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잊혀져가는 것" ─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 [공연에술]

첫사랑에 대한 기억, 다 아물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에 답하다.
글 입력 2017.07.1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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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잊혀지는 것>


아물지 않았던 첫사랑의 기억,
그날의 기억에 대답하다_


 7월 6일, 대학로 연우소극장으로 연극 <잊혀지는 것>을 보러갔다. 공연 전까지 맑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이내 비를 쏟아냈다. 예상치 못한 소나기로 흥건하게 젖어버린 옷처럼, 이 연극도 마음에 소나기를 내렸다. 괜찮았던 하루의 끝에 가끔씩 아주 가끔씩 비를 만나는 날이 생긴다. 아마 그날이 그랬던 것 같다. <잊혀지는 것>의 시작은 5년 전 떠난 첫사랑이 갑자기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되는데, 특히나 이 연극은 공역 기획사 "악어컴퍼니"가 처음으로 시도한 "새싹"프로젝트의 첫 시작인 작품이다. 새싹은 신인작가발굴 프로젝트로 7월 6일부터 8월 6일까지 총 3편의 연극이 연달아서 공연을 하게 된다. 연극 <잊혀지는 것>, <라스트 메이트>, <페이퍼>가 그 작품이다.

 첫사랑은 그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존재인가보다. 첫사랑의 의미를 떠올리며 우리는 추억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각자가 가슴에 숨겨놓았던, 잊어버렸던 그날의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기억들을 마주하게 될까.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조금 더 나이가 들었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때서는 차마 할 수 없었던, 그리고 제대로 보지 않았던 서로의 마음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하게 될 지도 궁금해졌다. 모두에게 첫사랑은 어떤 의미일까? 제각기 다른 모습들로 기억되겠지만, 대부분이 잊혀지는 것이 아닌 잊혀져야했던 것, 잊혀져야만 하는 것, 살면서 잊어야했던 것이었을 거다. 가슴 아픈 것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잊혀져야만 했다. 마음을 억누르면서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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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지는 것 설명 페이지 - 배우, 연출 >


 이 연극의 주인공은 나무, 영화 그리고 나무의 현재 여자친구인 새봄. 이렇게 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나 두 주인공이 술 한잔을 기울이면서 "넌 나쁜 놈이야, 너도 나쁜 년이야" 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내 눈에는 그 모습들이 왜 이렇게 아프고 부럽고 예뻐보였을까.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왔던 것들이었다. 첫사랑과 술 한잔 기울이며 "너 그때 왜 그랬어" 라며 원망 아닌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그날에 못다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웃으며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그때를 공유한다는 것이 말이다. 정말로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아, 나도 저런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고.

 예전에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진짜 많이 사랑한 사람이라면 다음에 누굴 만나던지 결코 그 사람을 이길 순 없을 거라고, 미련이 남아서가 아니라 그때 줬던 첫 마음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그건 아마 다시 그만큼 계산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게 어려워졌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였을까? 동시에 영화가 부러워졌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캐릭터를 보고 불편해하기도 했다.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왜 찾아가서 괴롭히냐며 SNS 후기에서는 영화역을 보고 민폐녀, 발암녀라고 말하는 것도 보았다.

 사실 나는 영화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영화였고 나무였다. 그리고 또 누군가의 새봄이 될 사람일 수도 있다. 캐릭터 자체에 끼어있는 사람은 있어도,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랑에 적어도 스스로가 민폐일 순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사랑하니까. 마치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시간이 흘러 보니 우리는 썸머였고, 또 톰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비슷하달까.


"오빠는 왜 오빠 생일도 잊고 살어.
이제 사람같이 좀 살아"


 새봄은 중간에 이런 대사를 말한다.  나무는 새봄이를 사랑한다. 고마워하고 아낀다. 그런데도 영화는 나무에게 특별한 존재다. 20대의 기억에 뿌리내린 강한 영향력을 가진 여자이다. 과거는 힘이 없다고 하지만 과거는 사실 존재하지 않으면 오늘의 나는 없을 만큼 힘이 있다. 아마 나무도 그랬을 거다. 영화를 미워하면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던 순간들이 많았을 거다. 그런 말이 있다. 미워할 때 까지는 헤어진 게 아니라는 말. 시간이 약이란 말은 시간이 잊혀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 위로 쌓여가는 새로운 시간들이 덮히면서 덧칠을 하는 것이다.

 나무는 이제 영화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 묻을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함께할 인연은 되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첫사랑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일은 참 소중한 일인 거 같다. 평생의 함께 갈 기억에 내가 있다는 건 말이다. 서로 웃으며 네가 이젠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서로의 말이 진심으로 아주 진심으로 와닿으면서 눈물이 났다. 듣지 못한 첫사랑의 진심이 들려서도 아니다. 아마 어딘선가 잘 살고 있을 그 사람의 마음에도 분명 '나'라는 꽃이 떨어져있을 거다. 그 깊은 뿌리 근처에 내가 흘려져 있을거다. 비록 그마음에 피우진 못해도, 그 언저리에서 꽃을 피우고 있을거다. 아마 내가 행복해지길 누구보다 바랬을 거라고.

 사랑은 아무사이 아닌 사이가 되어도 아무사이 아닌 것이 되지 못하는 것. 보이진 않지만 무언가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무언가 느낄 수 있는 그런 사이랄까. 사랑은 그런건가보다. 말로는 다 표현될 수 없는 그런 감정. 기억은 추억이 되면 살아가면서 힘을 발휘한다. 내가 외롭지 않을 추억,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 쯤에 우연히 들여다본 사진첩처럼, 그런 시절도 있었지 하면서 웃음부터 나는 그런 날, 언젠가부터 첫만남보다 마지막만남이 더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끝만남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이 순간이 기억될 날을 떠올리며 인사를 꼭 하게 된다. 비록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만남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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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새싹" 포스터>


 세상에 좋은 이별은 없다고 한다. 이별은 참 아프니까. 그럼에도 좋은 이별을 우리는 바란다. 공연 내내 깔린 김광석의 <잊혀지는 것>의 노래를 찾아보았다. 노랫말이 우리의 마음들을 너무나도 잘 뚫고 있는 것 같았다. 첫 공연을 보고 눈물이 났던 이유는, 나무를 이해할 것 같아서, 영화를 이해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나와 너를 만났다.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한번더 이 연극을 보고 왔다. 비는 그쳐있었고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은 좀 더 단단해져있었다. 그날의 다 아물지 않았던 기억과 상처들이 다가와 내게 이야기했고, 이제는 나도 나무가 되었나보다. 아마 살면서 또 오늘 같은 날이 올거다. 불현듯 찾아오는 소나기처럼, 또 그 자리 서서 다 맞아버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날은 이제 이 연극을 떠올리려고 한다. 세상 어디선가 잘 살아가고 있을 우리들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이 긴 장마가 끝날 때 쯤 우리의 마음도 한 층 더 단단해져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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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에서 진행하는 3가지 연극 소개>





<사진 출처 - 새싹 인터파크 티켓 이미지>


[김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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