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주 올레여행, 놀멍, 쉬멍, 걸으멍 [문학]

글 입력 2017.06.1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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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제주도 여행을 굉장히 자주 가신다. 어느 정도냐 하면, 거의 한 달에 한 번 수준이다. ‘제주도에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거야~?! 왜 그렇게 자주가..?’ ‘이번에 또 가..?’라고 물어보게 될 정도로 자주 갔다. (여담이지만, 다음달에도 또 가신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제주도는 너무 매력적이고, 마음이 편안해 지는 곳’이기 때문에 자주 간다고 하셨다. (물론 엄마의 고향은 제주도가 아니다)

물론 제주도는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인터넷을 통해, 친구들의 SNS사진을 통해 본 제주는 소위 말해 ‘힙한’ 곳이었으니까. 카멜리아 힐, 수국 축제 등 사진을 찍을 곳이 넘쳐날 곳이기도 하고, 제주 곳곳에는 인스타 감성이 넘쳐나는 카페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올해 초 가족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할 때에는 기대도 많이 되었었다. 학창시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게는 제주도 첫 방문이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 접한 사진 찍을 스팟들에 가서 사진 찍을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매달 제주도를 방문하는 우리 엄마는, 그런 곳에 절대 방문하지 않았다. 5박 6일이라는 나름 긴 일정 동안 방문한 곳은 오름, 오름, 오름, 오름.. “제발 카페좀 데려가 줘!”라고 외치게 될 정도로 엄마는 제주도의 자연만을 찾아다녔다. 제주 단골인 자신의 안목을 믿어보라며 여러 오름을 오르고, 산책로를 다니고, 마지막 날에는 장장 8시간동안 올레길도 걸었다.

올레길을 걷기 전에는, 엄청 떼를 썼다. “나는 리치 망고에 들어가서 망고 주스를 마시고 싶어” “나 이런 카페 찾았는데 가서 좀 쉬고 그러고 싶어” “제주도까지 와서 뭔 등산이야” “오설록 녹차밭 가서 아이스크림 먹고싶어..” 등의 온갖 투정을 부렸다. 엄마는 “제주도에 그러려 온게 아니다”라며, “다 던져두고 제발 그냥 걸어보자”고 나를 설득했다. 어차피 엄마와 아빠가 운전해주는 차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신세였기에, 엄마 아빠를 따라 걸었다.

심술 가득한 마음을 안고 걷기 시작했으나, 곧 그 마음은 수그러들었다. 걸으면서 본 제주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예쁘기로 유명한 코스를 걸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2월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자연과 함께하며 걸으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었다. 땀이 나고, ‘이걸 내가 왜 걷지’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잠시 핸드폰을 넣어 두고 풍경을 보며, 사람 사는 것을 보며 걷는 것은 꽤나 여유로운 일이었다. 올레길의 거의 마지막즈음에 나왔던 외돌개의 풍경은 그 길을 걸으며 투정부렸던 마음을 싹 가시게 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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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험을 가지고 이 책을 읽으니 저자 서명숙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녀는 스페인의 유명 순례길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올레길을 떠올렸다 한다. 스페인 북부의 자연은 아름다웠지만, 이런 아름다운 자연은 제주도도 가지고 있다며. 또, 만들어진 길만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 길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우리는 이곳에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해. 누구나 우리처럼 산티아고에 오는 행운을 누릴 순 없잖아.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까미노를 만드는 게 어때?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머리에 번개를 맞은 기분이었다. 만들어져 있는 길만 길이라고 생각하던 나. 우리나라엔 왜 아름다운 걷는 길이 없나, 불평만 일삼던 내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찾아왔다. 아, 내가 직접 길을 만들 수도 있구나,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어릴 적 걷던 내 고향 제주의 길을 내내 떠올렸는데...... 그곳에 길을 내면 되겠구나. 제주올레의 씨앗이 뿌려진 순간이었다.

- <제주올레여행> 中



<책에는 그런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마음과, 제주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제주도는 단순히 SNS와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이미지가 다가 아닌, 마음이 편안해지고, ‘쉴 수 있는 공간’임을 더욱더 확신하게 된다. 놀멍, 쉬멍, 걸으멍, (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바다를, 산을, 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행복을 찾게 될 수 있는 그런 곳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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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올레 길을 걷다 보니 제주의 속살이 궁금해졌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통해서 볼 수 있는, 이미지를 통해 소비되는 상업적인 제주가 아닌, 돌담을 끼고 길이 이어지고, 바다가 있고, 바람이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제주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제주의 올레길을 다시 한 번 걷고 싶어졌다. 놀멍, 쉬멍, 걸으멍.


[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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