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명화의 기억을 읽다

글 입력 2017.08.0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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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여름은 버텨낼 수가 없다. 정신없는 일상, 내리쬐는 태양빛이 가득한 더운 공기까지. 그렇게 텁텁하고 숨 막히는 내 시간을 쪼개어 토요일 오전 길을 나섰다.
 
사실, 이번 전시는 개인적으로 고전적인 명화와 미술사를 좋아하는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전시였기 때문에 천천히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주말마저 나를 내버려두지 않는 일의 양이 발목을 잡았다. 늦잠을 줄이고 버스에 오른 나는 곧 마주하게 될 작품을 상상했다.

개인적으로 사진전은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데다가 관련 지식도 굉장히 미약하기 때문에 나는 회화전에 임하는 마음가짐으로 전시를 관람했다. 친절하게도 모든 작품의 옆에는 작게 작품이 본뜬 명화의 사진과 함께 모델, 사진작가의 약력이 적혀있다. 나는 그 작은 설명판 옆의 명화와 사진을 함께 보면서, 명화에서 현대의 사진작가가 받았던 그 ‘느낌’은 무엇인지, 그리고 명화의 ‘무엇’을 다시 이 시대로 되살리고 싶어했는지를 떠올렸다. 사진은 인물, 배경, 소품을 중심으로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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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티스의 크로키 /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이번 보그 사진전은 세계 각국의 수준 높은 전문 모델을 섭외한 사진전이다. 사진을 찍히는 모델은 괜히 모델인 게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잘 아는 사람들이다. 작품마다 왜 이 모델을 선택했을까, 원작의 어떤 면이 이 모델을 선택하게 했을까를 생각하면 사진작가가 원작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을 지가 떠올랐다. 모두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진의 주인공인 인물이 뿜어내는 강렬한 인상은 각자의 개성으로 명화와 사진작가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있었다.

사진작가의 역량은 특히 형체가 뚜렷하지 않은, 또는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제일 감명 깊었던 작품은 그저 선 몇 개로 이루어진 누드크로키였는데, 정말 그저 선 몇개로 여인의 나체를 표현한 작품이었지만 재해석한 사진은 존재감이 엄청났다. 크로키의 선들이 이 사진 속의 모델을 모티프로 표현해낸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달리의 공중에 뜬 커다란 장미를 패션소품으로 사용한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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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채로운 색으로 물든 정물화 /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정물화 역시 인물화 못지않은 존재감을 내뿜었다. 과거의 정물화가 어둑한 방 어딘가에서 들어온 빛 한줄기를 받으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면, 이러한 정물화를 재해석한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개개인의 개성이 여실히 드러나 좀 더 생기 넘치는 느낌이었다. 정물화를 보면 뭐랄까,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명화 속의 정물화는 평온하고 어두운 탁상 위에 앉아있는 정물들보다 그 위로 쏟아지는 빛이 더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정물화에서 작가가 드러내고자하는 그 무언가는 빛이 좌우한다.

보그의 사진작가들은 자신의 매력을 이 부분에서 과감하게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모든 조명과 생동감 넘치는 색감을 부각시켜 과감하고도 감각적인 느낌을 한껏 준 정물화들은, 기존의 고요하고도 따뜻한 감상을 현대의 멋들어지게 활짝 핀 감상으로 탈바꿈 시켰다. 정물화의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뚠’이라고 하고 싶다. 정물화는 그렇게 걸린 그 자리에서 눈이 머무는 순간 ‘뚠’하고 걸려있다. 그만큼 너무나 완성된, 강렬한 채로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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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한켠의 엽서
 

전시회의 끝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규모에 비해 기념품샵의 구성도가 조금 빈약했던 것이었다. 전시회마다 엽서를 구입하는 나로써는 이번 전시에 아낌없이 지갑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사진작가의 작품을 이용한 엽서 다양성이 한없이 부족한 정도였다. 게다가 반절이상이 명화엽서여서 보그 사진전이라는 목적과 동떨어진 감이 들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아쉬웠다. 기념품 구성에서도 손거울이나 노트, 필기구처럼 일상품을 기대했지만, 전시작품과 관련없는 보그 아이템이 많아서 꽤나 아쉬웠던 것 같다. 그만큼 전시가 즐거웠다는 반증으로 여기며 전시회장을 나왔다.
 
이번 전시는 사진에 대해서, 특히 모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진이 이토록 강렬한 장르인지, 모델이란 자신이 생긴 그대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작품으로 느낄 수 있어 좋은 전시였다. 명화를 좋아한다면, 감각적인 현대의 사진작품을 친숙하게 접해보고 싶다면 추천하는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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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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