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잔잔하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한 사랑, 'Before 시리즈' -스포주의- [영화]

흔히 '비포 시리즈'라 불리는 세 편의 영화 속 대화할 줄 아는 사랑에 대해서
글 입력 2017.07.3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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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다면, 혹은 로맨스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항상 '비포 시리즈'를 추천한다. 추천한 뒤엔 잊지 않고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대화 많고 잔잔한 영화 좋아해?"


잔잔하지만 누구에게나 특별한 사랑
'Before 시리즈'


 비포 시리즈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으로 구성된 세 편의 영화 시리즈이다. 주연은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소개의 첫 단락에서 언급했듯 비포 시리즈는 두 주인공의 대화를 중점으로 이루어지는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를 추천해 줄 때는 꼭 대화가 아주 많은 영화라는 점을 덧붙인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로맨스 영화는 극적인 사건들 그리고 이를 풀어내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비포 시리즈는 다양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 에단 호크(극 중 제시)와 줄리 델피(극 중 셀린)의 ‘대화’를 보여준다. 영화 내내 주인공 두 사람 이외의 다른 인물은 비중 있게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속에는 많은 편집도 존재하지 않고, 영화를 감상하는 우리는 그저 둘의 곁을 지나가는 제3자가 된 기분으로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시리즈에 대한 두 가지의 반응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첫 번째는 지루할 것 같다는 반응, 두 번째는 궁금해서 한번 보고 싶다는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것이 생각보다 재밌고 설렌다는 것이다. 대화만 한다고 하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대화는 두 사람의 생각과 서로에 대한 호감, 그리고 감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창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연극을 보는 기분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100분 남짓의 긴 러닝 타임이 금세 지나간다. 영화를 보는 우리는 때로는 둘의 생각에, 혹은 한 사람의 생각에만 공감하기도 하고 생각이 잘 맞는 두 사람을 보며 설레기도, 둘 사이의 긴장감을 느끼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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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 1995,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비포 선라이즈는 비포 시리즈의 가장 첫 번째 영화이다. 기차에서 처음 만난 두 주인공이 함께 비엔나를 여행하는 장면을 담았다. 비록 꿈같이 짧은 하루 동안의 시간이지만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과 호감을 키워가는 내용이 담겨있어 시리즈 중 가장 설레는 편이다. 비엔나를 배경으로 촬영하여 시리즈 중 가장 영상미가 아름답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누구나 사랑하고 싶어질 듯한 설레는 배경 안에 처음 만난 풋풋한 두 주인공이 참 잘 녹아 들어있다고 느껴졌다.


 여기서도 대화는 두 사람에게 단순히 말을 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운명을 느끼는 장치가 된다. 비포 선라이즈의 몇 장면만 보더라도 처음 만난 사람끼리 저렇게 잘 통할 수 있을까, 둘은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운명이라고 느껴진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지며 이야기가 끝난다.


비포 선라이즈 명장면, 진정한 사랑에 대해 말하는 셀린


"네가 아까 커플이 몇 년 동안 같이 살게 되면, 상대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고 또 상대의 습관에 싫증을 느끼게 돼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고 했잖아. 난 정반대일 것 같아. 난 상대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정말 사랑에 빠질 것 같거든. 가르마를 어떻게 타는지 이런 날은 어떤 셔츠를 입는지, 이런 상황에선 정확히 어떤 얘기를 활지 알게 되면 난 그때야 비로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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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 2004,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두 번째 시리즈, 비포 선셋이다. 첫 번째 시리즈에서 하루 동안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두 사람은 결국 셀린의 사정으로 만나지 못한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연락처도, 아무 정보도 없이 헤어져 다시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은 바로 제시의 책이었다. 두 사람의 하루를 담은 책. 그 책을 보고 셀린은 제시를 찾게 되고 둘은 파리, 제시의 사인회에서 재회한다. 재회한 두 사람의 하지 못했던 대화들로 이루어진 비포 선셋은, 나에겐 가장 인상 깊은 시리즈로 남아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만나지 못했던 이유를 원망하고 또 그사이에 변해버린 상황을 마주하면서 서로에게 가장 진실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재회한 제시에게 노래를 선물하는 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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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재회해 기뻐하기도 하고 서로를 원망하기도 하는 두 주인공


 셀린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이미 결혼해 아이도 있는 제시, 그리고 비엔나에서 헤어지기 전 약속했던 곳에서 셀린을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제시. 둘은 이어질 수 없는 상황에 서로를 탓해보지만, 결론은 서로 함께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셀린은 제시의 불안정한 결혼 생활을 함께 들어주고 고민해주지만 결국 폭발한다. "내겐 남은 게 없어 너와 보낸 그 날 밤, 나의 로맨티시즘을 모두 쏟아부었기 때문이야. 네가 나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 버린 것 같아.."라며 진심을 전하고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잊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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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미드나잇, 2013,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마지막 시리즈인 비포 미드나잇은 중년이 된 두 주인공을 담은 편이다. 놀랍게도 두 주인공은 한 지붕 아래 함께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예쁜 두 명의 딸도 있고, 제시와 제시의 전 부인 사이의 아들도 잠시 다녀간다. 흔히들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말을 한다. 비포 선셋은 함께할 수 없을 줄 알았던 두 주인공이 함께 있다는 이유로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두 사람이 아이를 키우고 같이 살고, 싸우기도 하는 결혼 생활을 보여줌으로써 아주 현실적이기도 하다.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완벽한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은 이 시리즈는, 비포 선라이즈의 풋풋한 설렘과 비포 선라이즈의 서로에 대한 그리움은 사라졌지만 대신 안정감과 편안함이 남아있다. 또한, 처음의 설렘과 기대를 넘어 일상을 함께하는 현실적인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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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의 초반부, 앞선 시리즈들에 비해 익숙하고 현실적인 장면


 비포 시리즈가 매력적인 이유는 영화 주인공의 생각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다룰 때는 주로 어떠한 사건에 놓여있는 주인공의 행동을 그렸다면 비포 시리즈는 주인공의 생각을 보여준다. 비포 시리즈에서 배경은 그저 배경일 뿐 주인공들은 그 속에서 전혀 상관없는 화두를 던지기도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을 말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특별하게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런데, 너는 어때?’라고 질문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 영화가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운명적으로 만난 두 사람이 실제 중년의 부부가 되어 일상을 살아가는 장면을 담으면서 특별한 사랑이 잔잔한 일상으로, 하지만 그 무엇보다 깊은 사랑으로 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 과정이 인위적이지 않아서 더욱 좋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 진짜 셀린과 제시의 삶을 보는 것 같다. 거기에 큰 몫을 하는 것은 시리즈가 몇 년간의 긴 기간을 가지고 제작된 점이다. 영화 속 배우들도 자연스레 세월이 흐른 모습으로 변해있어 특별한 분장이 없이도 시리즈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타인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시선이 궁금하거나 사랑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면 이번 주말 비포 시리즈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잔잔한 흐름의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가도 그 잔잔한 대사들에 울고 웃고, 공감하고 또 화를 내기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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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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