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6.1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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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2017 인디포럼에서 7번째 신작전 < 빈자리 >를 봤다. 그 중 두 번째로 수록된 단편은 정현정 감독의 <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종로구 익선동 한 켠에 자리한, 영업 종료를 코앞에 둔 세탁소와 주인, 동네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낡은 건물들이 밀집한 골목 모퉁이에 위치한 세탁소는 올해로 개업 23년을 맞았지만, 동네에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오른 임대료 때문에 며칠 뒤 문을 닫을 예정이다. 카메라는 가만히 서서 세탁소에 들르는 주민들, 세탁소 사장님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기록한다. 폐업이 급작스러운 결정이었는지 사장님은 만나는 주민들마다 기간 내에 세탁물을 찾아가라고 당부하고, 여느 날과 같이 세탁소에 들른 주민들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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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장님은 이미 한참 속앓이를 하고 나서인지, 안타까워하는 주민들의 말에 약간씩만 동조할 뿐이다. 일상 같은 동네의 풍경에 비해 가끔씩 길을 물어보며 지나가는 관광객들은 어딘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곧 영업을 종료할 예정이지만, 세탁소의 풍경은 이전과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인다. 다림질을 하고, 수선을 하고… 단지 하나가 추가됐다. 옷을 맡겨 놓은 주민들이 문을 닫기 전에 찾아갈 것인지 걱정하고, 찾으러 오지 않으면 가져다 주는 일. 긴 세월 자리를 지켰던 세탁소의 23년은 그렇게 차곡차곡 정리되어 간다.

 몇 번의 클로즈업을 빼고는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질의응답 시간 감독의 말에 따르면 최대한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방해도, 개입도 하지 않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런 담담한 태도가 오히려 감정을 자극했다. 감독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카메라를 드는 것밖에 없었다고… 그 심정이 너무 와 닿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우리는 너무 무력하다. 며칠 뒤면 사라질 세탁소의 담담한 풍경은 죽음을 앞두고 물건을 정리하는 환자 같다. 환자가 담담할수록 그의 가족과 친지는 화가 날 것이다. 그를 데려가는 세상을 원망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의 화면을 통해 우리는 그대로를 들여다 본다.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도 그대로 느낀다.

 한 주민은 그 동네 다른 세탁소의 험담을 하며, 친절하고 수선이나 관리도 너무 잘 해주는 곳이었는데 문을 닫게 되어 아쉽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그 동네에서 제일 잘 하는 세탁소였다는 뜻이다. 이곳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이제 좋지 않은 세탁소로 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 무엇이 생기든, 그 세탁소가 그대로 영업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똑같다. 그러니 이 곳은 대체 불가능한 장소이다. 건물 주인에게는 그다지 큰 이득이 나지 않는 애물단지였겠지만, 그 동네가 삶의 터전인 주민들에게는 일상의 일부가 되어 버린 삶의 양식인 것이다. 건물주 한 명과, 그 건물을 포함한 지역 거주민들의 입장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젠트리피케이션에 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동네가 상업화된다는 것은 멀리서 보면 아무 상관 없는 일이거나, 좋은 일이다. 깨끗하고 세련되어서 사진 찍기 좋은, 놀러 갈 곳이 늘어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원주민들은?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고, 몰려드는 관광객에 쓰레기와 소음 공해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망리단길을 예로 들면,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있는 망원동에 만들어진 새로운 상업 지구인데, 요즘 말로 힙한 감성을 갖춘 가게들이 점차 생겨남에 따라 ‘힙’한 동네로 소문이 났다. 아직은 원래 동네 느낌과 상업적인 느낌이 공존하는데, 안타깝게도 몇몇 가게들은 벌써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사라졌다. 그 중 하나가 철물점이다. 한 주민은 철물점이 없어진 후 재료를 사려면 멀리 가야 해서 너무 불편하다고 말한다. 철물점도 어떤 상업적인 시설로 대체 불가능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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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후된’ 지역들에 얼마나 많은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려야 사람들은 만족할까? 땅의 속살이 보일 때까지 금광을 파는 것처럼 모든 지역을 싸그리 개발한 후에? 모든 사람이 집 앞 반경 10미터 내에 편의점을 가지게 될 때면 멈출까? 내가 사는 동네에도 이미 많은 것들이 없어졌다. 어릴 적 매일 가서 바닥에 주저 않아 책을 읽던 만화방, 뜨개질할 실을 샀던 상가, 음반을 사던 가게, 헌책방, 안경점… 프렌차이즈가 많이 생기면 발달한 지역이 되고, 젊은 감성의 개인 가게가 많이 생기면 힙한 동네가 된다. 어느 쪽이든 사람들이 몰리고 유동 인구가 많아지게 되면 그 지역은 상업화되며, 주민들의 주거권이나 생활권보다는 이익 창출이 중심이 된다.

 건물 주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세탁소 사장님은 세탁소를 할 곳이 있냐는 물음에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힙한 동네를 좋아해 찾아 오는 사람들, 동네가 활발해지고 편리해지기를 바라는 주민들, 좀 더 높은 이익을 바라는 집주인들. 잘못을 한 사람은 없지만 그 모든 작용의 결과로 갈 곳 없는 사람들은 늘고 있다. 그리고 개발은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벌써 새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희망적인 것은 정책 중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공약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실행되어 완전히 제 기능을 하면 좋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사라지는 것들을 똑바로 마주 본 사람이 제대로 그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딱딱한 단어가 아니라, 사라진 세탁소, 철물점, 그리고 그 주인들, 주민들 한 명 한 명을 들여다 보기를. 적어도 카메라를 들었던 감독의 시간만큼은 느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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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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