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글 입력 2017.07.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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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술과 안주를 찾아 지구 한 바퀴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본격적으로 술을 마주한 건 작년 가을경부터다. 제주 브루어리 여행을 다녀온 후 '수제맥주'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면서 지난 겨울부터 하루에도 '술'을 거론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맥주 학교를 다니고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더는 '술을 마신다'에서 그치지 않고 '술을 배운다', '술을 알아간다'가 되면서 음주 목적이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건 바로 읽는 책들의 관심사, 주제였다. 물론 지금도 소설이나 다양한 카테고리의 책들을 읽고 있긴 하지만, '술'에 관한 신간이나 서평을 보다 더 꼼꼼히 챙겨보고 있다. 특히 책을 내야하는 작가 입장에서 혹은 내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 입장에서 책을 살펴보다 보니 '술책'이 어느덧 내 인생의 중대한 '술책'術策*이 되어 주었다.
 

* 술책: 어떤 일을 꾸미는 꾀나 방법을 일컫는 말.
 
국내 브루어리 여행을 마치면, 미국으로 더 나아가 유럽으로 맥주여행을 떠나고 싶고, 글을 쓰고 나를 위한 책을 만났다고나 할까?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은 만나기 전부터 기대감에 벅차 있었던 책이다.
 

 
'수줍은 남자의 40년 술사랑'
 

프롤로그의 첫 제목은 서문부터 그가 얼마나 술을 사랑했는지 가늠하게 해 주었다. 제목을 이어 시작된 첫 문단에서 저자는 네 살부터 술을 마셨다라는 독백을 하고, 어린 시절부터 '술' 로 지샌 시간과 에피소드를 스스럼없이 꺼내 놓는다. 솔직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는 술을 사랑 아니 술과 살았다. 내가 술인지 술이 나인지 분간이 안 될 저자의 술 예찬서이자, 전 세계를 유랑하듯 다니며 마신 술과 음식 이야기, 그러니까 바로 그의 수줍은 음주 40년의 고백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지구를 방랑하듯 다니며 남긴 이 책은 '술'도 술이거니와 안주발로 한상 거하게 차린 맛깔스런 미식일기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진가로, 문필가로, 화가로, 요리연구가로 전 세계를 다니며 그가 맛본 술과 음식은 사실 좀 평범하지는 않다. 다채로운 관심사로 낯가림이 없이 무엇이든 경험하고 말 것 같은 그의 성격 탓도 있겠지만, 맛있는 술과 안주가 인격을 육성해 준다는 그의 철학이 글 사이, 단어 사이, 획 사이에 스며 들어 있다.
 
 
과거에, 영국은 상류사회에 속하는 사랆과 노동자 계급이 엄격하게 구별되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속하는 계급에 맞추어 두 개의 문 중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들어가게 된다. 즉, 손님들은 계급에 따라 각각 다른 문으로 들어가 각자의 방에서 맥주 등을 마셨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존재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불편한 쪽의 문 하나를 사용하지 않는 퍼브도 있다. 이것은 주인의 재량에 달린 문제다.

(본문 26페이지, 퍼브에 죽치다 中)
 
 
영국 펍의 문이 두 개인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던, 술을 마시는 데도 신분의 차별이 있었던 사실을 이 글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정보를 그가 여행을 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책을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술을 마시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직접 술을 밎고 담가보는 과정을 담아낸 그의 필력은 정말 대단했다. 사실, 내가 가장 닮고 싶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느낀 그 순간의 찰나를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어떤 단어를 조합하여 문장을 써야 할까? 이런 고민들이 머리 속에서 교차하는 가운데, 그가 풀어낸 문장들은 참 아름다웠다. 만든 술을 지금 당장 마시고 싶을 만큼 말이다. (아쉽게도 술은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해서 바로 마실 수 없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포도를 짜는 무명 자루에 민들레꽃을 물과 함께 붓고 거른다.

자루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물은 레몬수처럼 맑다. 그것과는 별도로 1리터의 따뜻한 물에 설탕 5백 그램을 녹여 35정도가 되면 드라이 이스트를 첨가한다. 안마당에서 바깥마당으로 통하는 입구에 커다란 도자기 화분이 있는데 레몬이 화성처럼 매달려 있다. 그 열매를 두 개 땄다. 레몬 껍질은 즙을 내고 과육은 쥐어짜서 민들레 물에 붓는다, 그때 수많은 거품과 거품이 부딪히며 부서지는 듯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그 때문일까, 두 마리의 고양이가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슨 소린가, 하며 귀를 기울였다.

드라이 이스트를 넣은 법랑 용기 바닥에서 우주의 머나먼 음향과 함께 투명한 캡슐이 끝없이 올라왔다. 그러나 지구의 공기에 부딪히면 마치 거대한 군함에 부딪힌 잠자리처럼 부서져 버린다. 끝도 없이 발생되는 거품. 나는 그 투명한 거품을 함유하고 있는 액체를 병에 담았다. 여름을 가두는 마법사처럼... 그리고 한동안 그대로 숙성시켰다. 이제, 마음이 내킬 때면 언제라도 여름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본문 97페이지, 민들레 와인 中)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은 술을 마시다 생긴 묘한 인연과 에피소드들이 많다. 가령, 두 여자와 밀실에서 술을 마신 이야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19금은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들이 오는 비어 파티인 줄 알고 갔더니 남자들만 가득했던 (여긴 게이들의 모임이었다), 한국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고 남긴 글도 소개되어 있다. (그는 부산과 서울에서 술을 마신 모양이다).
 
 
내가 마셔본 술도 있고 아닌 술도 있고, 이색적인 안주(다 소개하자면 놀라실 것 같고 염소찌개, 벌레가 들어간 음식 정도만 소개하겠다)는 그가 풀어낸 글에서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주당'이고 '안주당'인지 알 수 있었다. 가끔 저자의 아내 이야기도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남자 못 만나겠다. 책으로만 만나고 싶다. (부담스럽다. 호호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묘사하는 술의 문장력은 정말이지 닮고 싶다.
 

"목구멍을 넘어갈 때에는
우유를 먹는 듯한 감각이지만
잠시 지나면 위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면서
피로가 사라진다."

(스코틀랜드, 스카치 中)


"시큼하면서 시원한 맛과 함께
발포주의 강렬한 자극이 느껴지는 술이다.
그리고 달착지근한 맛도 함께 어우러져 정말 맛이 좋다."

(한국, 막걸리 中)


"글라스에 따라 빛에 비추어 보니
루비를 쥐어짠 붉은 액을 모아놓은 듯하다."

(포르투칼, 포르토 와인 中)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전제된 게 하나 있다. 바로 만취가 아니라 '기분 좋게 취한 상태'라는 점이다. 술. 숙취와 만취가 아니라 적당히 술을 즐겼을 때 우리의 삶이 더 윤기가 나지 않을까? 뭐든 과하면 좋지 않으니 말이다.
 
 
술을 마실 때, 알코올의 작용은 입에서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감각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온몸에서 희미한 취기가 느껴질 때에는 살아 있다는 것이 그다지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꽤나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아니, 아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즐겁다. 아니, 그게 아니라...
술을 마시며 낮에 있었던 기분 나쁜 문제들도 모두 용해된다.
알코올은 인간을 만들어 준다.
술과 맛있는 안주가 인격을 육성해 준다.

(본문 255페이지,  애필로그 中)

 
40년의 술사랑을 담아 놓은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은 내가 본보기로 삼고 써야 할 좋은 '술책'이었고, 내가 앞으로 맥주 칼럼니스트로 커리어를 다지기 위한 '술책'術策이 되어 주었다. 다행히도 그가 맥주는 전문으로 다루지 않았기에 이건 나의 몫이자 임무라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술을 마시고, 글을 써내려 갈 생각이다. 그렇게 나도 행복한 술맛 기행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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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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