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畵談)] 제 1 화(畵) : 기쁨, 노랑으로 화(化)하다

글 입력 2017.08.0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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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그게 기쁨이야.


 피아노 앞에 소년, 소녀가 앉아있다. 소녀는 12살, 소년은 7살 정도인 것처럼 보인다. 소녀는 피아노를 친다. 경쾌한 멜로디가 듣는 이까지 신나게 만드는 곡을 연주한다. 옆에 앉은 소년에게 묻는다.


“어떤 기분이 들어?”
“햇빛에 병아리가 막 달려.”
(연주를 한 번 더 하고)
“이런 느낌. 그치?”
“응. 병아리들끼리 사이가 좋아. 막 장난을 치면서 돌아다녀.”
“그게 기쁨이야.”
“음~ 기.쁨.”
- 로맨스가 필요해 2013 1화 中

 
 2013년 방영된 ‘로맨스가 필요해 2013’의 한 장면이다. 내가 들은 기쁨에 대한 정의 중에서 가장 명쾌하고 잊기 힘든 정의다. 참으로 귀여운 아이들의 솔직한 느낌이 담겨 있어 좋아한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소녀가 연주한 멜로디까지 생생한데, 영상을 구할 수 없어 상상을 돕고자 필자의 그림을 첨부한다.


피아노를 달리는 병아리.jpg
<기쁨 : 피아노를 달리는 병아리>


 초등학교 그림 숙제 같은 유치함을 느끼셨다면 성공. 화담의 1화를 시작한다.


당신은 어떤 순간에 병아리들이
뛰노는 것 같은 기쁨을 느꼈나?




1. 설렘 : 페르디난드 게오르크 발트뮐러 'After School'


페르디난드 게오르크 발트뮐러 After School, oil on canvas, 1841.jpg
<페르디난드 게오르크 발터뮐러, After School, oil on canvas, 1841>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난리통에 넘어진 아이도 있고, 수업 시간이 어지간히 졸렸는지 아직도 눈을 비비는 아이도 있다. 할아버지가 마중 나온 아이도 있고, 자기들끼리 귀여운 사랑에 빠진 꼬마 커플도 보인다. 선생님이 제지를 하지만 쉽게 가라 앉지 않고 상기되어 있는 얼굴들이 주로 보인다. 중앙에 서있는 소녀에게 옆 친구는 표정으로 묻는 듯 하다. ‘이제 뭐하고 놀까?’
 
 사실 그렇다. 초등학교 때는 그저 수업이 끝나기만 해도 좋았다. 요새는 조기교육이 더 강조되면서 영어유치원, 영재유치원이 각광받고 초등학생들도 학원을 기본으로 두 개 씩은 다니는 것 같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과도한 사교육이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라 지금보다는 정도가 덜했다. 즉, 수업이 끝나고 놀 수 있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는 뜻이다. 당시에 문화회관에서 배우던 수영도 방과 후를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였다. 엄청 어려운 걸 배운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껏해야 열살 남짓한 아이들에게는 몇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 것만도 힘들기 마련이다. 방과 후는 그런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보상이다. 가만히 있는 것을 잘한 데에 대한 보상.




2. 안락 : 신하순 '오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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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순, 오늘 하루, 장지에 수묵담채, 2002, '박영택의 마음으로 읽는 그림 에세이 하루' 촬영본>

 
 침대 안이다. 같은 이불을 덮고 살냄새를 공유하는 부부 혹은 연인일지 모르는 남녀가 나란히 엎드려 있다. (화가가 본인과 부인의 모습을 그렸기에 부부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의 입이 움직인다. 하루 동안의 일을 얘기하나보다. 남자의 옆얼굴은 조금 모호하다. 종알거리는 여자의 입을 신기하다는 듯, 귀엽다는 듯 주시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아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웃으며 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 “오늘 빵집 앞을 지나는데 빵 냄새가 너무 좋은 거야. 참지 못하고 사오고 말았지 뭐. 내일 아침은 저걸로 때우자.” 뭐 이런 이야기들이 아닐까?

 그림은 아주 단순하다. 복잡한 선이나 여러 색을 배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못 그린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그림은 적지만 핵심적인 선들을 사용해 침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물을 머금은 엷은 황토색 장지의 표면이 마르기 전에 얇은 선을 그어 이미지를 남기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신하순은 일상에서 경험한 것들을 화면에 담아내는 화가다. 그는 일상을 그리면서 일상에 찌들지 않으며 삶의 매순간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견디고 침대에서 마주한 반려와 나의 일상을 공유하는 순간은 얼마나 안락할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체온을 나눌 한 사람이 기다려지는 그림이다.

(* 참고 - 박영택, 박영택의 마음으로 읽는 그림 에세이 하루, 지식채널, 2013)
 



3. 환희 : 구스타프 클림트, 연인(키스)(Liebespaar, The Kiss)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7-1908, gold leaf, Oil paint.jpg
<구스타프 클림트 연인(키스)(Libespaar, The Kiss), gold leaf, Oil paint, 1907-1908>

 
 기쁨과 노랑이라는 테마를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작품이었다. 어디서 본 듯한데 이름도, 작품 제목도 알지 못해 여러 책을 뒤적이기도 했다. 꽃밭 위에서 입맞춤을 나누는 연인의 모습이다. 아니 정확히는 볼에 키스를 받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다. 다소 불편해보이는 자세처럼 보이는데도 여성의 표정은 평화로워 보인다. 나는 저 표정이 사랑받고 싶은 이에게 사랑 받는 순간의 안정감이면서 환희의 일종일 거라 생각한다. 클림트가 실제 금박과 금색을 많이 사용하던 ‘황금 시기’의 대표작인 이 그림은 사랑을 욕망의 차원이 아니라 숭고하고 신성한 것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4. 노랑


glowing with joy.jpg

 
 노란색은 태양으로부터 상징의 기원을 찾는다. 실제 태양은 무색에 가깝지만, 표현을 함에 있어 노란색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태양으로 비롯된 노랑의 의미는 낙관, 긍정, 명랑, 쾌활, 친절 등으로 해석되며 특히 금빛으로 표현되는 경우는 존귀와 영광을 상징하기도 한다. 반대로 다른 색의 영향을 쉽게 받기 때문에 불완전한 색으로 평가받기도 하고, 검정색과 함께 경고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칙칙한 노랑은 배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모순적인 해석이 공존하지만 그림에서 드러나는 노랑의 의미는 긍정적인 감정에 더 적합할 것 같다.

‘After School’의 경우, 노란색이 주요 테마로 쓰였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따뜻한 색이 주를 이루고 있음은 알 수 있다. 학교가 막 끝난 오후의 햇볕이 그림에서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아이들의 상기된 얼굴과 어울려 설렘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에서는 채색은 보이지 않지만 배경이 황토색이다. 화가가 저런 색의 장지를 고르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림처럼 안락한 느낌이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연인(키스)’은 황금빛을 활용해 사랑의 환희를 표현했다. 연인의 관계가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황금빛을 통해 구현된 초월적인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란색으로 기쁨을 표현한 세 그림에 대해 살펴보았다. 글의 서두에서 필자는 당신이 어떤 순간에 기뻐했는지를 물었다. 무언가를 성취하여 보상을 받았을 때, 하루를 끝내고 일상을 나눌 때, 사랑하는 이로부터 사랑을 확인 받을 때. 당신은 어떤 기쁨에 가장 공감했나? 당신의 기쁨 역시 그림들처럼 노랑으로 화(化)하고 있나? 불 같은 사랑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하루를 끝내고 일상을 나누는 기쁨이 가장 와 닿는다. 상대가 그림에서처럼 연인이나 부부가 아니라 친구들이지만. 각자의 삶에 분주해져 시간 맞추기도, 얼굴 보기도 힘든 친구들과 가끔씩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이 내게는 기쁜 순간이다. 노랗게 빛나는 기쁨이냐고 묻는다면, 맥주가 영롱한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노라고 답하겠다.




다음 화() 예고 - 제 1.5 화() 기쁨, 다른 색으로 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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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메 플렌사(Jaume Plensa), 크라운 분수(Crown Fountain), 디지털 아트, 2004>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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