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과 조성진- 줄 세우는 사회에 대한 단상

글 입력 2017.06.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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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를 꼭 하고 싶어요.”


  101명으로 시작해 11명의 최종 데뷔 멤버를 뽑는 파이널 생방송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나오는 VCR에서 스무 명의 데뷔 후보 연습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 날, 자신들의 ‘고정픽’에게 데뷔는 물론이고 센터, 즉 1등을 선물하고자 하는 국민 프로듀서들의 팬심은 곧 엄청난 투표 열기로 이어졌다. 생방송 시간 동안 연습생들은 개인별로 각각 많게는 150만 여 표, 적게는 60만 여 표를 획득했다. 그리고 이 득표수에 따라 데뷔와 탈락의 운명이 갈렸다. 승자들은 감격스러워했고, 패자들은 승자를 아낌없이 축하해 주는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아름다운 경쟁인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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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프로듀스 101 시즌 2>는 사실 알고 보면 꽤나 잔인했다. 아니, 무척 잔인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전작 시즌 1에서 최종 생방송 진출 인원이 22인이었던 것과는 달리, 시즌 2에서 최종 생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인원은 전작보다 2명이 적은 20인이었다. 그리고 이는 온전히 제작진의 임의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 생방송 멤버를 결정짓는 3차 순위발표식에서 21등과 22등을 한 연습생은 결국 데뷔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가지 못하고 탈락해야만 했다. 마치 소수점 몇 점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는 대학 입시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파이널 생방송에서는 이러한 잔인함이 극에 달했다. 생방송 중간 중간, 제작진은 데뷔 커트라인인 11등부터 데뷔의 문턱 바로 앞에 있는 14등까지의 연습생을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또한 문자 투표 종료 후 이어진 최종 데뷔 멤버 발표식은 거의 2시간 정도 이어졌다. 11명의 인원을 발표하는 데에 방송 시간의 절반 이상을 소요한 셈이다. 연습생의 이름 하나를 발표할 때마다 과도한 시간끌기가 이어졌다. 이에 당사자인 연습생들은 불안감과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 또한 염증을 느껴야만 했다. 마침내 데뷔 멤버가 결정된 후, 커트라인 안에 속한 연습생들은 곧 ‘선택받은 자’가 되어 무대 반대편에 위치한 피라미드 모형 안의 자신의 등수가 적힌 의자에 하나 둘 씩 자리한다. 그 중에서도 1등을 차지한 ‘센터’는 피라미드의 최상위층인 왕좌에 자리를 잡고, 그렇게 <프로듀스 101>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소년들을 당락에 따라 쥐고 흔드는 이 엄청난 잔인함에 안타까움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미 줄 세우기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편, 이처럼 어딘가 잔인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프로듀스 101>과 사뭇 그 성격이 달라 보이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몇 년 간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그 저변이 매우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세계무대에서 잇따른 한국인 연주자들의 낭보가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2015년 쇼팽콩쿠르 우승은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크나큰 쾌거였다. 그리고 그의 우승을 계기로, 이 젊은 천재 피아니스트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은 곧 음반 판매량과 연이은 공연 티켓 매진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조성진 열풍’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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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이미 2009년 일본 하마마츠 콩쿠르 1위,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3위, 2014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3위 등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클래식 애호가들을 제외하고는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클래식 계 에서도 쇼팽콩쿠르 이전까지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유망주’였다.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어린 나이에 대단한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편, 조성진에게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는 지금의 막강한 티켓 파워 또한 몇 년 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실제로 그는 쇼팽콩쿠르 이전에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인터뷰를 하면 공연 표가 좀 팔리나요?’라고 인터뷰어에게 묻기도 했다. 사실 조성진은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자신의 연주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기에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1등을 거머쥔 ‘노력형 천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쇼팽콩쿠르 우승 이후 그는 ‘더 이상 콩쿠르에 나가지 않아도 되기에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가 만약 쇼팽콩쿠르에서 1등을 하지 못했다면, 현재도 콩쿠르에 참가했을지 모를 일이다. 결국 그의 쇼팽콩쿠르 도전기는 ‘1등을 위한’ 1등이 아니라, ‘살아남고 기억되기 위한’ 1등 도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성진은 마침내 자신의 연주를 계속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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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우승자 선우예권 또한 조성진과 다르지 않다. 참가 자격이 30세까지인 이 대회에서 선우예권은 28세로 적지 않은 나이와 다수의 연주 경력, 수많은 국제 콩쿠르 우승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과 연주를 더 널리 알리고 커리어를 쌓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결국 그의 우승이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선우예권 또한 이제야 온전한 ‘자신의 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 것이다.
 

 결국 <프로듀스 101>과 두 피아니스트들의 피라미드 입성 도전기는 곧 우리 사회의 현재를 여실히 보여준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표현을 관용어구나 속담처럼 사용하고 있을 만큼, 서열화 되고 점수로 개인을 평가하는 사회에 익숙해져 버렸다. 성적, 입시, 취업, 승진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피라미드 속에서 각각의 개인은 101명의 연습생처럼 A, B, C, 혹은 F로 수치화 되고, 그 수치들은 곧 개인을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구조는 최고가 아닌 사람들, 탁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이 평범함이나 미달의 영역에 위치한 의자에 자리를 내어 준다. 순위화된 사회 안에서 대다수의 개인들은 처음에는 분노하거나 절망하며, 저항하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 단단한 피라미드 속에서, 개인들은 차츰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자리에 순응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개인들은 구조 자체를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이 공고한 피라미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대기로 가기 위한 무한한 경쟁을 지속한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또 다른 피라미드 속의 사람들은 이 경쟁의 장면에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자신도 모르게 거대한 일렬의 줄 어딘가에 서 있는 우리들이 저마다의 ‘고정픽’에게 보내는 이 응원과 환호가, 어쩐지 슬프고 짠한 이유다.





(사진출처: 프로듀스 101 시즌 2 X M2 페이스북, 쇼팽콩쿠르 공식 홈페이지, 반 클라이번 콩쿠르)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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