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의 죄목은 비천함이었다, 오페라 리골레토

글 입력 2017.07.1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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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죄목은
비천함이었다.
오페라 리골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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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리골레토는 이탈리아의 자존심이라고도 불리는 베르디의 작품들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음악적 아름다움은 물론, 굉장히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까지도 담고 있기 때문이죠. ‘여자의 마음은’으로 대표되는(하이*트 CF송) 음악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으니, 저는 서사와 그에 담긴 사회 비판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일단 줄거리입니다. 방탕한 만토바 공작과, 그의 밑에서 여성들을 공급해주는. 혹은 공작에게 자신의 아내나 딸을 뺏긴 이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던 광대 리골레토가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공작에게 딸을 뺏긴 몬테로네 백작이 공작에게 찾아옵니다. 리골레토는 그 앞을 막아섰죠. 그런 리골레토를 보며 몬테로네 백작은 ‘너도 언젠가 이런 아비의 마음을 알 것’이라며 리골레토를 저주합니다. 그 저주를 들은 리골레토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죠.

리골레토가 불안에 빠진 이유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 질다 때문이었습니다. 리골레토는 혹여라도 나쁜 사람에게 걸려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딸이 해를 입을까봐, 집안에만 매어두고 과보호할 정도로 질다를 아낍니다. 하지만 질다는 이미 교회를 오가는 사이 만토바 공작을 사랑하게 됐죠. 리골레토가 잠시 밖에 나간 사이, 공작이 집안에 숨어들어옵니다. 질다에겐 자신이 가난한 학생이라 소개하며, 사랑을 고백하죠. 질다는 그 고백에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만토바 공작에게 아내나 딸을 뺏겨, 리골레토에게 화가 난 이들이 리골레토의 집을 찾아옵니다. 질다를 리골레토의 애인이라 생각해 납치하죠. 이에 리골레토는 절망합니다. 다음 날, 질다를 납치한 이들은 공작에게 ‘리골레토의 애인’이라며 질다를 바칩니다. 질다를 본 공작은 흥분해 질다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죠. 후에 이 사실을 안 리골레토는 분노합니다. 만토바 공작에게 복수를 결심하죠.

처음 질다는 그래도 자신은 공작을 사랑한다며, 리골레토에게 복수를 관둬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 질다에게 리골레토는 공작이 암살자 스파푸칠레의 동생 막달레나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자신의 연인의 배반에 질다는 절망합니다. 리골레토는 스파푸칠레에게 만토바공작의 암살을 의뢰하죠. 하지만 공작에게 유혹당한 막달레나는 스파푸칠레에게 공작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동생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 스파푸칠레는 12시 이전 첫 손님을 죽여 공작을 대신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를 밖에서 듣고 있던 질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 대신에 죽임당하는 것을 택합니다. 결국 질다는 스파푸칠레의 손에 목숨을 잃죠.

한편 공작이 드디어 죽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리골레토는, 스파푸칠레에게 공작의 시체를 건네받고 흥분합니다. 자루에 담긴 시체에 발길질을 하기도 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하죠. 죽어나간 공작의 모습을 보기위해 자루를 들쳐본 순간 리골레토는 절규합니다. 그 안엔 공작 대신 사람스런 자신의 딸 질다가 있었으니 말이죠. 질다는 죽어가면서도 공작을 용서할 것을 부탁합니다. 마지막까지 사랑스런 질다는 또한 아버지의 안녕을 빌죠. 끝내 숨을 거둔 질다에 리골레토는 깊은 절망에 빠져 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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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천한 자의 가장 용감한 복수


리골레토의 서사를 보고 있다 보면 두가지의 아이러니에 빠집니다. 하나는 가장 용감한 자가 가장 비천한 리골레토였다는 것, 또 하나는 죄를 지은 수많은 이들 속에서, 결국 피해를 입은건 리골레토와 질다 뿐이었다는 것이죠.

우선 첫 번째 아이러니입니다. 만토바 공작은 말 그대로 공작입니다. 권력과 돈이 많음은 물론, 신체가 건강하다 못해 우람하기까지 한 남성이죠. 반면 리골레토는 광대입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신분임은 물론, 등이 굽은 꼽추이기까지 하죠. 여러모로 만토바와 리골레토는 양극단에 서 있습니다. 반면 그간 공작에게 딸이나 아내를 빼앗겼던 귀족들은 리골레토보단 나은 위치에 서 있습니다. 어느모로 보다 리골레토보다는 나은 처지에 있죠.

그럼에도 똑같이 아내나 딸을 뺏겼을 때 귀족들과 리골레토의 반응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리골레토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귀족들은 공작에게 크게 반발하지 않습니다. 몬테로네 백작을 제외하고선 체프라노 백작 등은 공작에게 반발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옆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리골레토에게 분노할 뿐이죠. 실제로 자신의 아내를 빼앗은 것은 공작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수’랍시고 리골레토의 숨겨둔 애인(딸인 질다)을 공작에게 바칠 계획을 짭니다. 자신들의 아내를 취했던, 모든 원흉인 공작에게 말이죠.

이런 행태는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원흉은 놔두고, 그에겐 복수심을 불태우지도 않고, 그 옆 조력자에게 그 분노를 돌리다니요. 하지만 이를 권력구조로 해석하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그들이 하고싶었던 복수는 ‘분풀이’였던 것입니다. 정말 원수를 갚아주고 싶었다기보단, 그 화난 감정을 풀고 싶었을 뿐이죠. 하지만 그러기에 ‘공작’이란 존재는 너무 컸습니다. 그러니 ‘만만하고’ ‘쉽게 해코지할 수 있는’ ‘약자’인 리골레토에게 그 화살을 돌린 것이죠. 거대한 힘에 대항할 수 없을 때, 자신이 당한 것 그대로 약자를 괴롭히는 것으로써 그 분을 풀려고 하는 시도였습니다.

반면 리골레토는 질다가 귀족들에 의해 공작에게 농락당했을 때, 귀족들에게 복수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의 원흉을 똑바로 알아보고, 공작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하죠. 귀족들에게 있어서는 공작은 자신들보다 높은 사람이고, 리골레토는 만만하게 낮은 사람이었을지 모르지만. 가장 하위에 있는 리골레토로선 귀족이나 공작이나 자신보다 윗사람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리스크를 감내해야하는 일이라면 굳이 원흉을 두고서 분풀이를 할 필요가 없었죠. 리골레토는 가장 아래에 있기에 외려 자신의 복수 대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던 것입니다.

중간층은 그 아래쪽에 분을 풀고, 외려 더 내려갈 수 없는 아래쪽 사람들이야 말로 분노의 대상을 바라보는 이 현상은 어딘지 익숙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죠. 그 아래에 자신이 ‘갑질’할 수 있는 이들이 남아있는 계층은, 혹은 잃을 것이 많은 계층은 종종 비겁한 수를 취합니다. 거대한 권력에 대항해 깨지지 않더라도, 지금 이 어느정도 부조리가 있는 상황이라도 ‘살만 하긴’ 하거든요. 그 아래에 분을 풀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아래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 아래에 분을 풀수 없음은 물론, 그대로는 ‘살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죠. 리골레토의 분노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종의 ‘혁명’입니다. 오페라 리골레토에는 기득권층과 중산층, 빈곤층의 그 권력구조와 행태가 낱낱이 드러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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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거운 죄목, 비천함


그 비열한 싸움에서 피해를 받은 이들이 리골레토와 질다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뜻보면 극은 리골레토의 인과응보 이야기로 보입니다. 리골레토는 단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귀족들이 질다를 납치하는 순간에, 리골레토가 ‘체프라노 백작부인’을 데리러 가는 것으로 속아서 그들을 도왔다는 것은 이 인과응보적인 측면을 잘 드러내줍니다. 결국 리골레토의 그 ‘내 일만 아니면 괜찮았던’ 태도가 그렇게 질다를 쉽게 내주게 만들었던 것이니까요. 리골레토가 그 죄의 대가를 받은 스토리라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하나하나 낱낱이 분석해보면 과연 ‘인과응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일단 ‘인과응보’라고 말하기엔 리골레토를 제외하고선 ‘단죄’받은 이들이 없습니다. 가장 큰 원흉이자 절대적인 가해자인 공작은 단죄 받지 않습니다. 그의 기득권 때문에, 막달레나를 유혹하는 그 방탕함 때문에 단죄 받지 않았죠. 질다를 공작에게 바친 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아내나 딸이 아닌 다른 이들이 공작에게 바쳐질 때는 방관했고, 다른 여인(질다)를 공작에게 직접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가해자이자 방관자인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또한 단죄 받지 않습니다. 실질적인 ‘가해자’인 공작과 귀족들은 단죄받지 않고, ‘조력자’인 리골레토만 단죄 받은 것이죠.

심지어 그 단죄의 방식이 아무런 죄도 없고, 순수한 질다의 희생입니다. 질다는 대체 무슨 이유로 연인에게 배신당하는 상처를 입고, 죽임까지 당해야만 했던 것일까요. 만약 연좌제로 아버지인 리골레토의 죄가 질다에게 까지 전가된 것이라고 해석한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가해자들은 버젓이 잘 살고있는데, 단지 리골레토를 아버지로 뒀다는 이유만으로 질다가 단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과응보가 아니라면. 리골레토와 질다가 그렇게 절망에 빠져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과응보라는 틀을 빼고, 그 각자를 바라보면 답은 간단히 나옵니다. 그들이 희생당한 이유는 어떠한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장 비천하고 낮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희생당하느냐’조차도 권력적인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죠. 온갖 일을 다 저지르고 다니는 공작은 결국 끝에 끝까지 ‘여자의 마음’이란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일상적으로,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아마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죄를 저지르겠죠. 하지만 그가 단죄받을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에겐 권력이, 우월한 신체가, 명예가, 여심을 녹이는 매력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리골레토와 질다는 다릅니다. 단지 공작을 잠깐 도왔다는 이유로 리골레토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돈도, 일말의 명예도, 심지어 가장 애지중지하던 딸까지도 말입니다. 아무리 일을 저질러도 멀쩡한 공작과, 자그마한 죄로도 파멸에 이르는 리골레토의 대조는 처절합니다. 심지어 죄가 없음에도 파멸에 이른 질다는 더더욱 처절하죠. 결국 오페라 리골레토엔 권력구조의 부조리에 대한 은유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리골레토가 함축하고 있는 바는 은유적이면서 또 직접적입니다. 표면적으로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내진 않지만, 이엔 단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과,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겐 대항하지 못하면서 아랫사람에게 그 화를 푸는 비겁한 이들에 대한 비판, 그로인해 늘 아랫사람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4중창과 같은 탁월한 연출에.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예술성 아래 사회비판이란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죠. 리골레토라는 극 자체에 취해 황홀해 있다보면 어느새 그 칼날에 베여, 부조리에 대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게됩니다.

오페라 리골레토는 예술의 미적 측면과, 금기를 건드리는. 사회의 지평을 넓히는 측면 모두를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진정한'이란 수식어가 붙는 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만큼은 그 수식어를 사용해보고자 합니다. 리골레토는 '진정한' 예술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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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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