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디까지 쿨해질 수 있니? [영화]

영화 '비치 온 더 비치'로 '연애'를 말하다
글 입력 2017.07.2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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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을 망치고 무작정 전 남자친구의 집으로 온 ‘가영’과 그녀를 ‘받지마’라는 이름으로 저장해놓은 전 남자친구 ‘정훈’. 정훈은 가영이 집 앞에서 건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가영이 문을 두드리자 마지못해 그녀를 안으로 들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연인 관계인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좋아하는데 헤어지고 나면 둘 중 하나는 누구에게도 티내지 않고 감정을 정리한다. 나머지 한 명은 옛 감정에 사로잡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시기를 거치게 된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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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 ‘비치 온 더 비치’는 ‘해변 위의 나쁜 여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영화 초반 먼저 연락을 한 것도 가영이고 무작정 집에 쳐들어와 잠자리를 요구하는 것도 가영인데 왜 그녀를 ‘나쁘다고’ 표현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당시 이별의 아픔에 슬퍼하던 난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 ‘을(乙)’이고 더 미련이 남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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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정훈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공감하게 되는 내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정훈은 여전히 관계(가영)에 대한 감정들을 간직하고 있었고 이를 알면서도 정훈의 집에 당당하게 찾아온 가영의 행위는 명백한 갑(甲)질이라는 것을. 특히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고 원위치로 돌아가려는 정훈에게 “이건 아닌 것 같아.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 집에 가서 너무 우울할 것 같아. 나 첩된 기분이었어. 걔(여자친구) 오지 말라고 해”라며 화내는 가영의 모습, 그리고 “너 진짜 너무해. 막말로 너 나랑 잘해볼 생각도 아니잖아”라며 응수하는 정훈의 말에 공감, 동정, 분노 등 갖가지 감정이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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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은 언제나 을일 수밖에 없는 걸까? 정훈은 결국 여자친구에게 연기까지 해가며 아프다는 거짓말을 한다. 누가봐도 참담하고 답이 없는 상황임에도 정훈이 여자친구와 통화를 끝내자 어딘가 유쾌해 보이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정훈뿐만 아니라 정훈의 새 여자친구에게도 감정 이입을 하던 나는 이 영화가 철저히 가영의 편인 것 같아 괜히 심술이 났다. (가영을 맡은 배우가 실제 감독인 걸 고려하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겠다)
 
가영은 끝끝내 목적을 이룬다. 음악은 머리를 감은 가영이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맥없이 끝나버린다. 나쁜 여자... 아니, 쿨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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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나란히 누운 둘은 헤어짐의 기억을 떠올린다. 가영은 “나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되게 슬프다. 네가 너무 아팠을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 “좋은 추억을 그냥 좋은 추억으로 남길 순 없냐”는 정훈의 말은 그가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을인 것도 서러운데 갑은 왜 이렇게 솔직하고 쿨한 모습만 보여줘 을을 더 비참하게 하는 걸까.
 
가영은 일상적인 대화를 즐기다 돌연 집 밖으로 나가버린다. 들어올 때처럼 뜬금없는 퇴장에 먼저 전화를 거는 건 정훈. 문을 열어줬으면 최소한 나갈 때 말이라도 할 수 있었잖니, 가영아. ‘잘생긴 오빠’를 만나러 간다는 가영의 말에 정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나 혼자 먹은 것 다 치웠다”는 변명으로 보는 나까지 지질한 기분이 들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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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을’로 연애의 시작과 끝을 맺은 사람으로서,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정훈의 모습에 기겁하면서도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연애엔 나도 ‘갑’이 될 수 있을까? 원하는 건 모두 쟁취해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져버린, 그러나 상대의 마음을 온갖 흔적으로 칠해놓는 쿨한 사랑을 하게 될 그 날이 기대된다. 어쩌면 평생 안 올지도 모르는 그 날이...





* 이미지 출처 : 영화 스틸 이미지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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