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뇌리에 남은 4장의 사진, Vogue Like a Painting

사진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사진
글 입력 2017.08.0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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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뇌리에 남은 4장의 사진
Vogue Like a Painting


사진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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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끝없이 변화한다. 이는 예술에서 가장 멋진 점이다. 지루함은 예술가의 본능과도 같아서, 화풍의 변화는 기존 화풍에서 지루함과 고루함을 느낀 화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것이다.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도 하며, 과거의 화풍으로 복귀해 낯선 느낌을 주기도 한다. 과거의 작품을 재해석해서 새로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은 이러한 예술의 변화를 직접 목도한 전시다. 과거 어떤 화가는 사진처럼 그림을 실물과 똑같이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어떤 사진가는 그림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과한 빛을 받거나 후보정 과정을 거친다. 예술은 살아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며 새로움을 창작한다. 뇌리에 박힌 순간들을 소개한다.



1. Misia, 2013 ©Giampaolo Sgura (Misia Sert - Pierre-Auguste Renoir,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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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누아르의 그림은 편안하고 따뜻하다. 그가 그린 여성들에서는 기품이 풍기고 밝은 행복함이 엿보인다. 원본 그림에서는 당대 파리의 피아니스트이자, 많은 아티스트들의 후원자였던 Misia Sert의 기품과 권력이 느껴진다. 나른한 듯 한 팔로 괸 턱에서 여유로움도 느껴진다. 사진과 그림에서 모델의 포즈는 다르지만 인상착의와 느낌은 거의 동일하다. 들어올린 턱과 내리깐 시선에서 도도함과 기품이 느껴지며, 검은 색으로 짙게 칠한 눈썹이 강단 있어 보인다.

 Giampaolo Sgura는 이탈리아의 유명 패션 포토그래퍼로서 의상, 헤어, 메이크업, 세트까지 완벽하게 구상한 뒤 사진을 촬영한다. 작가는 붉은 색으로 부풀려진 올림머리, 흐르는 듯한 진주빛 드레스, 시대가 느껴지는 앤티크 소품까지 완벽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림에 채 나타나지 않은 그녀의 방까지 함께 표현했다. 원작의 느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는 것이 재해석의 어려움이자 묘미인데, 이 작품에서 작가는 본인의 패션 포토그래퍼 면모를 드러내면서 원작의 느낌까지 표현했다. 다른 매체로 태어난,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보는 즐거움.



2. Untitled, 2013 © Nick 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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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물화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 장르다. 17세기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정물화는  어떤 곳에서는 죽음이 없는 생명을 그린 것이었고(natura morta - 프랑스어), 어떤 곳에서는 정지한 물체를 그린 것이었다(still life - 영어). 그린 대상을 통해 유한한 삶, 삶의 덧없음 등을 표현했다.

 작가 Nick Knight는 꽃을 찍음으로서 바로크 정물화를 재해석했다. Nick Knight의 사진 속 꽃들은 흘러내린다. 은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흘러내린다. 이는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에서 특수한 약품 처리와 빛 처리를 통해 사진을 일부러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물감이 흘러내리는 듯한 이미지를 사진을 통해 만들어낸 작가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해당 기법이 정물화 속 꽃의 의미도 더욱 강화시킨 느낌도 든다.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꽃은 유한한 인생,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세지로 해석된다. Nick Knight의 사진 속 꽃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녹아내린다. 어떤 사물을 정물화로 그림은, 특히 꽃을 정물화로 그림은 시들지 않는 상태를 박제하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러한 정물화의 의도를, 촬영된 사진에서도 꽃이 녹아내릴 수 있음을 통해 반박하는 듯 했다. 종이가 잉크를 완전히 머금지 못하는 현상이 재미있었다는 설명에 과한 해석일지 모르지만, 창작만큼 중요한 것이 수용자의 해석이라고 생각하기에.



3. Still Life, 2001 ©Sam Taylor-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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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절대 자취방 냉장고에서 썩었던 과일, 야채가 생각났기 때문은 아니다.) 그리 길지 않은 재생 시간의 이 작품은 (기억으로는 2-3분 정도였다.) 과일이 썩는 과정을 아무런 변화 없이 지켜본다. 무른 과일부터 곰팡이가 슬기 시작하더니 곰팡이가 모든 과일을 뒤덮고 쌓였던 과일의 전체 부피는 쭈그러들며 줄어든다.

 앞서 말했듯, 정물화는 '필연적으로 모든 존재가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를 표현한다. 이 영상은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정물화보다도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메멘토 모리를 실현한 작품이다. 썩어가는 과일을 보며 (한 편으로는 파리가 꼬이지 않음이 신기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4. Ophelia, Hever Castle, Kent, 2011 ©Mert Alas & Marcus Piggot

Mert Alas & Marcus Piggot_Ophelia, Hever Castle, Kent, 2011_ⓒ Mert Alas and Marcus Piggott.jpg


 Mert Alas와 Marcus Piggot은 영화 <캐롤>로 우리에게 알려진 루니 마라를 모델로 셰익스피어의 '햄릿' 속 오필리어를 재해석했다. 원작 그림은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작품으로 살짝 벌어진 입과 눈이 인상적인 그림이다. 사진 속 모델은 경직된 포즈로 물 위에 떠있다.

 대번에 보아도 오필리어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크기, 분위기에서 모두 압도적이다. 강하게 조명을 받은 흰 몸, 옷과 검은 물의 색채 대조가 도드라지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몸과 푸르른 녹색을 자랑하는 큰 잎들도 대조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 경직된 신체와 유연하게 흐드러진 자연. 문학을 소재로 그림이 그려지고, 그 그림을 소재로 새로운 사진이 만들어진다. 순전히 기술의 발달 흐름을 따랐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같은 재료로 다른 색과 맛의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은 신기하고 놀랍다. 그리고 한 명의 관객으로서, 독자로서 이는 매우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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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지 못했지만, 기울어진 창 밖으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던 케이트 모스, 오후의 햇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비스듬히 얼굴을 가리던 클라우디아 쉬퍼의 사진도 기억에 남는다.

사진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사진

사진과 그림은 평면에 어떤 장면을 표현한다. 도구와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물의 형식이 닮아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회화와 사진은 서로 비교되며 발전할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만나고, 새로운 작가를 알 수 있어 기뻤다. 앞으로도, 세련된 패션 화보의 상징-보그 지와 고전의 만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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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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