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더위를 날려줄 꿈같은 공간, 최인아책방 [문화 공간]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최인아책방' 탐방기
글 입력 2017.07.2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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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어느 여름날 저녁,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책방으로 향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거리가 꽤 됐지만 새로운 공간이 주는 설렘에 비하면 다리가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건물과 차로 빽빽했던 사거리를 지나오니 왼쪽으로 성종의 묘가 위치한 선정릉이 보였다. 치세에 능했던 성종은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왕도정치를 펼치며 조선 개국 이래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한다. 답답하고 바쁘기만 한 건물들 사이에서 고고히 여유를 부리는 모습만큼 그 안에 담긴 역사도 어찌 그리 차분한지.

음식점, 회사, 상점 등 일관성이라곤 하나도 안 보이는 거리를 지나다보면 유럽에서나 보일법한 옷가게를 발견할 수 있다. 얼핏 저택 대문 같기도 한 입구 옆으론 작은 통로가 나 있는데 이곳이 ‘최인아 책방’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지금부터 글로 만날 수 있는 ‘가장 생생한’ 최인아 책방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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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막 질 무렵이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책방은 9시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주변이 조용하다. 나무바닥을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산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일까? 책방 로고에 담긴 의미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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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아 책방은 4층에 있다. 계단으로 한 층을 올라간 뒤 엘리베이터를 탔다. 해리 포터가 친구들과 함께 '비밀의 숲'으로 향할 땐 지금보다 훨씬 떨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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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거대한 적갈색 문과 마주했다. 냉방때문에 문을 닫아놨으니 편하게 들어오라는데 내가 혼자 갔더라면 문을 열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을 거란 생각에 아찔함과 동시에 동행자에 대한 사랑이 샘솟았다. 내 옆에 있던 나의 동행자는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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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아 책방은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사다리를 이용할 정도로 높은 곳까지 책이 빽빽이 진열돼있었으며 옆으로 넓게, 위로 높이 퍼져 있어서 주변 건물들과의 이질감을 극대화했다. 들어가자마자 크기에 압도되어서일까? 최인아 책방에 머무는 동안 이 공간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여기가 4층이란 것도, 이 건물 1층엔 고풍스러운 옷가게가 있다는 사실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어쩌면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때문에 잠시 환상에 젖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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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을 찬찬히 둘러봤다. 책을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를 위한 공간을 발견한 기쁨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조심스레 카메라 셔터를 놀렀다. 얼마 전 연주회를 열어서인지 손때가 많이 타 보이는 피아노, 오랫동안 앉고 싶어질 만한 푹신한 의자를 보고 있으니 이렇게까지 순수한 서점이 있다는 것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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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최인아 책방에서 책을 판매하려는 의지가 아예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독립 서점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책을 팔려는, 혹은 책을 '소개'하려는 의지가 더 크다. '출판사 테이블'이 대표적인 예다. 대중들이 잘 알지 못하는 낯선, 그러나 좋은 작품을 내놓는 출판사들을 선정해 3주간 무상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최근 출판사 테이블 자리를 차지한 출판사는 올해로 5주년을 맞은 '남해의 봄날'이었는데 '이 달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해당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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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최인아 책방은 '북카페'가 아닌 '책방'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싶다면 먼저 책을 구매해야 한다.

최인아 책방의 트레이드 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책 추천 코너도 빠지지 않고 둘러봤다. 각 연령대에 느끼던 고민에 공감하거나 운이 좋으면 해결책을 제시해줄지도 모를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괜찮은 삶을 살고 싶다!!' '특히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책'은 문장 자체에 끌려 사진으로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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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가본다. 책방엔 손님이 얼마 없었기에 더욱 조심해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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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뷰를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이었다. 1층 카페에서 시킨 음료를 옆에 두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래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천국일까? 이번에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 때문에 지나치게 낭만적인 생각에 빠진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가슴이 뻥 뚫리며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맨 처음 이곳을 들어서며 느꼈던 긴장감은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그냥 여기서 이불 깔고 자고 싶다는 유치한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책방을 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색하던 적갈색 문이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나치게 큰 건 여전히 부담스러웠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는데 더운 바람이 불어오며 이곳이 '현실'이란 걸 온몸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뭐, 내가 찾기만 하면 언제든 무더위를 날려줄 꿈이란 걸 알았으니 등줄기에 흐르는 땀이 전만큼 끔찍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
최인아책방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521
평일 11:00~21:00
주말 및 공휴일 11:0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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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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