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랭 드 보통, < 여행의 기술 > [예술철학]

글 입력 2017.07.0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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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자신의 정서 때문에 여행을 떠나려 하지만, 정작 여행이 시작되고 나면 자신의 내면은 돌아보지 않은 채 몸뚱이를 이끌고 돌아다니는 행위만 한다. 이것을 진짜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노동이 아닌 휴가를 위해, 의무가 아닌 내적 정서의 함양을 위해 여행을 가는 것이라면 그저 떠나기 전의 설렘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우리 바깥에 대한 주의와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여행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얻고 돌아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한 건축양식, 색다른 사람들, 웅장한 자연경관은 사진 한 장과 우리가 그곳에 다녀갔다는 사실만으로는 쉽게 포착되고 간직되지 않는다. 새로운 장소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관심을 능동적으로 잡아끌지는 못하므로, 이들을 향유하는 일은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 된다. 우리가 자신의 시선을 뻗어 여행에서 무언가를 얻지 못한다면 돈 들여 먼 곳에 가느니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낯선 장소로의 여행은 권태를 일시적으로 물러나게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잠시뿐이다. 여행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다. 풍경과 사물에 접근하여 무엇이 아름답다고 여겨지는지, 그것의 어느 부분이 아름답게 보이는지, 왜 그렇게 보이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감상을 가져다주는 일은 여행지가 아닌 여행자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감상을 위해 새롭고 웅장하며 더 화려하고, 더 발전된 곳으로 여행을 가야 할 필요는 없다. 도시보단 시골이, 먼 곳보단 가까운 곳이, 건축물보다는 자연의 모습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행하기에,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우리 내면의 성장을 일으키기에 부족한 때와 장소는 없다. 우리가 집과 동네, 그리고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감탄하지 않는 이유는 그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여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것이므로 새로움이 없어 가치를 얻어내지 못한 것뿐이다.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곳에 가보는 것도 물론 좋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가까이 있는 곳에서도, 심지어 우리의 침실에서도 충분히 우리의 영혼을 고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인지하고 소유하여 일상에서도 회상을 통해 위안을 줄 아름다움을 구하는 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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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시인은 …
어느 정도는 인간의 감정을 교정해야 하네 ….

사람들의 감정을 좀 더
건전하고, 순수하고,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간단히 말해서 자연과
좀 더 일치하도록 만들어야 하네."

- p.190


 예술.

 예술이 바깥세계에 대한 우리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세상의 한 부분을 포착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봄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본다. 

 예술가의 역할이 세계를 단순히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거나, 눈을 즐겁게 하는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있다고 보지 않고, 선택과 강조의 결과물인 작품을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바깥세계의 한 부분에 주목하게끔 하는 데 있다고 본 워즈워스의 견해는 놀랍다. 이를테면 감상자는 그림 속의 그림자를 보고 평소에는 그냥 스쳐 지나갔을 법한 그림자를 다시 내려다보고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현실의 다양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늘 그 자리에 있던 것이어도, 우리가 의미 있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것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지각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버클리의 말이 조금은 다르게 들려온다. 버클리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서만 이런 말을 한 것도 아니었고,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떼를 쓴 것도 아니다. 그가 외부실체를 부정한 것은 사물이 의미 있어지는 유일한 순간이 정신의 주목을 받을 때라는 통찰에서였을 것이다. 나는 또 하나의 예술작품을 통해 잊고 있던 명제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 것이다.

 좋은 작품이란 결국 눈에 보이는 그대로 대상을 그려내는 것이 아닌,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그 무언가에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술의 목적은 지식이 아닌 인식이며, 여행의 목적은 행위가 아닌 정서에 있으므로.


[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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