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이 들어 간다는 것 [문화전반]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라는 말을 듣고 생각해 본 것들
글 입력 2017.07.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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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너무 빨리 가. 나도 이제 늙었나봐...""얘는 젊은 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가끔 엄마와 이런 대화를 한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 앞에서 늙음을 한탄하는 젊은 딸. 어떤 모습일지 알고 있다. 사실 '나이 들어감'에 대해 글을 쓰기에도 아직 나는 어린 나이이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가끔은 일부러 저런 얘기를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엄마의 핀잔에 위안을 얻는다.아, 나 아직 어리구나.그러다 저런 말을 또 했는데 엄마가 더 이상 웃거나 핀잔을 주지 않고 '그래 맞아 너도 그럴때지'라는 대답을 하게 될 날이 솔직히 두렵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걸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을 상상해 봐도 아직 나는 나이든다는 게 익숙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사실 나이 드는게 두려워진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분명 나도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다른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나이들기를 기대했다. 어릴 때 시간은 더디게 갔다. 열 일곱살이 되면 강아지를 키우게 해 준다는 엄마의 말에 일곱살이던 나는 열 일곱살이 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열 살이 되던 해의 생일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케이크의 촛불을 불 때 엄마는 10대가 된 걸 축하한다고 했다. '10대'. 이제는 과거가 되어 화석같이 굳어버린 단어이지만 그때는 그 10대라는 단어가 얼마나 신비롭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10대는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신비롭지만은 않았다. 미적지근한 10대를 보내던 나와 친구들은 빛나는 20대를 기대했다.시간이 흘러 20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지금, 기대했던 대로 살고 있느냐 묻는다면 답은 '글쎄'이다. 즐거운 일도 많지만 뭐든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 라고 말한다. 그런 말들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남들이 다 제일 좋을 때라는 시기를 살고있는 나는 정작 지금이 제일 좋은 때인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더 나이가 들면 이 때를 그리워하게 될까봐, 지금이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절정일까봐 두렵다.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라는 말 속에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숨어 있다. 30대에는 20대를 부러워하고 40대에는 30대를, 더 나이가 들어서는 계속 조금이라도 더 젊었던 때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나이듦에 대한 공포의 정체는 여기에 있었다.거기다 젊음을 숭배하는 세상은 그 공포를 더욱 부추긴다. 텔레비전에는 중년의 나이에도 20대의 외모를 유지하는 사람이 그 비법을 이야기하고 방청객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주름과 흰머리는 언제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같은 20대 안에서도 나이 뒤에 시옷받침이 붙기 시작하면 중반이고 비읍받침이 붙기 시작하면 후반이라며 중반은 초반을 부러워하고 후반은 중반을 부러워한다. 마치 20대의 시작과 동시에 한 살 먹을때마다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 같다. 인생을 등산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두가 20대를 꼭대기로 설정해 놓고 20대가 되기 전까지는 그곳에 도달하길 바라며, 도달한 후에는 멀어져만 가는 정상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이드는 게 두렵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의 가사가 서른을 앞둔 사람이 아니라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의 이야기 같은 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20대의 끝이 인생의 끝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20대가 체력적으로 가장 뛰어난 시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까지 그런 법칙을 충실하게 따를 필요가 있을까.20대는 분명 특별한 시기다. 20대에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하지만 그건 30대, 40대, 50대, 60대,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각 나이에는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글쎄, 아직 나이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거라면 할말은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믿는다. 평균수명이 80세에 육박하는 시대에 20대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20대를 그리워하며 보내야 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이드는 걸 산 정상에서 점점 내려오는 게 아니라 그저 평평한 숲을 걸어가는 것이라 여기고 싶다. 한 장소를 지나가야지만 새로운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새로운 곳은 이전에 지나온 곳에 비해 더 부족하거나 못한 곳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좋은 곳이다. 나이든다는 건 20대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라 30대, 40대, 50대, 60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다. 이미 지나온 장소에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에게 '참 좋을 때다' 하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맞아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좋을 거에요. 20대를 그리워하지 않을만큼.그리고 내가 나이가 든다면 젊은 사람에게 '그 때가 좋을 때다'라고 말하는 대신 나이가 들어도 즐거운 일은 늘 있다고, 나는 현재의 내가 좋다고 이야기할 것이다.[김소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을 좀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글에서 나이 드는 것을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평평한 숲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하신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마지막 문장을 읽고 후회 없는 20대를 보내되, 20대가 지나더라도 청춘을 그리워하지 않을 만큼의 날들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소원님의 글을 통해 어른이 되는 과정은 성숙과 지혜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니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걱정만 하기보다는 현실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오르막 내리막 길이 아닌 '나이 드는 건 평평한 숲을 걸어간다'는 표현이 정말 많이 와닿았습니다. 20,30,40,50, 60대가 되어도 항상 새로울 테니까요. 그렇다면 항상 안가본 길 이기에 새롭고 기대가 됩니다. 나이 먹는 것이 기대됩니다. 사색이 담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