 당시에는 한순간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그때 그런 선택을 했던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여행은 나름대로 의미가 깊었는데, 성인이 되고 처음 보호자 없이 떠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여행 사진을 잘 찍고 싶은 마음도 저절로 커졌다. 마침 수업 중에 기초사진을 수강하고 있던 그 당시의 나는 홍콩행 짐에 아무 생각 없이 DSLR과 렌즈 2개를 포함했다.


  이런 나의 결정은 여행을 다녀온 후에 두고두고 그 날을 추억할 수 있는 고화질의 멋진 사진들을 남겼다. 한동안 홍콩의 리펄스 베이의 파도 사진이 내 노트북 배경을 차지할 만큼 그 감동은 컸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있었다. 멋진 야경을 눈과 기억 속에 담지 못했던 것이다. 내 추억은 오로지 그 사진 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당시의 내 기분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여행 내내 무겁고 귀찮았던 카메라 가방에서 힘들게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던 그 기억이 짙게 남았다. 사진을 보는 여행 후의 나는 즐거웠지만 정작 여행을 하던 나는 그 순간을 최대치로 즐기지 못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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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를 여행의 여운에 가뒀던 홍콩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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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의 노트북 배경인
리펄스 베이의 파도 사진


  홍콩 여행에서 교훈을 얻은 나는 다음에 떠난 오사카 여행에서 짐을 간소화했다. 두 개였던 렌즈는 하나로 줄였고, 따로 카메라 가방을 챙기지 않고 백팩에 DSLR을 넣어 다니는 방식을 택했다. DSLR 카메라를 가져가긴 하지만, 정말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 아니면 핸드폰 카메라를 이용하겠다는 나만의 수칙도 정했다. 사실 핸드폰 카메라로도 웬만한 사진은 다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DSLR로 찍은 여행 사진은 무언가 포기할 수 없는 하나의 아집 같은 거였다. 그래도 DSLR을 이용해 내 마음대로 설정값을 조절해 찍는 것과 버튼 하나로 사진을 찍는 스마트폰 카메라는 정성과 결과물이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오사카 여행에서는 두 가지의 방식을 이용해 나름 순간도 즐기고 멋진 사진도 얻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아무리 짐을 간소화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자유 여행에서 부피가 크고 무거운 DSLR은 결국 짐이었던 경우가 더 많았다. 심지어 편하려고 맨 백팩은 카메라의 상태가 걱정돼 뒤로 매기보다는 앞으로 매는 경우가 더 많기도 했다. 그래도 짐 가방 이외에 카메라 가방도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을 때마다 렌즈를 바꿔 끼느라 고생했던 홍콩의 경험보다야 더 나아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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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기록한 오사카 아쿠아리움 가이유칸,
사진 속 노이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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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LR로 촬영한 교토 료안지



순간은 눈으로 담고 싶어 - 보라카이와 하와이

  위의 두 경우를 겪고 난 후에는 과감하게 DSLR을 생략하고 여행을 떠났다. 요즘 스마트폰이 어떤 스마트폰인가. 스마트폰도 웬만한 카메라 못지않은 스펙을 자랑한다. 나는 이렇게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여행지에서는 짐으로 느껴질 DSLR 카메라를 외면하고 여행을 떠났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기록하고 싶은 장면을 바로 핸드폰을 이용해 찍을 수 있었고 덕분에 빠르게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느린 휴양지인 두 여행지에서 이 방법은 더욱 시너지를 냈다. 무거운 카메라도 없고, 사진을 찍는 용도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들고 다닐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다들 핸드폰을 잘 보지 않는 두 장소에서 나도 느린 마음,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내 눈 속에 순간을 담은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후에 내 노트북 배경화면을 바꿀 만한 마음에 드는 사진은 얻지 못했다.

  아이러니다.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면서 나중에 여행지를 추억할 때는 DSLR로 찍은 멋들어진 고화질의 사진을 원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욕심 많은 여행자였다.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한가지의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정답은 아니지만 교훈 같은 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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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으로 촬영한 보라카이,
색감을 보니 보정 앱을 거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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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으로 촬영한 하와이의 풍경



여행과 카메라가 완벽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상하게도 완벽하게 진행되었던 일은 생각보다 추억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살짝 서툴렀던 기억이 후에는 두고두고 회자하며 기억되는 법이다. 여행지와 사진도 그렇다. 두 가지가 완전히 내 마음에 충족되었다면 과연 나는 여행 후 돌아와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만약 두 조건이 완벽했다면 나는 그저 마음에 드는 사진으로 배경화면을 바꾸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아쉬운 생각을 했으므로 나는 다음 여행에서 더 나은 방향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여행지에서 가장 집중했던 순간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고 그 순간을 되새겨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앞으로의 여행과 여행 사진에 대한 새로운 계획도 세우는 계기가 됐다. 사진에 집중했다면 다음에는 순간에 집중할 생각을 또 순간에 집중했던 경우는 또 반대의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여행에서만큼은 사진에 100%를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여행하는 곳의 특성에 따라, 혹은 나의 기분에 따라 이번에는 사진이냐, 아니면 순간의 즐거움이냐를 생각하고 선택하는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행에서 카메라를 선택하는 즐거움은 나를 여행하게 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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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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