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사춘기 소년의 성장통

개인의 갈망을 통해 드러나는 순수성 보존 욕구에 대한 탐구
글 입력 2017.06.2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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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다분히 회의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내내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자신의 안에서 꿈틀거리는 수많은 질문에 휩싸여 있다. 홀든은 이를 해결하고자 “지적인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을 찾지만 그가 만족할 만큼 적합한 상대는 찾기 어렵다. 그는 왜 계속해서 질문하는 것일까? 그의 반항적인 태도를 그저 학교와 선생님이 싫은 사춘기의 그것으로 보기엔 부족함이 있다. 홀든은 선생의 위선적인 태도, 사람들의 가식, 멍청하고 우둔한 인물들에게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이는 서술 초반 그가 스펜서 선생을 방문했을 때 느낀 더없이 갑갑한 감정이나 가난한 학생의 부모와는 목례 정도로 끝내는 반면 부유한 학생의 부모들과는 한 시간씩 상담해주던 교장을 경멸하는 데서 드러난다. 이처럼 그는 매일매일 가식덩어리(phony)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분노하고 감정적으로 맞선다. 그리고 그의 내면에는 형식적이고 이기적인 어른의 성질에 반하며 그에 반대되는 순수성을 지키고픈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회의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이다.

  순수성의 보존은 홀든과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그는 장소를 옮기거나 시간이 흐를 때 마다 제인과의 연락을 시도하는데, 지난 여름 아침마다 함께 테니스를 치는 등 홀든의 기억 속에서 그야말로 순수한 영혼으로서 존재하는 그녀는 그에게 있어 망가지면 안 되는, 그가 추구하는 이상의 실체이다. 그녀가 태생 그대로의 상태에서 벗어나 순결함을 잃는 것은 그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충분한 행동력이 있는 스트라드레이터가 제인과 차 안에 함께 있었고, 그녀가 침해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상상만으로도 그를 미치게 한다.

  혹자는 홀든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나 여자에 대해 묘사하는 것에서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순수성의 가장 단적인 파괴라고 볼 수 있는 성행위에 대해서 상당히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 때문이다. 또한 외모를 중시하는 발언 또한 여러 번 등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그가 혐오하는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위선자로 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선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혼란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이 혼란은 그가 순수성의 보존을 중심에 놓자 현실 또는 본능에 부딪히며 발생하는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샐리를 보자마자 순간 ‘결혼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비정상적인 사고에 대해 “미친 게 분명하다”는 식으로 인식할 정도가 된다. 또한 맞은 편 호텔 방의 남녀가 서로의 얼굴에 물을 뿜는 광경을 보며 지저분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하고 싶어하는 스스로를 색광에 빗대 표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모리스의 권유를 선뜻 받아들여 서머를 5달러값으로 만나지만 오직 이야기만을 나누려 하며, 그 이유가 그가 특별히 자제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진짜 사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주인공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엉뚱하면서 솔직한 생각이 독자를 여러 번 당황시키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청소년기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는 과도기적 상태에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체성을 확립시키고자 무던히 시행착오를 겪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홀든의 이상은 그 자체로 순수성의 보존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이는 동생 앨리와 피비로 하여금 더욱 견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는 3년전 백혈병으로 죽은 동생 앨리를 매우 그리워하며 유품인 글러브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자주 떠올린다. 그가 동생을 지키지 못하고 먼저 보낸 것에 대해 갖는 안타까움과 슬픔은 이상의 형성에 있어 기반을 다졌을 것이다. 다른 동생 피비 역시 그의 묘사에서 볼 수 있듯 끔찍이 아끼는 동생임을 알 수 있는데, 똑 부러지고 귀여운 그녀를 볼 때마다 이 아이의 순진함에 감탄하며 지켜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다른 동생을 잃고 남은 혈육이기에 더욱 다치지 않았으면 마음이 그의 이상을 형성시켜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

  홀든 콜필드는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한다. 한가로이 뛰어 노는 아이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붙잡아 주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아이들은 그가 지키고픈 순수함이며 파수꾼의 꿈은 홀든의 이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붙잡다”는 “만난다”를 그가 잘못 들은 말이다. 그는 언제까지나 아이들이 호밀밭 안에서 안전하길 바라지만 원래 노래 가사로 미루어보아 그들은 언젠가 현실과 기존 질서를 “만날”수 밖에 없으며 이상은 깨지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아무리 그가 애를 써도 아이들이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자라는 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그에겐 좌절과도 다름 없지만, 홀든 역시 이를 딛고 일어나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꿈에서 벗어나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파수꾼의 꿈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이어 예상되는 이상의 붕괴와 홀든 콜필드의 잠재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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