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생 뭐 있어, YOLO!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7.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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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 전 쯤이었던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 A가 뜬금없이 자신의 인생철학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A의 혀는 꼬여있었으나 눈동자는 꽤나 또렷하고 반짝거렸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한편으로는 얘가 이렇게 철학적인 애였나, 감탄하면서 A의 연설에 금방 빠져들고 말았다.

“야, 나는 매 순간 내가 제일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 내가 맨날 열심히 알바해서 화려한 바캉스는 아니지만, 배낭여행 다니는 이유가 그거야. 지금 아니면 더 두려워질 거 아냐.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싶어서. 그게 내 인생 모토거든.”

 말을 끝내자마자, A는 다시 풀린 눈으로 앞에 놓인 나쵸를 우적거리며 씹기 시작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자신의 인생관을 듣고 나서, 순간 맞은편에 앉아있던 내가 순간 자신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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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A는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모두 같은 교복을 입고 바둑판 같은 교실에 앉아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막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A의 럭비공 같은 개성은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개강 후 학교를 몇 주 다니더니 대뜸 이번 학기는 학교를 다닐 기분이 아니라며 번개처럼 휴학계를 내기도 했고, 가끔 꺼내보면 뿌듯하고 사랑스럽다며 열심히 알바를 해서 모은 몇 백 만원을 모두 인출해 돈뭉치째로 방 안에 고이 모셔두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대뜸 영상통화를 걸어 심심하다며 한 시간 동안 내 쌩얼과 초췌한 모습을 생중계하기를 요구하기도 하고, 면허를 땄으면 연습을 좀 해야 한다며 10년 전쯤 출시된 듯 보이는 하얀 중고차를 사서 나를 태우기도 했다. 한편 A와 정반대로 매사에 잔걱정이 많고 조심스러운 나는 매번 그런 A의 모습을 볼 때마다, ‘도대체 저 친구의 인생철학은 뭘까’ 하는 호기심 반 쪽과 나와 다른 과감함과 적극성에 대한 부러움 반 쪽만큼의 생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 A가 뜬금없이 술주정 삼아 자신의 인생관을 호프집 테이블에 보따리 던지듯 툭 던져놓았을 때, 나는 그제서야 A를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는 요새 그 유명하다는 ‘욜로족’ 임이 분명했다.
 
 이런 내 친구 A의 모습처럼,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욜로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YOLO’는 ‘You Only Live Once’, 즉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니 현재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자는 뜻의 말이다. 언젠가부터 이 말은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고 어느새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핫’한 문화 코드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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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YOLO’라는 단어가 대중매체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 건 아마도 tvN의 예능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편’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출연했던 남자배우들이 함께 아프리카로 떠난 여행에서 배우 류준열이 캠핑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 배낭여행객에게 왜 혼자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자, 이어진 여행객의 짧은 응답이 바로 이것이었다. ‘You Only Live Once.’

 그렇게 작년 초부터 우리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YOLO’는 올해 들어 이에 대한 20- 30대의 관심이 높아진 이후,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콘텐츠의 주요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그 예로 ‘윤식당’, ‘주말엔 숲으로’, ‘섬총사’, ‘배틀 트립’ 등이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일반인들이 늘 꿈꾸지만 쉽게 실현하지 못하는 일들을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욜로 라이프’에 대한 동경심을 심어주거나, 한편으로는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TV 속 출연자들은 일말의 스트레스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휴양지의 작은 섬에서 낮 동안 식당을 운영한 후 저녁에는 맘껏 휴가를 즐겨보기도 하고, 주말에는 캠핑장비를 들고 공기 맑은 숲 속으로 훌쩍 떠나보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부러움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서,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호기심을 어렵지 않게 가져보게 된다. 높기만 했던 ‘욜로 라이프’에 대한 마음 속 장벽이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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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YOLO’는 한편으로 그 의미가 ‘된장 라이프’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위험을 갖고 있기도 하다. 최근 ‘YOLO’를 소재로 한 TV 프로그램들이 이를 해석하고 변주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그 초점을 점차 ‘과감한 소비’에 맞춰 보여주고 있는데, 얼마 전 방영된 MBC <무한도전>의 ‘YOLO 특집’과 Olive의 ‘어느 날 갑자기 백만 원’ 등이 그 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비춰준 ‘욜로 라이프’는 거금 또는 신용카드를 쥐고 거침없이 탕진을 향해 나아가는, 다시 말해서 소비로 시작해 소비로 끝나는 줄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중들은 ‘YOLO’를 단순하게 ‘돈을 쓰는 데서 오는 행복’과 같은 의미로 인식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생활방식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거나 또는 정반대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산다는 추상적인 의미의 ‘YOLO’가 TV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어 가면서, 어느 새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과감하게 한다’는 구체적이고 일률적인 의미의 ‘YOLO’가 되어 대중들에게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최근의 TV 속 욜로 라이프는 현실 속의 것보다 화려하게 포장된, ‘네버랜드’와 같은 의미가 더 강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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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진짜 ‘YOLO’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의 ‘욜로 라이프’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인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그 어디에도 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헌법처럼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의 ‘YOLO’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내 친구 A처럼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넉넉하진 않은 돈이지만 꿈에 그리던 배낭여행을 떠나 젊어서 하는 고생을 사서 해보기도 하고, 늘 보고 싶었지만 연락을 자주 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대뜸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보기도 하고. 작게는 치열했던 하루를 끝마치고 맥주 한 모금이 간절한 나 자신에게, 당장 편의점으로 달려가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선물하는 것도 나름의 ‘YOLO’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 스스로 정의 내린 나름의 그 ‘욜로 라이프’가 비록 TV 속 여행 프로그램처럼 화려하고 있어 보이진 않더라도, 각자의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는 모두 이미 가장 멋진 ‘욜로족’ 임이 분명하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대로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나는 행복해질 준비를 끝냈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니까.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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