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예술세계 특성

글 입력 2017.06.22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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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은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던 어린 시절부터 쉽게 접할 수 있는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미술적 지식 없이도 화려한 색감은 눈에 띄며, 작품의 배경을 모르고도 동화적 분위기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나와 마을>은 샤갈은 모르지만 그림은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며,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샤갈은 이러한 대중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미술 사조를 논하는데 있어서 자주, 자세히 거론되는 화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이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와 마네, 표현주의를 낳은 고흐처럼 어느 한 가지 사조의 대표성으로 표현되지는 않는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들에 비해 샤갈은 시대별로 영향을 받은 사조가 다르며, 어느 하나로 단정짓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샤갈의 미술에는 이렇게 특징지어지지 않는 것에서 오는 매력이 있다. 일관되게 풍경만을 표현한다거나, 기이한 나름의 상징 체계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오랜 그의 인생 시기별로 작품의 특성이 달라진다. 강력한 영향을 준 유파도 없고, 세상을 바꿔놓은 획기적인 기술을 선보인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갈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미술사적 배경은 분명히 존재한다. 먼저 인상주의 이후의 서양 미술계의 흐름이 샤갈의 작품의 탄생에도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샤갈은 인상주의 이후 미술사의 거센 흐름 속에서도 나름의 차별성을 갖는데, 그 차별성의 양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샤갈의 인생 굴곡에 따라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준 요인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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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갈의 <나와 마을>


1) 샤갈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준 개인적 요인

샤갈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90년을 넘게 장수하며 수천 장의 작품을 남겼으며, 20세기의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은 색채적으로 매우 화려하며, 따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샤갈의 생애의 사건들은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러시아 비테프스크에서 가난한 유태인으로 태어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 유학 도중 1차 대전 발발하여 고향으로 잠시 도피하지만 계획보다 오래 머물게 되고, 그 때에 아내 벨라를 만난다. 그 후 사회주의 국가가 된 러시아에서 예술 탄압을 피해 다시 파리로 망명하지만, 또다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며 미국에서 아내 벨라가 병으로 사망하고, 두번째 부인을 맞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샤갈은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혼돈의 시대 상황을 샤갈은 방랑자로, 이방인으로서 고난을 직접 경험한다. 이러한 고달픈 상황에서도 샤갈은 작품 활동을 끊임없이 전개해 나간다.

고향을 떠나 지낸 샤갈이 머무는 곳이 어디든, 그는 그곳에서 이방인의 신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는 예술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초기 작품이 그러한데, 샤갈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나와 마을>이나 <비테프스크 위의 누드> 와 같은 작품들은 고향인 비테프스크의 추억을 소재로 한다. 또, 아내 벨라와의 사랑도 작품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벨라와의 행복과 그녀가 죽은 후의 슬픔은 그의 작품에 투영된다. <생일>에서는 두 사람의 행복감을 중력을 무시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 시기에 화려한 색채로 꾸며진 연인들의 모습이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이야기가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태인으로 태어난 그는 고향의 종교적 부흥기에 어린시절을 보낸다. 그는 <성서>의 삽화작업을 하였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하얀 예수>와 같은 작품에서 성경 인물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이 작품에서 샤갈은 인류 역사 내내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나치로부터 박해 받은 유태인들의 고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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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갈의 <생일>


2) 인상주의 해체기의 미술사 흐름

샤갈이 활동했던 20세기 초반은 인상주의의 해체와 현대미술의 탄생과 발전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격변기였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야수파,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등 그와 동시대에는 수많은 미술 사조들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이 가운데서 샤갈의 그림이 어떤 유파에 속하는지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당시 존재했던 여러 유파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으며 독자적인 그림 세계를 구축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의 많은 유파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음에는 분명하나, 어느 하나만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갈의 그림에서 분명한 것은, 그의 그림이 인상주의 이후의, 사물의 정확한 묘사를 의도적으로 거부한 ‘반인상주의 ’라는 현대 미술 흐름에 속하였다는 사실이다.

먼저 인상주의라는 집단적 사조가 해체되는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상주의는 사물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며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마네의 <발코니>에서처럼, 그 순간 보이는 것은 그리고,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그리지 않았다. 인상주의 이전까지는 멀리 조망하는 그림에서 조차 사람들의 얼굴을 디테일하게 그리거나 선명하고 뚜렷한 윤곽선을 등 회화의 규칙이 굳건했다.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인상주의는 디테일보다 순간의 솔직함을 담은, 다소 발칙한 그림을 그림으로써 이 규칙을 최초로 부수게 되는 것이다. 인상주의가 처음 태동했을 때에는 규칙을 어긴 그림으로써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점차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모여 하나의 유럽 예술 사조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인상주의는 표현 방법이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음은 분명하나, 이들도 어디까지나 화가가 사물을 더 잘 표현하고자,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다.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고자’하는 르네상스 이래의 미술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이러한 목적을 그대로 가져가는 인상파 예술을 ‘400년 이상 계속되어온 발전과정의 정점이자 종착점이었다 ’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에 대한 묘사라는 예술의 목적이 인상주의 이후에 와서 부정된다. 이제 화가들은 ‘현실의 환영’이 아닌 고의적인 왜곡을 통해서 작품에 자신의 생각을 담으려고 하는 것이다.  현실을 더 잘 묘사하기 위해 인상주의 기법이 생겨났다면, 이 시기부터 화가들이 각자 그리고자 하는 ‘현실’이 보다 주관적이고, 강조점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미술에 수학적 원리가 가미된 정점에 해당하는 원근법을 포기하며 입체감과 색체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고심한 세잔과, 역시 의도적으로 왜곡된 형상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그림에 표현한  고흐를 시작으로 표현주의, 입체주의, 야수파,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등의 20세기 초 현대미술 사조들이 제창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사조에서 추구한 ‘현실’은 각자 천차만별이었고, 같은 유파 안에서도 동질성이 없게 느껴질 정도로, 20세기 초반은 예술의 다양성이 꽃피우는 시기였다.

고흐와 같은 시대에 고갱은 세속적으로 물들어 가는 유럽에서의 그림 생활에 환멸감을 느껴, 프랑스를 떠나 타히티로 가서 섬 주민들과 교류하며 ‘단순하고 솔직한 어떤 것’을 추구한다. 그는 자신이나 자신의 그림이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야만적’인 색채와 소묘만이 타히티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아이들을 올바로 묘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고갱의 그림들은 예술이 이전처럼 아름다운 화음의 색상이나, 섬세한 표현 없이도 깊은 의미를 담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적인 원근감이나 입체감을 담지 않더라도, 소박하고 때 묻지 않은, 인간 내면을 건드리는 투박한 그림들이 비로소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시작이 된 것이다. 고갱의 ‘야만적인’, ‘원시적인’ 표현방식의 탄생 이후 인상주의나 입체주의의 복잡한 기법이나 이론을 버리고 단순한 방식으로 그린 작품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례로 ‘앙리 루소(Henri Rousseau)’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전문적인 화법이나 지식 등을 전혀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좋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비로소 표현 기법에 얽매이지 않은 심미적 특성과 그림이 담고자 하는 내용이 좋은 그림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미술사조의 변화 덕분에, 샤갈의 작품이 탄생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원근법이나 비례 법칙을 무시하였고, 색채와 질감에 중점을 둔 표현기법과, 상상 세계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한다. 주제나 형태나 모두 기존의 주류 미술과는 차별되는, 그 이상의 비현실성을 가진다. 현실의 묘사를 목적으로 한 인상주의까지의 측면에서 보면 연인이 허공을 나는 샤갈의 <도시 위에서>와 같은 작품은 허황되기 그지없으며, 세잔이나 고흐가 추구한 의도적인 현실의 의도적인 왜곡 이상의 것이다. 샤갈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원칙을 갖춘 입체주의나 감정만을 극도로 표현한 것도 아닌, 자신만의 세계이다. 이러한 현실묘사를 거부하는 미술사적 흐름의 심화 없이, 샤갈은 사람을 마치 새처럼 허공에 띄울 수 없었을 것이다. 



3) 샤갈 작품의 특징성

샤갈의 작품에는 신화적이고 동화적이며 몽상과 같은 세계가 그려진다. 작품의 구도도 예사롭지 않으며, <나와 마을>에서 거대한 소 위에 소가 있고, 거대한 초록색 얼굴이 그려진 것이나, <비테프스크 위의 누드>에서 마을 위에 여성의 몸이 둥둥 떠다니는 등은 현실의 세계라고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샤갈과 같은 시기에 무의식을 바탕으로 환상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주의가 활동하였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근거해서, 무의식과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였고, ‘자동기술법’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러한 자동기술법을 사용한 초현실주의와 샤갈의 환상 세계는 차이가 있다. 먼저 샤갈의 예술은 무의식에 근거하고 있으나, 그는 창작에 있어 의식적 의지를 완전히 놓지 않고, 의식적 선택으로 미적 가치를 부여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 그리고, 샤갈의 환상세계는 초현실주의가 무의식적인, 그 중에서도 성적 욕망을 토대로 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자신의 고향마을과, 고향에서의 접한 신화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 환상세계를 꾸려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일종의 환상세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을지라도, 환상세계의 구체적 모습과 표현 과정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

앞서 살펴본 인상주의 이후 미술의 내용적, 기법적인 특성의 변화는 샤갈의 회화가 탄생하던 시대적 토양의 형성 배경이 된다. 사소하고 원시적인, 소박한 무언가를 담고자 했던 고갱과 마찬가지로, 샤갈 또한 현대문명과는 괴리된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고향의 향수와 같은 소박한 자신의 경험 세계를 그림에 담았다. 일생을 전쟁과 사회 격변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며, 샤갈은 자신에게 소중한 소박한 환상세계를 그리는 활동을 나름의 도피처로 삼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대 문명이 낳은 전쟁의 파괴성이나, 자본주의의 상업성으로부터의 나름의 도피이며, 고갱이 유럽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타히티로 떠난 것과 다르지 않다. 고갱이 모든 것을 버리고 순수함을 찾아 떠났다면, 샤갈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인간성이 상실된 참혹한 세계에서 나름의 치유 방법으로써, 화려한 색감과 기교 없는 단순한 화법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해가고자 한 것이다. 현대 문명의 문제와 모순을 하나하나 짚어 반박하는 것도 대응 방식일 수 있으나, 오히려 이처럼 참혹한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 나감으로써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간직하는 것 또한 세계에 대한 하나의 대응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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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갈의 <비테프스크 위의 누드>


<서양미술사>에서 곰브리치는 현대 미술가들은 ‘단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의 모사품이나 단순한 장식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그럴 듯하고 영속적인 어떤 것’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대 미술의 특징은, 인상주의 이후 현실 묘사를 거부한 이들에 의해 추구된 보편적 특징이다. 다만 유파에 따라서 극도로 강조하여 추구한 바가 달랐을 뿐이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의 욕망이 ‘진정한 영속적인 현실’ 이라고 보았고, 세잔은 ‘입체감의 표현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림으로써 현대미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고, 샤갈은 동화적, 상상적, 낭만적 세계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펼쳐냄으로써, 추악한 현실보다 영속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각자의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화가들은 끊임없이 시대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작품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그 어떤 화가들보다도 가장 개인적이고 시대 조류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샤갈의 작품세계도, 그 나름의 시대적 이유와 필요가 있었다. 미술작품이라는 것이 화가의 정신을 담은 것이고, 화가는 무인도에 홀로 사는 것이 아닌, 시대와 사회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과, 시대의 필요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이기에 그러하다.




 
참고문헌
1. 최예윤, 「마르크 샤갈의 작품에 나타난 상상력에 대한 연구」, 홍익대학교, 2006
2. 아르놀트 하우저, 백낙청 염무웅 역,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개정 2판』, 창비, 2016
3. E.H. 곰브리치, 백승길 이종승 역 『서양미술사』, 예경, 1997
4. 강미화, 「샤갈 작품에 나타난 무의식의 상징에 관한 연구」, 한국예술심리치료학회, 2011


[송세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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