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이 들어 간다는 것 [문화전반]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라는 말을 듣고 생각해 본 것들
글 입력 2017.07.01 23:08
댓글 4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시간이 너무 빨리 가. 나도 이제 늙었나봐..."
"얘는 젊은 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가끔 엄마와 이런 대화를 한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 앞에서 늙음을 한탄하는 젊은 딸. 어떤 모습일지 알고 있다. 사실 '나이 들어감'에 대해 글을 쓰기에도 아직 나는 어린 나이이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가끔은 일부러 저런 얘기를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엄마의 핀잔에 위안을 얻는다.


아, 나 아직 어리구나.


그러다 저런 말을 또 했는데 엄마가 더 이상 웃거나 핀잔을 주지 않고 '그래 맞아 너도 그럴때지'라는 대답을 하게 될 날이 솔직히 두렵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걸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을 상상해 봐도 아직 나는 나이든다는 게 익숙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hand-351277_960_720.jpg
 

사실 나이 드는게 두려워진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분명 나도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다른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나이들기를 기대했다. 어릴 때 시간은 더디게 갔다. 열 일곱살이 되면 강아지를 키우게 해 준다는 엄마의 말에 일곱살이던 나는 열 일곱살이 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열 살이 되던 해의 생일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케이크의 촛불을 불 때 엄마는 10대가 된 걸 축하한다고 했다. '10대'. 이제는 과거가 되어 화석같이 굳어버린 단어이지만 그때는 그 10대라는 단어가 얼마나 신비롭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10대는 책이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신비롭지만은 않았다. 미적지근한 10대를 보내던 나와 친구들은 빛나는 20대를 기대했다.

시간이 흘러 20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지금, 기대했던 대로 살고 있느냐 묻는다면 답은 '글쎄'이다. 즐거운 일도 많지만 뭐든 기대했던 것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사람들은 '그땐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 라고 말한다. 그런 말들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남들이 다 제일 좋을 때라는 시기를 살고있는 나는 정작 지금이 제일 좋은 때인지 어떤지 모르겠는데 더 나이가 들면 이 때를 그리워하게 될까봐, 지금이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절정일까봐 두렵다.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라는 말 속에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숨어 있다. 30대에는 20대를 부러워하고 40대에는 30대를, 더 나이가 들어서는 계속 조금이라도 더 젊었던 때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나이듦에 대한 공포의 정체는 여기에 있었다.


tv-1240159_960_720.jpg
 

거기다 젊음을 숭배하는 세상은 그 공포를 더욱 부추긴다. 텔레비전에는 중년의 나이에도 20대의 외모를 유지하는 사람이 그 비법을 이야기하고 방청객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주름과 흰머리는 언제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같은 20대 안에서도 나이 뒤에 시옷받침이 붙기 시작하면 중반이고 비읍받침이 붙기 시작하면 후반이라며 중반은 초반을 부러워하고 후반은 중반을 부러워한다. 마치 20대의 시작과 동시에 한 살 먹을때마다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 같다. 인생을 등산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두가 20대를 꼭대기로 설정해 놓고 20대가 되기 전까지는 그곳에 도달하길 바라며, 도달한 후에는 멀어져만 가는 정상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이드는 게 두렵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의 가사가 서른을 앞둔 사람이 아니라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의 이야기 같은 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20대의 끝이 인생의 끝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20대가 체력적으로 가장 뛰어난 시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까지 그런 법칙을 충실하게 따를 필요가 있을까.


adult-1868652_960_720.jpg

 
20대는 분명 특별한 시기다. 20대에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하지만 그건 30대, 40대, 50대, 60대,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각 나이에는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글쎄, 아직 나이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거라면 할말은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믿는다. 평균수명이 80세에 육박하는 시대에 20대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20대를 그리워하며 보내야 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이드는 걸 산 정상에서 점점 내려오는 게 아니라 그저 평평한 숲을 걸어가는 것이라 여기고 싶다. 한 장소를 지나가야지만 새로운 곳에 도착할 수 있다. 새로운 곳은 이전에 지나온 곳에 비해 더 부족하거나 못한 곳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좋은 곳이다. 나이든다는 건 20대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니라 30대, 40대, 50대, 60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으로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다. 이미 지나온 장소에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에게 '참 좋을 때다' 하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맞아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좋을 거에요. 20대를 그리워하지 않을만큼.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든다면 젊은 사람에게 '그 때가 좋을 때다'라고 말하는 대신 나이가 들어도 즐거운 일은 늘 있다고, 나는 현재의 내가 좋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4
  •  
  • 예공
    • 안녕하세요! 이번 두레에 참가중인 나예진이라고 합니다. 먼저 글을 읽고 요즘 제가 하는 고민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저도 객관적으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청춘이라는 20대를 이렇게 보내도 될까?'하는 걱정도 있었고, 나날이 생각이 한 겹씩 늘어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을 좀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글에서 나이 드는 것을 ‘정상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평평한 숲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하신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마지막 문장을 읽고 후회 없는 20대를 보내되, 20대가 지나더라도 청춘을 그리워하지 않을 만큼의 날들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소원님의 글을 통해 어른이 되는 과정은 성숙과 지혜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니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걱정만 하기보다는 현실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0 0
  •  
  • Danny
    • 안녕하세요! 두레에 참가 중인 정연수입니다. 저는 어릴 적 부터 나이드는 것을 두려워하곤 했어요. 계속 아이이고 싶다, 학생이고 싶다, 20살이고 싶다 등등. 최근에는 점점 취업 걱정을 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뭐 먹고 살지? 젊을 때 하나라도 해두어야 하는데 하는 소리를 듣다보니 마음이 조급해지더라구요. 사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훨씬 더 긴데 말이에요! 소원님의 말처럼 나이드는 것이 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게 아닌 숲길을 거니는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지는 것 같아요ㅎㅎ(특정 나이가 지나면 '꺽인다'라는 표현은 참 좋지 못한 것 같아요.) 한걸을 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즐기면서 살아가고 싶네요! 현재의 나를 더 좋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겠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 0 0
  •  
  • Hoolo
    • 안녕하세요! 이번 두례에 참가하게 된 성채윤이라고 합니다! 앞서 피드백을 너무 늦게 올려드려서 죄송합니다!!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한 번도 정면으로 마주보지 않았던 두려움을 마주볼 수 있었습니다 ㅎㅎ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왕년'과 제가 그리워하는 '학창시절'이라는 단어의 근원지가 두려움이구나, 라는 섬뜩함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려움은 분명 우리에게 힘을 주는데, 내 안의 부정적인 힘인 것은 맞아서 (마치 흑마술처럼) 그 두려움을 굴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요! 아직 또렷한 10대의 기억과, 이제 12시가 땡 친 20대의 현재 사이에서 9살때의 나는 신비로운 10대를 기대하고 있었고, 그 기대는 처참하게 부서졌음은 부정할 수가 없네요.. 그러면서 또 찬란한 20대를 기대하고 있었음도요! 인간의 드라마의 힘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0 0
  •  
  • 자유인
    • 안녕하세요 두레 참가 중인 최지은입니다. 소원님 말씀에 공감이 되고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저도 항상 '젊음이 좋을 때야, 앞으로는 내리막길 밖에 없어. 너도 이제 끝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왜 내가 시들어가는 것처럼 말할까? 하지만 후반이다보니 그런 생각에 점점 물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언제나 젊은데, 항상 즐겁고 행복한데 왜 주위에선 아니라고 할까?' 저는 꿈을 놓는 순간 늙는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꿈이 있다면 젊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어도 유지할 수 있는 젊음이죠.
      오르막 내리막 길이 아닌 '나이 드는 건 평평한 숲을 걸어간다'는 표현이 정말 많이 와닿았습니다. 20,30,40,50, 60대가 되어도 항상 새로울 테니까요. 그렇다면 항상 안가본 길 이기에 새롭고 기대가 됩니다. 나이 먹는 것이 기대됩니다. 사색이 담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