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붉은 매미

단절된 사회의 허허로운 민낯
글 입력 2017.07.1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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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매미
-고독한 소년 고립된 소녀-


극단 죽죽_붉은 매미 포스터.jpg
 
 
공연명 : 붉은 매미
공연장소 : 대학로 나온씨어터
작, 연출 : 김낙형
출연진 : 김수현, 김성미, 이철은, 이자경, 이창수, 김재민, 소이은
제작 : 극단 竹竹


현대사회에서 소통의 부재, 소통의 단절을 얘기하는 작품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수두룩하다. 극단 竹竹은 붉은 매미를 통해 어떠한 고립과 단절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덩어리째 굴어들어온 감상을 어떻게 정리해서 입 밖으로 내어야 할까 고민했다.





"설득하지 말고 이해를 시켜달라구요"


▶첫 번째 이야기는 두 동료의 이야기였다. 회사에 속한 포토그래퍼와 피팅 모델. 일주일간 연락이 되지 않은 피팅 모델은 잠적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포토그래퍼는 '설득하지 말고 이해를 시키라'고 한다. 말 끝에 '에이~'를 붙이며 장난을 시도하는 걸 보면 친분이 있지만 일주일간 연락이 안 되기도 하고, 그 이유를 모르기도 하고, 알려주지 않기도 한다. 모델은 '우리가 동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일상적인 것, 사적인 것을 노출하지 않는 게 당연할 수도 있는 동료 사이.


붉은 매미 2.JPG
 

▶두 번째 이야기는 두 아파트 단지 사이에서 일어난다. 한 줄만 봐도 떠오르는 뉴스가 있다. 한 쪽은 가난하고 다른 한 쪽은 부유하다. 가까운 길이니까, 길이 있으니까 간다는 한 쪽과 일부러 자기네 아파트 단지 앞에서 내리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고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불편함을 느낀 다른 쪽. 핵심을 피해 본인의 의견만 반복하다. 누구도 직접적인 말로 상황을 표현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본인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어두운 길을 오래 걸어 돌아오다가 다친 딸은 상황에서 소외된다.


붉은 매미 9.JPG
 

▶세 번째 이야기는 동생의 독백이다. 낯선 여자와 떠나는 누나의 허영을 비난하다가 자신의 고독함을 표현한다. 가세가 기울어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뒤로 변한 누나, 일부러 귀한 품종의 고양이를 키우겠다던 누나, 낯선 여자에게서 귀걸이와 목걸이를 받은 누나, 가족을 비난하고 낯선 여자의 부유함을 선택한 누나. 하지만 동생은 누나의 진심을 들은 적이 없다. 그저 자신의 생각으로 끼워 맞춘 누나의 입장이다. 그러나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남동생 본인 역시 자신을 가족에게 설명한 적 없다. 자신의 고독함을, 잃어버린 존재감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동생은 본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누나의 이야기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없다. 같은 공간에 살고 공유할 수 있는 오래된 추억이 있지만 서로를 모른다.


붉은 매미 10.JPG
 

▶마지막 이야기는 세상을 사는 남자와 삶을 사는 여자가 등장한다. 똑같은 마음으로 서로 사랑해서 부부가 되었는데 둘의 삶과 세상은 달랐다.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는 사회적 지위가 중요했지만 여자는 세상이 중요하지 않았다. 남편을 통해 본 세상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둘은 모두 아이를 원했지만 남자는 괜찮은 직업, 괜찮은 집, 괜찮은 환경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래야 자신이 원하는 가정이 되기 때문에. 남자가 생각한 적당한 때는 둘에게 좋은 타이밍이 아니었다. 남자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여자와 여자의 어제를 여자는 설명하지 않았다.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쌓이고 쌓인 소통의 부재가 결과를 드러낸 순간이었다. 남자는 그저 여자와 그저 하루 알고 지낸 제3자를 통해 진실을 깨닫게 된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야 하는 장소에서,
너무 멀리 나온 사람들처럼
안착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인물들"


어릴 적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뒤돌아서는 등장인물을 답답하게 생각했다. 정작 해야 할 말은 하지 못 하면서, 할 필요도 없는 말로 상황을 모면한다는 걸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 말은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상관없이, 당사자가 내뱉기로 결정했다는 데서 힘이 생긴다. 그게 그 사람의 입장이 되고 뜻이 된다. 말이 된 것들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생긴다.

연극은 친절하지 않았다. 관객과 소통하면서 소통의 부재를 알리는 극이 아니었다. 사실 개연성도 조금 부족했다. 연출 노트에 보면 '뉴스나 흔한 가십 기사의 내용'을 가져왔다고 쓰여있는데, 일상과 뉴스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일까 피부로 와닿는 소통의 부재는 아니었다. 다가온 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소통 없는 세상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이었다.

명확하지 않지만 그게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 허허로운 마음 하나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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