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공연예술]

단 한 대의 피아노 그리고 따스함
글 입력 2017.07.26 03:1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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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사람들로 잔뜩 붐비는 대중교통 안,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집으로 걸어가는 시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어지는, 우리가 음악과 함께 하기 좋은 순간들이다. 특히나 저런 순간엔 가사 없는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왜 가사 있는 노래를 들으면 더 정신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럴 땐 힘내라는 노래를 담은 가사도 별다른 위로가 되지 못하고, 신난 노래를 들으면 억지로 신나야 할 것만 같아서 도리어 짜증 나기만 한다.


  가끔 가사 없는 음악을 듣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그건 이미 머릿속이 복잡한 것들로 꽉 차있어서 더 이상 문자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혹은 가사 없는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감성을 가득 채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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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신기한 것이 '클래식을 듣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악기가 많이 대동된 클래식을 들으면 웅장하고 화려하긴 하지만 많은 것을 주는 느낌이라 듣는 상황에 따라서는 조금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대신 악기가 최대한 덜 편성된 곡을 찾아본다. 악기 하나로 연주되는 곡은 간결하지만 충분히 풍부한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부담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 중에서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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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곡이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있는 건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영향이 크다. 이 영화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사용된 장면은 아주 적절했다. 우리가 한 번쯤은 그리워할 법한 고등학교의 방과 후 장면이 지나가는 동안 이 곡은 함께 연주된다. 하루 종일 시끄럽고 복잡했던 교실에서 학생들이 빠져나가면 학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해진다. 텅 빈 학교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분위기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적절히 녹아들었다. 잔잔하게 깔리는 이 음악은 나른하면서 평화로운 오후의 모습 그 자체였다.


  32개로 이루어진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느껴지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스함'이다. 이 변주곡의 첫 번째 순서인 아리아는 몇 번이고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포근하게 감싸 안는 듯한 느낌이 좋다. 지난가을 해가 적당히 내리쬐던 날, 동네 놀이터 벤치에 가방을 베고 누워서 기분 좋은 날씨를 만끽한 적이 있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던 그때에 이어폰으로 들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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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프랑스 파리에 잠시 머물렀을 때 이 곡이 연주되는 것을 직접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공연장은 작은 성당이었는데 조명 하나 없이 어두운 곳이었다. 정적 속에서 연주자를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나타나서 초에 불을 붙였고 주황색 은은한 빛이 무대를 밝히기 시작했다. 둘러보니 성당 안의 벽화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작은 규모의 성당에 꼭 어울렸다. 여성 연주자는 조심스럽게 등장했고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작은 무대에 놓인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는 그런 소박한 공연이었고, 귀에 들리는 선율이 너무나 편안해서 눈을 감아 듣고 싶은 그런 공연이었다.


  만일 음악에도 감정이 있다면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지나침 없이 평삼심을 유지할 것이다.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 없이 아주 적당하게 흘러갈 것이다. 밝은 순간에도 지나치게 쾌활하지 않고, 조금 서늘한 순간에도 지나치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듣는 사람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정을 잃지 않을 수 있다.


[고영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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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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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olo
    • 와, 저도 이 음악 정말 좋아하는데요. 늘 어떤 느낌인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했었는데, 이런 느낌이었구나 싶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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