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학으로 느끼는 엄마의 마음 [문화전반]

글 입력 2017.07.1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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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의 '나물 캐는 여인'


 작년 중국에서 혼자 살 때였다. 모르는 곳, 모르는 사람들, 말도 잘 안 통하는 그곳에서 막상 살아가려니 답답했다. 할 것도 없어 주말이 내내 적적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을 보내주었다. 책의 저자는 바로 정재찬 교수님으로 공대생마저 울게 만들 수 있는 시 강의를 하시는 분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그냥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책의 감동이 내 머리와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엄마와 관련된 내용이 계속 내 심장을 울렸다.

 2주 전 엄마가 빗속에서 휘청거리다 발가락이 골절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골절될 수 있냐며 나는 엄마를 놀렸지만 엄마는 꽤 우울해 보였다. 그렇게 되다 보니 집안일은 모두 나와 내 동생의 몫이 되었다. 직장을 다니며 집안일 하는 것이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우리도 항상 도와주었다고 생각했었지만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등등의 집안일들은 만만찮은 게 아니었다. 엄마가 일을 그만 둘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하는 것은 우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엄마는 우리에게 맛있는 거 못해줘서 미안해 라는 말을 계속 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도 미안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씁쓸했다. 엄마의 건강이, 엄마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속으로만 외칠 뿐이었다.

 엄마의 사랑을 다시 확인해서 그런 걸까. 책에 있었던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가 생각났다. 산문이지만 대부분 시로 알고 있는 이 작품은 료헤이의 소설 ‘우동 한 그릇’의 한국 버전이다.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 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 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 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시를 잊은 그대에게' pg.84~86)





 초등학생 때 ‘우동 한 그릇’을 보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소설 속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보였다. 그리고 두 아들들이 성공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눈물은 왜 짠가’는 실제 일어난 일이라 더 짠하다. 눈물을 씻어 냈지만, 땀으로 위장했지만 입 속으로 들어간 눈물은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툭’하는 투가리 부분은 머릿속으로 자꾸 장면이 상상되어 더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이 작품에선 ‘가난’이라는 소재도 있지만 ‘엄마’라는 소재가 나한테는 더 돋보였다. 중이염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함에도, 가세가 기울어 이모네에 가는 길에도, 엄마는 오직 아들을 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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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의 한 장면


 예전에는 엄마가 자식들의 성공만 바랐지만 지금은 엄마들도 자신들의 삶을 찾으려고 한다는 말을 여러 곳에서 듣는다. 물론 엄마들의 삶이 예전과 달라진 것은 맞는 말이다.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고, 무엇인가를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우리 엄마도 더 이상 직장과 집에만 매달리지 않고 자신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엄마들이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엄마들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아껴주며 어쩌면 아직도 자신들을 희생하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는지도 모른다. 집안일을 하다 보니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리 재료들이 냉장고 어디에 있는지도 이제는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고, 오래된 청소기와 밥솥의 불편함도 알게 되었다.

 후덥지근하고 비 오는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혹시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짜증 부르고 있는 건 아닌 건지, 나는 엄마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비 오는 날에는 엄마가 발가락 골절되지 않도록 같이 조심해서 걷기를 추천한다.


[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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