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랭보의 물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이미지, 답 [문학]

인간의 죄는 먹음으로 시작되니. 나 그 죄 겸허히 받아드리리라. 삶이 있다면.
글 입력 2017.08.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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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jpg


우리 인생은 불행이다.
끝없는 불행의 연속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일까?

-아르튀르 랭보가 죽기 전 남긴 말


나는 왜 태어났을까요. 어릴 적, 가슴에 피멍이 든다는 말을 세상을 통해 배우면서 나는 이 질문으로 스스로 그 가슴에 못을 박았다.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였다. 녹이 슬어라, 녹이 슬어서 영원히 잊지 마라. 그 질문을 빼면 너는 죽는 거야. 나를 닮은 누군가 속삭였다. 나는 묘하게 위안을 얻는다. 이렇게 이 복수의 상태는 암묵적 선, 세상에 대항하는 순결이 된다. 세상에 나 홀로 숭고해지는 것이다.

이후 랭보의 저 마지막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도 그런 심오하고 똑똑한 것에 대해 모르는 체 했다. 여자 백치는 살기 좋다. 그것이 내 지론이었다. 알면서 모르는 체 하는 게 세상 굴리는 데 편하지. 그런 식으로 내가 스스로 권위를 하사한 못이 나를 조정하는 것을 모르는 체 했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을 믿고 - 그것이 이 시대의 자존감 높은 사람이고 옳은 사람이니까 -, 더 높은 것을 찾아서, 내 삶의 이유, 내 탄생 설화를 궁금해 하는 체 하며 살았다. 이야기라도 들려 줘요. 새드 엔딩이라는 게 어떤 우연 같은 거라고 하지 말고, 부처님, 하느님, 진짜 이유를 말해 봐요. 다 믿어줄 테니까.
나는 왜 태어난 거에요?
하지만 답은 없었다.

언젠가, 서서히 내가 보통 어른들과 체격이 비슷해질 무렵,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졌다.
하나는 내 머리를 부술 권리였고, 다른 하나는 물컹한 무언가를 먹는 것이었다. 그 물컹한 무언가는 너무 혐오스러워서, 가끔 학교 자습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서서히 내게 다가왔다.

그것은 처음에는 귀여운 아기 같은 것이다. 피부에 한 점 흠결없이 매끈하고 보들보들하며 예쁘다.
그렇게 한참 오물딱 조물딱 만지고 있다 보면 그 물컹한 것은 주름지고 구멍이 딸기처럼 뚫렸으며 그 사이로 구더기 같은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것으로 변한다.
그렇다. 내가 먹어야 하는 것은 일종의 삶이었다. 태어남과 죽음. 나는 그것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싫어 도망다니기도 하였다.
그러면 그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온 아기의 얼굴을 하고 해맑게 웃는다. 구더기가 땀구멍으로 흘러나온다. 혐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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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GHIBLI


도망침에 지쳤다. 삶의 혐오스러운 얼굴을 마주보는 것에 지쳤다. 더 이상 내 삶이 궁금하지 않았다. 혐오 이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머리가 점점 아파오고 손목이 점점 신경쓰일 때, 점점 첫 번째 선택으로 기울 때, 누군가 평범히 물었다.
그런 삶은 유령과 무엇이 달라?

나는 처음으로 내가 되어 평범하게 울었다. 더 이상 백치인 체 하는 것도, 자존감 높은 체 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구나. 나를 사랑한 사람도, 자신의 삶도 마음 속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심을 잃은 채, 결국 스스로를 모두를 비웃을 줄만 아는 드라큘라, 혹은 유령으로 만들었구나. 나는 이렇게 숨을 쉬고 살아 있는데. 어쩌면 누군가 못을 빼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티나게 박아두면, 누군가 말을 걸어 주겠지 하고. 처음부터 잘못된 어린 복수였다. 처음부터 삶을 외면하고 있었다. 가오나시처럼.


보통 가오나시.jpg
 
흐콰한 가오나시.jpg
ⓒSTUDIO GHIBLI


'삶의 이유'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법'을 배웠다. 이런 식으로 내 삶이 되어준, 녹슨 못이 되어준 내 마음대로 '랭보'라고 이름붙인 어떤 순결은 그저 하나의 기억으로 남겨두고, 나는 두 번째 선택을 하나 보다. 그것을 선택하는 과정은 외로워질거야. 더 이상 내 착한 친구 못이 없으니까. 랭보는 죽었으니까. 나 이제 더 이상 순결하지 않네. 나도 평범한, 다른 더러운 것들과 똑같아. 그러니까 랭보야, 마지막 문장을 바꾸자. '그런데 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문장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일까?' 로. 내가 만들거야. 나 이제 죄를 짓네. 나는 물컹한 무언가를 먹는 선택을 하고 있다. 인간의 죄는 먹음으로써 시작되니. 나 그 죄 겸허히 받아드리리라. 삶이 있다면.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버티면서 살다가, 독소가 너무 쌓여 토해내야 할 때, 나는 나만의 서사를 만든다. 그럼 어느 정도 독이 해소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내 안에 쌓이고 쌓인 독같은 단어들을 쓰고 나면, 며칠 간은 살 힘이 난다. 이야기를 잘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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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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