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후에 [문화 전반]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일, 누군가에겐 당면한 일
글 입력 2017.07.2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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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는 몰랐지만 먼 시간이 지난 후에 지금 돌아보면 나는 어릴 적 생각없이 대찬 녀석이었다.

  너희 아버지는 뭘 하시냐고 묻는 영어학원 선생님에게 나는
"우리 아빠는 집에서 쉬어요 직장 그만뒀어요"라고 별 생각 없이 얘기했다. 선생님은 당황했지만 부끄러울 건 없었다. 그 땐 거짓말이 더 잘못처럼 느껴지던 때였고 아직 세상에서 더더욱 쪽팔림이나 부끄러움을 모를 때였다. 매일 가족들과 떨어져 오래 일하시던 아빠가 주말에만 만날 수 있던 아빠가 매일매일 집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매번 희한하게도 부모님의 직업을 조사해서 냈다. 그 때는 나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뭐라고 쓰는 게 좋겠어?"
엄마한테 한번씩 물어보게 되었다. 친구들이 나의 아버지의 직장을 마음대로 유추할 때 나는 그냥 흐르는대로 대화를 넘기고 답하지 않았다. 멋대로 교장을 하시는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듣곤 했다. 이미 그때는 정보가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때였기 때문이다. 내가 싫거나 좋아서 하는 말은 그러려니 한다. 혹여나 아무 잘못없는 부모님이 정보가 알려져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걔네 아버지는, 로 시작하는 말은 원치 않았다. 범생이 노릇은 아마 그 날로 종쳤을 수도 있다. 경비원이나 아파트 청소일이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대학에 와서는 질문이 없이 추측이 돌아다녔다. 아주 평범하고 남다를 것 없는 일반고를 나온 내게 특목고를 간 게 아니냐, 조기 졸업을 한 게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후에 건너 듣곤 했다. 빠른년생도 아니고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을 둔 덕에 한 해 일찍 학교에 들어간 미스터리때문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때는 한 살 어려도 초등학교 입학에 간단한 면담 후 꼽사리가 가능했다. 내 이야기였지만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뜬구름 같은 이야기들. 직접 물어봤으면 될 걸 괜히 아깝게 추측은. 나의 부모님은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많게는 10살이나 차이가 났고 다만 친구들은 은퇴 후의 삶을 아직 잘 모를 뿐이었다. 다만 알리기에도 그들을 잘 믿지는 못할 뿐이었다.

  은행에 다니시고, 회사에 다니시면서,
'그래도 우리 딸 아들 학비는 대줘야지. 하고 싶은 거 다하렴'
고시며 대학원 지원해주신다는 친구 부모님들 말씀이 가끔 부럽기는 했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정말.
누군가 나에게 '넌 참 철이 일찍 든 것 같아'라고 했다. 예전엔 어른스럽다는 말이 칭찬같기도 하고 나쁘진 않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잘못된 기분이었다. 뭔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다. 급속도로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도 철이 일찍 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힘이 들거나 지치면 가끔 상상도 해봤다. 다른 집에서 태어나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면 어땠을까. 그러나 나는 바꾸고 싶진 않았다. 비교는 파괴적이다.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는 더 치명적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가질 수 없는 것이나 할 수 없는 일에 신경쓰면 나는 금방이라도 온세상 불행과 우울 속에 온몸을 적시곤 했다. 학비를 줄이려고 참 애를 썼었다. 대학을 합격한 기쁨도 30분만에 차분해지게 했던 어딜가나 빠지지 않는 등록금이란 녀석. 장학금을 찾고 용돈을 벌고 하고 싶은 일은 스스로 돈을 모아 조금 돌아가더라도 이루면 된다. 어차피 누구 이기려고 사는 인생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은 것 같은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당면한 일이다. 누군가에겐 청춘을 즐기며 꿈을 찾아 여행 한 번 떠나는 게, 하고 싶은 일 하기 위해 겁도 없이 뛰어드는 게, 너무나도 빛좋은 개살구 같은 일이다. 가끔은 왜 나만 이래야 하는지 더 힘든 사람을 생각하면 복에 겨운 소리였고, 더 편한 사람을 생각하면 서러운 소리가 불쑥불쑥 고개를 쳐밀기도 했으나. 사실은 부모님께서도 알고 있으셨으리라. 보탬이 되지 못함에, 미안해 하시는 모습에, 세상의 부모님들 사이에도 우리들 사이에 있는 비교의 덫은 똑같이 놓여 있음에, 나는 그냥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기로 했다. 나만 여행 못간게 아니라 부모님도 못 갔고 늘 필요없다 하셔도 사실은 필요한게 많았을 분이다. 부모라는 이유로 희생이 당연한 건 아니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이래야 하는 게 아니다. 혼자 그런게 아니라 모두들 그러고 있었던 거다. 뜻밖에 우리는 부모자식으로 만나 남모를 고생을 할 뿐이다. 아무한테도 말도 못하고.

  후회는 없다. 아니, 부끄럽게도 매번 쳇바퀴처럼 반복하고 있다. 누가 부럽고 내가 아쉽다가도 나는 아니라고 하는 끝없는 쳇바퀴. 그래, 아니다. 누군가에겐 쉽고 누군가에겐 어려운 일이 있듯 돈은 누군가에겐 많이 돌았고 누군가에겐 적게 돌았을 뿐이다. 인생은 쉬우면 또 늘어지고 재미가 없으니 나에겐 좀 더 복잡한 퍼즐을 더 많이 배워가라고 심어놓았을 뿐이다. 원하는 것을 내 힘으로 얻어내는 것, 혼자가 아닌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까지 생각한다는 것.

  그렇게 인생을 살아낸다는게, 때로는 버텨낸다는게, 그 먼 후에도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으리라.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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