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열정의 색(色) [문화 전반]

빨간빛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누른 빛은 아닌 주황빛깔이 나의 열정의 색은 아닐까.
글 입력 2017.06.29 15: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열정의 색깔을 떠올리면, 빨간색 또는 적어도 무언가 불그스름한 색이 연상되곤 한다. ‘열’이란 것이 일단 ‘뜨거울 열(熱)’이기도 하고, 뜨거운 것은 곧 불이나 매운 음식을 떠올리게 해, 열정을 생각하면 빨간색이 연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인 것 같다.


225b7fcf37f8a0d48b306a57f0e9a4ef.jpg
 

  또 열정 하면 떠오르는 만화 ‘슬램덩크’를 보면, 농구에 미쳐있는 각양각색의 고등학생들이 등장한다. 라이벌까지도 매우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붉은 머리의 강백호. 그리고 그가 속한 북산고교의 유니폼도 빨간색이다. 빨간 이미지를 가진 이들이 우직하게 그들의 꿈을 향해 내딛는 것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코트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들만큼은 아니어도 고등학교 시절 나 역시 농구에 빠져있었다. 공부에 투지를 쏟긴 어려웠지만 농구만큼은 온 힘을 갖다 바치고싶은 스포츠였다. 남자아이들의 전유물과 같았던 축구와는 달랐고, 피구보다는 더 전문적인 느낌을 주는 농구는 여학생 사이에서 체육대회의 꽃으로 여겨졌다.


13.jpg
▲ 체육대회에서 우승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소녀들
 

  교내에서 농구의 인기는 날로 치솟아서 점심시간이면 학생들이 코트로 우르르 몰려가 자리싸움이 일어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이 때문에 학생회는 학년과 성별에 동등하게 자리를 분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학생들의 열정에 힘입어 농구대회가 개최되었고 꽤 큰 상금이 걸렸다. 같은 반 친구들로 팀을 꾸려 포지션을 정하고 매일같이 우승을 향해 점심시간, 저녁시간, 주말마다 농구코트를 내달았다. 대회 당일, 리그로 진행되는 예선전에서 탈락할 뻔한 위기를 모면하고, 예선전에서 우리 팀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팀을 만나 역전승을 거두는, 그야말로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쓰고 나서야 우승이라는 예쁜 추억을 거머쥐게 되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같은 팀 친구들이나 응원하는 친구들 모두 눈물을 쏙 뺐다. 농구가 뭐라고. 그때는 정말 뭐라도 됐었다. 저녁 어스름이 질 때쯤 운동장 구석 코트에서 친구들과 함께 몸을 부딪치고 어깨가 아플때까지 슛연습을 하다보면 온 몸에 피가 활발히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잘 느끼지 못하는 심장 박동도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이렇듯 농구는 빨간색으로 꿈틀대며 생동하는 열정 그 자체였다.


2011-03-11 18.21.09.jpg
 

  농구를 했을 때의 열정과 같은 선상에 놓기에 조금 다른 열정도 존재했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올 즈음 록 음악에 빠져있었던 나는, 무대에서 직접 연주하는 내 모습을 수업시간마다 상상하곤 했다. 몇달 간 엄마를 졸라 기타를 샀고, 같은 학년의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다. 오합지졸로 시작했지만 거짓말처럼 우리 기수부터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이 시작되었다. 실용음악 교수님들의 강습이나 이런저런 대회에 참가하는 것부터 관객석에서만 앉을 수 있었던 큰 공연장에서의 연주, 전문적인 레코딩 경험까지 일생동안 만들기 어려운 굵직한 추억들을 이 때 쌓았던 것 같다. 공부는 밴드 활동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미리 해두어 적당한 성적을 내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었다. 당시 나는 스스로가 빛난다고 여겼고, 물론 지금도 그때가 참 반짝이는 시절이었다고 가끔 회상한다. 투지는 조금 덜어내고 즐거움으로 나머지를 채운 열정이 이 때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행복을 너무도 잃고 싶지 않았기에, 졸업이 다가올 수록 빠르기만 한 시간을 탓하는 눈물도 자주 흘리기도 했다.
 
  농구와 밴드 활동의 공통된 구석은 당시의 내가 '이것이 '열정'이구나.', '이것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획'이구나.' 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농구와 음악에 더 몰두할 수 있었고, 더 애착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학창시절이라는 울타리 안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걱정도 없었다. 또 지금 이렇게 즐기다 보면 미래의 나 또한 자유를 누리고 있을 것만 같은 왠지모를 자신감도 있었다.


20150627001721145_1.jpg

 
  때로는 밝게 빛나고 뜨겁게 타오르던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대학에 가면 자유와 어른스러움의 비호 아래 열정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줄 알았다. 자유,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하는 범위는 어떤 외적인 것―예를 들면 돈, 성별, 취업을 위한 스펙 등―에 의해 한정되곤 한다. "바로 이거야!"라며 해냈던 것들이 궁극적으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발버둥으로 귀착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른스러움은 지금 세대에서는 힘듦을 감내해야만 했던 사람들에게 억지로 부여되는 이미지인 것만 같다. 참아내는 것이 항상 옳은 일은 아닌데, 옳은 일인척 둔갑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한다.

 
i.jpg

 
  재작년즈음 한 편의점에서 비롯된 열정페이 논란이 있었다. 여전히 또는 지속적으로, 공짜로 혹은 정당한 값이 아닌 급료로 누군가의 열정을 갉아먹고자 하는 시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노력만으로 지금보다 많은 것이 가능했던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자꾸만 그 두 세대를 분리해낼 노력을 계속해서 해도 모자르다. 그런데 자꾸만 그때의 시대상을 회고하고 지금에 적용하려한다. 열정을 키워나갈 형편이 안되는 데, 열정이 능사인 것 마냥 모든 난제에 열정이 답이라고 주장한다. 정답이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시대에서 예전의 풀이를 들이미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응용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을 자꾸만 구석으로 내몰고 젊음을 착취하려는 어떤 이들 때문인지, 본래 열정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열정을 주제로 한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강연이 나오지만, 열정만으로는 먹고 살수 없는 젊은 세대에게 있어서 이제 그것은 약간 고리타분한 느낌이다. 간혹 이 와중에도 열정 하나만으로 바닥에서 지붕까지 뚫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의 기준으로 또 들이미는 것이다. 이쯤되면 그냥 이전의 풀이를 답습하는 것보다 그냥 '자기들 좋은대로의 현상 유지'를 해결책이랍시고 교묘히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기저에 이런 의식이 깔려있는데, 열정이 곧이곧대로 좋은 의미로 전달될 수가 없다. 빨간 빛깔에 여러 가지 색이 스며들고, 탁해지기 시작한다.


abstract-background-with-a-yellow-watercolor-texture_1048-2243.jpg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열정은 결코 빨갛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조금 빛이 바랜듯한 노르스름한 색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빨간빛도 아니고 또 완전히 누른 빛은 아닌 주황빛깔이 나의 열정의 색은 아닐까. 이 색에는 약간의 자조가 섞여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애초에 열정이란게 꼭 빨갛기만 해야되는 건 아닐 수 있다. 나름대로의 열정, 그것이 설령 '타협된' 열정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여전히 생동할 수 있다.

  매일같이 농구코트를 내달리고, 밥도 거른채 기타줄을 두드리던 내 모습은 이제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리고 기타 역시 방 한구석에 처박힌채 줄이 삭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초여름의 어스름을 바라볼 때나 예전에 들었던 반가운 노래를 들을 때면 추억들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과거의 내가 특별히 순수했기 때문에 빨간 빛의 열정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하기엔 나는 지금 많이 자라지 않았다. 불완전한 자유나 작위적인 어른스러움이 본래의 빛깔을 좀먹으려 하기도 하고, '성과'라는 속내를 뒤에 감춘 '탁한 열정'이 좋은 것인양 포장되어 강요되기도 하지만, 그 틈을 비집고나와 조금 바래고 닳았더라도 형형색색의 열정이 각자의 빛을 뿜을 수 있길 바란다.

 



이미지출처

개인 소장 이미지
구글 이미지



7693f23c8047f4b551eb2f572f379980_CPdZ5FEoh65wGmVpr8w26IU.jpg
 

[최예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