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 여성에게 왔을 때

주체성과 삶의 연결 관계에 대한 포스트페미니즘적 접근
글 입력 2017.06.2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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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페미니즘을 말함에 있어 “선택”은 중요한 기반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을 다루는 것에서조차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을 따라야하는 ‘선택 아닌 선택’을 해야 했다. 포스트페미니즘은 이러한 여성다움을 강조한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로도 해석될 수가 있으며 남여의 구분을 뛰어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성이 보호가 필요하고 실무적인 면이 부족한 약자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 현대여성으로서 사회 안에서 입지를 굳힘으로써 그들은 타인과 자신, 자신의 삶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언급할 포스트페미니즘의 요소를 담은 두 영화는 다양한 부분을 집어주며 이를 영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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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케틱 감독은 영화 “금발이 너무해”(2001)에서 철없고 덤벙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스스로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주인공 엘을 등장시킨다. 주인공의 나이가 많지 않기에 영화는 그녀가 새로운 환경에서의 자기발전을 이룩한 후, 사회에 진출할 준비된 모습까지를 보여주고 끝이 난다. 엘은 등장부터 끝까지 자신의 말과 행동에 확신을 보여주며, 거짓 없이 상대를 마주하는 모습을 일관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때론 비웃는 시선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색깔인 분홍색으로 치장하는 것을 즐긴다. 때문에 우리가 괜스레 민망하게 느껴지는 장면도 몇몇 있었지만 주목할 점은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상당부분을 참고 포기할 줄 하는 근성이 있다는 것과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있기에 그녀에게서 늘 느껴질 수밖에 없는 자신감이다.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해 평소 즐기던 파티를 넘기며 LSAT를 공부했고, 점수를 받아냈다. 그리고 자신을 알리는 독특한 영상을 찍어 보냄으로써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룬다. 물론 이 부분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장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에 대한 논쟁과 관계없이 포스트페미니즘이 말하는 삶의 주체가 엘로 대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카메라는 영화 속에서 엘의 매력적인 외모며 몸매를 꾸준히 담아낸다. 하지만 알아둘 점은 엘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스스로를 열심히 가꿀 뿐이며 남들의 시선은 애초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남성들이 여자를 바라볼 때 갖는 소유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런 남자들을 자신이 바라본다는 입장의 전환으로까지 이어진다. 영화에서 엘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적극 활용하여 변호사로서 승소하고 이후 졸업생 대표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다. 처음엔 워너를 목적으로 하버드에 온 그녀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목적을 변경했고, 스스로를 위해 학교에 남아 노력한다. 워너는 졸업장도 없이 학교를 떠났고 엘은 훨씬 바람직한 남자를 얻었으며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 이는 온순하고 말 잘 듣는 남성의 전유물로서의 과거 여성에서 벗어나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선택과 도전을 바람직하게 여기는 포스트페미니즘의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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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진출 이후 야기되는 페미니즘을 다룬 영화로는 데이빗 프랭클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가 대표적이다. 영화는 여성들의 세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철저한 패션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집안의 육아만 담당하던 구시대적 여성이 아닌 자신이 노력하고 얻어낸 사회에서의 지위가 엄연히 존재하며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강력한 주체로서의 여성을 그리고 있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 프리슬리는 냉정하고 칼 같은 편집장으로 육아 및 가정까지 병행해야하는 포스트페미니즘의 여성 이미지를 투영시킨 인물이다. 뚜렷한 전문분야를 가짐으로써 기존 남녀의 상하관계를 무산시키고, 말하나 몸짓하나에도 카리스마를 뚝뚝 떨어뜨리며 다른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그녀는 가히 포스트페미니즘적 여성의 표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처럼 전문분야를 갖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욱 당당하게 보이곤 하는데, 영화에서 안드레아 색스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는 “make-over”기법 이후 이 부분을 극대화 시켜 연기한다. 애초에 패션에 상관이 없으니 괜찮다는 그녀는 상상 이상으로 고된 일에 지쳐가고 결정적으로 미란다에게 “smart fat girl”을 한번 시도해본 거라는 악담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 그런 그녀가 나이젤의 도움으로 완벽한 스타일을 구사하는데 성공하고, 앤디는 변신이후 첫 장면부터 능숙하게 전화를 받아 일을 하는 등, 이후 업무에 있어 매우 발전된 모습으로 결국 미란다의 인정까지 받는다. 이 기법은 앞에서 언급한 “금발이 너무해”를 포함하여 많은 영화에서 사용되지만, 이 경우는 패션을 다루는 영화이기에 그 효과가 더욱 컸다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주인공과 본인을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make-over”같은 동화적 장치에 매료되고 특히 주인공을 연기한 선망의 대상과도 같은 배우에까지 자신을 입혀보면서 환상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또한 패션영화니만큼 평소에 체험할 수 없는 고가의 명품을 포함한 유명브랜드의 옷, 구두, 백 등의 쉴 새 없는 등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을 행복하게 한다. 전문성을 띈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이 향상되고, 이에 맞춰 구축되는 소비문화는 그들의 즐거움이자 권리로 인식된다. 오직 성공한 여성에게만 허락되는 달콤한 쾌락으로서의 쇼핑은 더 이상 한심하거나 하위의 것이 아닌 엄연한 취미이자 보상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처럼 포스트페미니즘의 특징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현대여성”의 이미지와 닮았으며 많은 여성들이 꿈꾸는 목표로서 아직까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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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성공한 여성들이 행복까지 쟁취한 것인지에 대해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앤디의 경우만 보더라도 제2의 미란다가 되어가는 과정 중, 친구들을 비롯한 기존의 인간관계가 눈에 띄게 소원해졌으며 결국 정말 사랑해마지않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지게 된다.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는 장면에서 그들이 미란다와의 연락을 방해하자 그녀는 정색하고 “너희들은 친구도 아니야”라며 자리를 떠난다. 물론 그녀가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라지만 그만큼 직장에 목을 매면 맬수록 소중히 했던 것들을 조금씩 놓아버린다는 것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말이다. 직장선배인 에밀리는 “I love my job”을 주문처럼 외우며 세뇌시키고 파리에서 유명 인사를 만나 위치를 향상시킬 것을 꿈꾸며 위험한 다이어트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말라 보인다는 앤디의 말에 소스라치게 기뻐하며 “이제 설사 한번만 하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라는 그녀의 대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든다. 미란다 역시 겉보기엔 강인하기 그지없는 카리스마 넘치는 편집장이지만 그녀에게도 가정과 자식이 있기에 이를 일과 병행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회의와 좌절감을 느낀다. 앤디가 실수로 2층에 올라가 목격한 남편에게 애원하는 미란다의 모습과 세 번째 이혼통보를 받고 자식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부분은 앤디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지 않은 모습이며 그렇기에 그 고뇌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덧붙여 오랫동안 함께 해온 나이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어야 마땅했을 시점에서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자 가차 없이 그를 뒷전으로 미루는 그녀의 잔인함은 우상시하며 바라본 그녀를 한걸음 뒤에서 다시 보게 만든다. 화려하고 당당하게만 보이는 포스트페미니즘의 이미지는 그것이 관계든 신념이나 도리든 간에 희생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이며 설령 감내하고 넘어갔다 할지라도 계속되는 갈등에 힘겨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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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는 영화 내내 자신에게 불리한 입장이 취해 질 때마다 “I didn't have a choice”라는 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상황이 그녀를 그렇게 몰아갔을 뿐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를 그대로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에서 미란다는 또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앤디를 똑바로 응시하며 “No. You choose”라고 단언한다. 미란다 스스로가 그랬던 것처럼 앤디 역시 자신의 선택으로 지금 자리에 온 것이고 그녀는 ‘us’라는 표현으로 본인과 앤디를 엮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결국 앤디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고 다시 수수한 삶으로 돌아가지만 그녀가 여전히 인생의 주체인 점과 성장한 정도는 변하지 않는다. 패션계라는 상황설정이 포스트페미니즘을 다소 과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직장을 갖고 살아가는 여성 모두가 이 문제의 테두리 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며 선택의 주체가 되어갈수록 버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괴로움역시 비례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인생의 주체로서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획득하고 인정과 보상을 꿈꾸는 여성들은 많다. 그러나 이를 막연한 이상으로만 두고 뒤에 가려진 고뇌를 보지 못하는 안일함과 아직 전적으로 지지해줄 사회기반제도가 불충분하다는 점으로 보아 여전히 그녀들이 마주할 어려움은 계속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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