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전쟁 속의 인간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를 들여다보다
글 입력 2017.06.2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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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3일부터 6월 4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공연 되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작년에 초연한 이후로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2016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월간 연극이 선정한 2016년 올해의 공연 베스트7에 선정 되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연극이다. 이와 같이 워낙 유명세를 떨친 작품이다 보니 재연인 이번 공연에도 극장이 수많은 관객들로 붐볐고, 연일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울면서 나오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같은 사람이 두세 번 관람하는 건 부지기수였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이토록 사랑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들을 이 작품에 공감하게 만들었는가? 작품을 깊숙이 들여다봄으로써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군대라는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겪는 비극을 보여준다. 육군, 해군, 일제의 공군, 그리고 이라크가 이 공연의 배경이다. 글을 쓰고 작품을 연출한 박근형은 각각의 에피소드를 순차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분할해 배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육군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다가 공군으로 넘어가고, 그 다음엔 해군이 다뤄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식이다. 이는 ‘드라마’라는 형식을 전복시킴으로써 기존의 관습을 깨고, 극에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연출적 시도였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각 에피소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극은 육군의 에피소드로 문을 연다. 시기는 2015년, 탈영병이 속출해 골치를 앓고 있는 육군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제 옷에 가발까지 군 부대로 반입해 탈영한 사람이 있을 만큼 허술한 모습의 육군은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또 한 명의 탈영병이 발생한다. 제대를 한 달 남긴 병장이다. 한 달을 못 버티고 탈영한 것도 놀라운데 사실 그는 3대 독자로, 면제를 받았지만 자원해 입대했다. 사회나 군대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기존의 인식을 파괴하는 정말 ‘별난 놈’이다. 그가 탈영하고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부친이 근무하는 아파트 경비실이었다. 자신을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한 집을 기대한 것이리라. 하지만 집은 재개발 되어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경비실, 그리고 본인에게 잘 해준다는 한 과부의 집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비 일 조차 쉽지 않다. 세대 간 갈등에 애꿎은 아버지가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고 그는 화를 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너는 아직 멀었다’며 갈등을 수습한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에 굳은살이 밴 모습이 불의에 발끈하는 그와는 대조적이다. 그는 탈영했지만, 그에게는 군대 밖의 세상도 군대 못지않게 험난하고 위험하다. ‘오늘은 제가 지켜드릴게요’라고 말한 이유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교회이다. 그의 모친은 심판의 날이 왔다는 목사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죽음을 택했다. 종교 또한 군대와 같다. 시스템을 등에 업고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수장이라 하는 목사는 그런 개인을 기억조차 못한 채 자기 목숨을 구걸하는데 급급하다. 이런 비열하고 잔인한 사회에 지친 그를 이해해주는 건 길가에 떠도는 여인이다. 부적응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결국 죽어서야 ‘태극기’라는 족쇄에서 해방된다. 

   가미카제는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자살특공대다. 이 작품에서는 1944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조선인 청년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일본 땅에서 차별 받지 않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일본인처럼 살아 왔고, 결국 황군의 가호를 꿈꾸며 가미카제 특공대에 자원입대하게 된다. 그의 부대에 있는 다른 조선인은 부정한 방법을 써가면서 1등을 차지해 조선인인 자신이 일본인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로써 일본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 특공대에서 1등이 의미하는 것은 가장 먼저 죽는 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미카제의 청년들은 가장 먼저 죽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작품 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말장난이 등장한다. 이 말은 일본인으로써 대접받지 못하는 조선인의 처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사람답게 살고자 하면 일본인이 되어야 하고, 일본인이 되려면 제 발로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현실은 그들을 사지로 내몬다. 작전에 투입되는 날, 청년들은 마지막 말을 남기며 하나같이 ‘야스쿠니 신사에 묻어 달라’고 말한다. 국가라는 시스템은 야스쿠니 신사, 현충원, 훈장 등을 전면에 세워 개인의 죽음을 포장하고 유족들로 하여금 그들 개인의 죽음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없도록 만든다. 나라를 위해 죽었다는 명예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황제폐하 만세’를 외치며 죽어간 청년들의 죽음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03년,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에 군수물자를 납품하는 한 남자가 이라크의 무장단체에 납치당한다. 그는 자신이 민간인이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도 원래부터 군인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민간인이었던 그들이 미군에 의해 자신들의 가족이 죽고, 다쳐 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군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파국 속에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이 속에서 민간인과 군인의 경계는 지워진다. 그는 포로가 되어 수차례 한국 방송국에 보내는 파병 철회 요구 영상을 찍지만 요구는 들어지지 않고, 목숨은 위태로워진다. 결국 ‘당신 자식 일이었어도 이랬을거냐’며 절규하기에 이른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적 악행에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이런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무감각했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는 둘도 없는 악인이 된다. 결국 ‘네가 불쌍하지만 우리도 불쌍하다.’, ‘보아라, 한국, 이 남자는 너희 손으로 죽인 것이다.’라는 무장단체 여인의 대사와 함께 남자는 처형당한다. 이는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그는 분명 군인이 아니었지만 파병과 철수라는 국가의 정치적 계산과 싸움에 휘말려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었다.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이렇게나 나약하다.

   마지막은 2010년,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초계함의 이야기이다. 한 사람씩 자신의 이야기를 상담하는 듯이 시작된 이야기는 침몰하기 전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들이 있는 사람, 아버지의 바람기를 어쩌지 못해 난감해 하는 사람까지 각자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그때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깜깜하다.’며 말을 피한다. 다음에 보여주는 이야기는 같은 듯 다르다. 침몰 후의 이야기이다. 꿈꾸던 미래를, 혹은 당연했던 일상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과 슬픔을 그들은 같은 대사로 보여준다. 합동 영결식이 치러지고, 생존자는 그들의 이야기에 파묻혀 살아 돌아온 미안함에 괴로워한다. 그 끔찍한 바다에서의 고통을 이해하는 잠수부만이 생존자의 등을 두드리고 안아준다.

   전쟁은 시스템이, 권력이, 국가가 하는 것이다. 그 속의 개인이 겪는 절망과 불행은 철저히 묵살 된다. 그들은 ‘군인’이라는 이름하에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거세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단 군대에 속한 군인들만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 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모두를 군인으로 만든다.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전쟁 속에서 누가 ‘민간인’으로 남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여 있는 모든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육군 탈영병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어차피 사는 게 전쟁이고, 우린 모두 군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의 삶이 무시된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군인이다. 박근형 연출과 그의 이 작품이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조차 전쟁 속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인간은, 불쌍하다.


[정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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