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노운 걸 unknown girl [영화]

알 수 없는 너에게 문을 열면, 시작되어버린 윤리의 서사
글 입력 2017.06.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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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걸 unknown girl
_ 알 수 없는 너에게 문을 열면, 시작되어버린 윤리의 서사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개봉 2017.05.30
출연 아델 하에넬(제니 役)
 
 

진료 시간은 한 시간이나 지났고, 벨 소리도 한 번밖에 울리지 않았다. 소녀가 왜 벨을 눌렀는지, 무엇이 소녀가 벨을 누르도록 만들었는지, 벨을 누르던 소녀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 소녀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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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는 작은 클리닉에서 사람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을 한다. 사실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은 치료보다는 간단한 처방에 가깝고, 어쩌면 그녀의 주된 업무는 ‘진단’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누군가를 진단하여 살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병명을 알아보는 일. 타인을 알아보는 일. 그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다.
 
‘언노운 걸’은 제니가 타인을 알아보는 이야기, 모르는 타자에게 문을 열어주는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1. 벨을 누른 사람들, 제니가 문을 열어준 사람들
 
제니가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은 모두 이름 모를 소녀의 죽음에 어떤 형태로든 가담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모두 소녀를 알아보는 사람들, 즉 타자였던 소녀와 어떤 형태의 관계가 발생한 사람들이다. 소녀의 죽기 전 행적을 목격한 사람, 소녀를 도망치게 만든 사람, 소녀를 찾지 않은 사람. 사실관계에서 명백하게는 그들 모두 그녀에게 직접적인 가해를 저지른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은 소녀와의 관계가 발생했던 사람, 소녀에 대해 진술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사실상 소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느냐 묻는다면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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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들은 모두 소녀의 죽음과 자신을 떼어놓지 못하며 괴로워하고 결국에는 제니에게 찾아와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타자와 관계 맺는 우리가 결코 타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거처럼, 그 필연적인 힘에 압도되듯이.
 
그들은 어째서 제니에게 찾아왔을까. 그들은 왜 다른 누구도 아닌 제니에게 찾아온 걸까. 이 지점에서 제니를 찾아온 사람들과 제니가 하나로 묶여질 수 있음이 드러난다. 제니, 그리고 제니를 찾아온 사람들. 그들은 모두 소녀에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사람, 그들은 모두 부채감을 떠안은 사람들이다. 소녀의 죽음을 공모하거나 소녀에게 직접적인 가해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소녀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부채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날의 나들이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해왔다.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다.”
 
황정은 『아무도 아닌』, 「상류엔 맹금류」에서
 
 
그들은 아마 소녀의 죽음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소녀를 죽인 건 아니라고. 나는 소녀를 몰랐다고. 소녀를 죽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에서고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찾아 이야기하는 것 외에는 어디에서도.
 
그들은 제니에게 찾아와 소녀에 대해 진술한다. 소녀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던 제니에게 그들은 소녀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을 말한다. 소녀는 그들의 진술과 증언으로 설명되고 묘사된다. 소녀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모인다고 해서 정확히 바로 그 소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는 결국 소녀의 이름을 알아낸다. 그들로 하여금 제니는 결국 소녀를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소녀의 이름, 펠리시, 펠리시 콤바.
 
(덧붙여, 그들이 제니로 하여금 소녀를 알아볼 수 있도록 진술한 사람들임과 동시에 그들은 제니가 진단한 사람들, 즉 제니가 알아본 사람들이기도 하다.)
 
 

2. 문을 여는 제니
 
제니는 문을 연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든 이른 시간이든, 그녀가 어디에 있든 그녀를 향해 벨을 누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는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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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벨을 눌렀고 얼마 후 죽었다. 소녀가 벨을 누르고 죽기까지의 과정 사이에 제니는 ‘늦은 시간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지 않았다’라는 사실로 이렇다 할 명암 없이 끼워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제니는 소녀를 찾는다. 소녀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어 소녀를 수소문한다. 그 때문에 위협을 당하고 신뢰를 잃더라도 제니는 기어이 소녀의 이름을 찾아내고야 만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소녀의 죽음, 그리고 소녀의 죽음에 질식당할 만큼 목이 메어버린 제니. 소녀의 얼굴을 본 순간 이후, 제니는 그 얼굴 앞에 한없이 무력한 것이다.
 
 
“얼굴이 나에게 부과되면, 나는 얼굴의 부름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고, 얼굴을 잊을 수도 없다. 즉 그가 겪는 불행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알랭 핑켈프로트 『사랑의 지혜』에서
 
 
알 수 없는 사람, 그러나 나에게 맨 얼굴을 보인 사람. 그리고 그 얼굴을 본 순간 압도되듯 그 앞에 무력한 나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 얼굴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고 도망칠 수 없는 것.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제니의 무력함, 제니의 부채감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린 ‘윤리’라고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을 여는 제니는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사실 그녀의 의지로 나아감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도록 되어버린 것일지 모른다. 이미 그녀는 타자의 맨얼굴 앞에 복종하도록 그녀의 윤리의 서사가 시작된 것이다.
 
 

3. 영원히 언노운 걸일지라도
 
우리가 감히 누군가를 알 수 있다고 혹은 그 사람은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온갖 애를 써도 타자는 죽을 때까지 타자다.
 
모르는 사람, 그러니까 내 삶과 다른 문법으로 살아가는 사람, 나는 영영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사람에게 얼 만큼의 과심과 애정을 줄 수 있을까. 즉, 나는 그 타자에게 어느 정도의 윤리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단 말일까. 확답 할 수 없다. 무엇보다 내가 타자에게 윤리적일 수 있는 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에서, 바로 그 무력감에서 윤리를 본다. 그 필연성 바로 그 곳에서.
 
제니는 문을 연다. 그 누구에게도 언제라도 문을 연다. 설령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언노운 걸일지라도. 영원히 언노운 걸일지라도.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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