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비극 < 그리스의 여인들, 안티고네 >

글 입력 2017.06.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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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여인들, 안티고네> by. 극단 떼아뜨르 봄날

출연

 송흥진 ㅣ 이춘희 ㅣ 이 길 ㅣ 고애리 ㅣ 윤대홍 ㅣ 장승연 ㅣ 엄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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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작품은 연극 <심청> 이후로 두 번째다. 그리고 이번에 본 작품으로 말미암아 내게 이 극단은 '믿고 보는 극단'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 이후의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유난히 현대인들이 애정하고 자주 인용하는 신화이기 때문에 직접 소포클래스의 희곡을 읽지 않았던 사람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 본 익숙한 스토리일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부친살해와 근친상간의 전말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그가 왕위에서 물러나 유배의 길을 걷게 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안티고네는 바로 그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가 낳은 오이디푸스의 여동생이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비극인 셈이다. 안티고네는 스스로가 죄악의 원천이자 그 죄의 희생자가 된 눈 먼 아버지를 위해 망명길에 따라 나선다. 오이디푸스가 최후를 맞이할 땅이라 예견된 콜로노스까지 동행하여 그의 죽음을 보고 안티고네는 테베로 돌아온다. 두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를 말리기 위해서다. 그러는 동안 이오카스테의 남동생이자 안티고네의 외숙부인 크레온이 테베의 왕이 되고, 그는 테베를 지키다 죽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도록 명하는 대신 조국을 상대로 싸움을 벌였던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들판에 그대로 방치하고 매장을 금지했다. 이 명령을 어기는 자는 결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잊었나본데, 나는 왕이오. 이 도시의, 이 나라의 하나뿐인 존엄!” - 크레온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대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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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무대 양 끝에 세워진 마이크 두 대, 언니 안티고네와 여동생 이스메네의 비밀스러운 대화에서부터 말이다. 안티고네는 지엄한 왕명을 어기고 벌판 위에서 처참하게 썩어가는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흙으로 덮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녀에게선 한 명의 절대 권력의 입을 통해 떨어지는 국법보다 인간의 도리, 인간의 존엄성이 먼저였다. 그리고 결국 그 죄로 동굴무덤에 산 채로 감금되어 굶어 죽도록 하는 형벌을 받지만, 그녀는 왕이 원하는 죽음의 모습이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끝까지 국가의 일방적인 형벌권에 저항한다.

  팔자라는 게 있다면, 정말 이렇게까지 기구한 팔자가 있을까 싶지만 안티고네의 의지와 행동력은 그 운명을 거스르는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결코 세상이 굴러가는 대로 침묵하지 않겠다는, 결코 자신의 고통과 내면의 목소리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불복종으로서 존재하겠다는 강렬한 여인. 사실,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의 망명길에 스스로 따라 나서던 모습에서부터 그녀가 인간에 대해 품고 있는 감수성은 예사롭지 않았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를 경멸하며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원망감에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 비극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주제에 활개 치는 운명의 장난을 매듭이라도 짓겠다는 듯 아버지의 죽음을 지켰고, 오빠의 장례를 책임지고, 스스로 죽음으로써 비극적인 가족사를 끝낸다. 도저히 인간일 수 없던 상황 속에서 끝끝내 인간이었다.

  또한, 연극은 어리석은 국왕으로 그려지던 크레온의 캐릭터를 훨씬 입체적으로 부각했다. 오만하고 권력 지향적인 인간 크레온의 최후는 끝까지 고매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켰던 안티고네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더 처참하게 그려졌다. 안티고네의 약혼자였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과 아내 에우리디케의 죽음. 그 후 비탄의 나락에 빠져 울어도, 웃어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없는 처지가 된 크레온. 그의 눈물과 해명과 회한과 절규는 그저 인간적 삶에서 추방당한 자의 먼 아우성이었을 뿐이다. 스스로가 권력이었기에 현실을 부정할 자격도, 비난할 더 높은 것도 없다. 죽은 자보다 더 무서운 죽음을 살아야 하는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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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들의 연기는 압도적이었다. 연극 <안티고네>에서의 송흥진은 <심청>에서의 송흥진과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색달랐고 또 다른 맥락에서의 첨예한 감정선을 보여주었다. 광기와 탐욕과 비탄을 순식간에 오고가는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좁은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선과 제스처가 너무 자연스럽고 정확해서 놀랐다. 에우리디케 역을 맡았던 이춘희의 손짓과 말투도 인상적이었다. 외모가 품고 있는 아우라 때문인지 상당히 고전적인 색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기발랄하고 유창하게 대사를 쏟아냈다. 안티고네의 고애리 배우도 그 강렬하고 완고한 성격의 마스크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 외 이스메네 역, 테이레시아스 역, 하이몬 역을 맡은 다른 배우들 역시 너무나도 제각각 개성적이고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일단은 장황체로 구구절절 펼쳐지는 언어유희성 대사를 어떻게 숙지하고 소화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나로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마, 이 배우들이 있었기에 이런 연출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엄청난 대사량, 5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서사를 끝내야 하는 구성, 분위기의 고조를 위해 허밍을 깔기까지.

  <안티고네>는 한 편의 시 같은 극이었다. 절제된 기타 연주와 허밍, 무대 위를 쳐들어왔다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며 빠져나가는 대사들의 여운, 강렬한 눈빛들. 사실 소포클래스의 고대 희곡 역시 코러스와 어우러지는 서사시이기 때문에 이와 못지않게 음악적이고 시적이었을 거다. 그러나 극단 떼아뜨르의 연출은 굉장히 현대적이고 새로운 관점으로 다가왔다. 원전에 충실한 입장을 취하고 있음에도 그 고전이 품고 있는 인간사에 관한 의문점들을 현대어로,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해냈다. 고전에 대한 재해석은 이래야 한다. 가슴에는 고전성을, 목소리에는 현대성을 품어야 당대성을 획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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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법’과 ‘개인의 윤리’이라는 양립하는 선(善)의 문제에서 이 연극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넌지시 제기하며 그 끝에 인간을 두었다. 아니, 인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여인을 두었다. 사실 무엇이 옳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무엇이 더 우월한 가치라고 단정 짓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진정성을 추구한 내용이라도 불안정한 답안이 될 수밖에 없다. 국왕으로서 수많은 희생자를 낸 반역자의 장례를 금지한 크레온이나, 반역자의 가족으로서 그의 장례를 기어이 치러야 했던 안티고네나 각자의 이유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는 이 연극이 안티고네의 입장에 더 많이 치우쳐지지 않았나 싶지만 어쨌든 그것을 설명하는 논리와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내겐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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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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