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영하의 검은 꽃 : 불타는 땅에서 쓰여진 근대의 역동 [문학]

글 입력 2017.07.2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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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검은 꽃> 
: 불타는 땅에서 쓰여진 근대의 역동


살아가다 보면 알 수 없는 이끌림이나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의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책을 끝까지 읽은 후 첫 장을 다시 펴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새벽 3시가 넘을 무렵 책의 마지막장을 넘긴 후 왜인지 모르겠지만 첫 장을 다시 폈다. 그리고 그 때에서야 비로소 책을 끝까지 읽었음을 깨달았다.

소설가 김영하는 독특하고 확고한 세계관과 탁월한 스토리라인으로 탄탄한 작품성을 일찍이 인정받은 작가이다. 그는 언제는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고는, 그 가운데로 들어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한다.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을 쓰고 리얼리즘이지만 리얼리즘이 아닌, 역사소설이지만 기존의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것들을 만들어 낸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빛의 제국>,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와 같은 김영하의 대표작들과는 또 다른 매력과 성격을 가진 <검은 꽃>은 1905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담담한 문체로 현대인의 감성을 날카롭게 찌르던 이 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과거의 서사시를 보여주지만 여전히 그의 소설은 차가우면서 균형 잡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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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의 제물포항 모습)


<검은 꽃>은 1905년 제물포항에서 시작된다. 들어본 적도,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멕시코로 떠나기 위해 1033명의 조선인들이 모였다. 그곳에서 시작될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저마다 안고서 배에 올랐다. 커다란 화물선 아래 칸이 그들의 자리였다. 반상의 구분 없이, 남녀의 유별 없이 뒤엉켜 앉아 몇 달을 꼬박 보내야만 했다. 퇴역 군인, 몰락한 양반가, 도망친 파계신부, 박수무당, 고아, 도둑. 배 안에서는, 그리고 앞으로 그들이 닿을 곳에서는 그런 것들이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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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들이 주로 일했던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


근대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로 세계가 흔들리던 시기의 조선인 멕시코 이주민들은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삶을 버텨간다. 일 하면서 다치지 않는 법을 터득하고, 그 나라의 식재료로 김치를 담그고, 농장주와 싸우고 때로는 협상하며 살아간다. 작가는 덤덤한, 그러나 예리한 시각으로 그들의 근대화를 풀어낸다. 작중 인물들은 국가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그들은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시험한다. 누군가는 타락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며, 누군가는 타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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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에네켄 농자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


여러 명의 등장인물에 혼란스러울 법도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애환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고 그들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다. 그것은 한 민족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 개인의 이야기이기도하고 멕시코에서 삶을 개척하고 있는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300페이지를 넘기는 책이지만 이야기가 끌어당기는 힘은 책을 단숨에 읽어 내리게 한다. 김영하는 이렇게 역사소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남기며, 독자에게 강렬하고 뜨겁고 때로는 허탈한 경험을 남기며 또 하나의 소설을 마무리했다.


[유세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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