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6/30) 꼬리에 꼬리를 무는 증오의 결말은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7 전막 오페라 리골레토 @강동아트센터

SEOUL OPERA FESTIVAL 2017
글 입력 2017.07.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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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증오의 결말은"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7
-SEOUL OPERA FESTIVAL 2017-


서울오페라페스티벌_2017_포스터.jpg
 




2016년, 작년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덕분에 그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공연들이 무대에 오르내렸다. 이번 강동아트센터에서 <2017서울오페라페스티벌>가 열려 다양한 오페라 공연들이 진행되었는데, 베르디의 오페라 중 걸작으로 손꼽히는 '리골레토 Rigoletto'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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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해 보이지만, 관객석은 만석을 이룰 정도로 이 공연을 찾아온 이들로 북적였다. 오페라를 한 껏 향유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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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는 프란체스코 피아베에게 당장 대본 작업을 시작해 달라 요청할 정도로 빅토르 위고의 원작 '왕은 즐긴다(Le Roi s'anuse)'로 하여금 깊은 영감을 받았다. 오페라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광대 리골레토가 호색한인 만투아 공작에게서 아름다운 딸을 지키려 했지만 실패하고 복수심에 든 칼날이 만투아 공작을 사랑한 딸, 질다에게 향하는 비극이다. 오페라 '리골레토 Rigoletto'에 담긴 비극은 주인공 리골레토 특유의 독특한 성격과 개성으로 인해 극대화된다. 이 어릿광대는 희곡과 오페라 작품 모두에서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리골레토는 일반적인 광대와는 달리 '권력자의 여흥거리'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자에게 새로운 여인을 소개하기도 하고 주인이 벌인 사건들의 뒤처리를 맡는 일종의 해결사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한술 더 떠 권력자의 편에 서서 아첨하고, 그의 눈 밖에 난 신하를 향해 조롱을 서슴지 않는 그야말로 '간신배'이다.

기존의 오페라나 이야기와는 달리 선하고 정의로우며 아름답고 멋진 외모를 겸비한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이중적이고도 증오에 휩싸여 있으며 온갖 더러운 일을 서슴치 않고 신체적인 장애(곱추)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공작의 권세를 등에 엎고 귀족들을 업신여기며 조롱하곤 하였던 리골레토는 어릿광대라는 업무가 끝나 가면을 벗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저 딸 질다의 자상한 아버지로 돌아온다.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딸을 어떻게든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은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다. 그 결과 이 광대의 정체성은 궁에서 광대를 직업으로 삼는 삶과 가장으로서의 삶으로 완전히 분열되어버린다. 그에게 모욕당한 신하가 내린 저주는 그저 하나의 발단이었을 뿐, 그의 내적 갈등은 이미 충분히 진행된 상태이지 않았을까. 특히 살인청부업자 스파라푸칠레와 리골레토가 마주한 순간이 압권이다. 어릿광대로 굴욕적인 생활을 한 자신을 삶을 되돌아보며 회한에 빠지고, 동시에 몬테로네가 자신에게 내린 저주에 대해 깊이 숙고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저주를 건 몬테로네를 죽일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는 모습은 모순되고도 그의 분열된 자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지 않을까.


우리는 닮은 사람이군.
나는 혀로, 그대는 칼로 상대를 찌르는구나.


납치된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을 위해서라면 살인청부업자의 도움도 기꺼이 받는 레골레토는 스파라푸칠레가 떠나고 부르는 아리아 '우린 같은 종류의 인간이군(Pari siamo!)'의 서두에서 그는 살인청부업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 곡의 구절들은 리골레토의 찢겨가는 자아와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도, 이 자연도 나를 추하고 약하게 만들었네. 원통하다, 꼽추인 것이, 못생긴 것이. 웃어라, 그것밖에 할 줄 모르니. 눈물조차 내겐 없네."의 구절은 사회적인 환경이 '어쩔 수 없이' 지금의 리골레토를 만든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갖게 한다. 신분제 사회, 장애인을 멸시하던 사회 분위기였기에 리골레토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결과였던 것은 아닐까. 물론 그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서 그의 입장과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줄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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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다는 죽어가면서도 여전히 리골레토에게 공작을 용서해달라며 애원한다. 결국 질다는 숨이 끊어지고, 리골레토는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울부짖으며 그녀의 유해 위에 쓰러지고 만다. 과연 '질다의 죽음'으로 리골레토는 자신의 죄를 뉘우칠 수 있을까. 애지중지하게 키우며 외출이라고는 교회 뿐이고, 아버지인 본인의 이름 조차도 알려주지 않았던 리골레토는 그렇게 순수하게 키우고자 한 딸로부터 본인은 더러운 귀족들과는 다르다는 자위를 하는 존재라고도 느껴졌다. 그저 딸 그자체가 아닌...

작품 안에서 메타포적으로 언급 되고 있는 "저주를 풀어낼 수 있으냐 없느냐"는 우리의 삶의 굴레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감히 필자가 본 공연 중 가장 처절하게 비극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린 꼽추 광대의 이야기. 자신이 불행과 비통에 빠뜨린 모든 이들의 증오와 복수심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씁쓸함, 동시에 그동안 다른 이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했을 리골레토에게는 당연한 처사라며 일말의 통쾌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장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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