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악을 손에 쥐는 방법들 [문화전반]

CD앨범의 진화
글 입력 2017.06.17 23: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cd-1003342_960_720.jpg
 

음악듣는 걸 좋아한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심란한 마음은 흐릿해지고 즐거움은 선명해진다. 얼마 전, 우연히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노래를 랜덤으로 재생하다 제이슨 므라즈의 'High Life'가 흘러나와 추억에 잠겼다. 'High Life'가 수록된 제이슨 므라즈의 앨범 < We sing We dance We steal things >는 내가 10년전, 내 용돈으로 처음 샀던 CD앨범이라 더 특별하다. mp3도 구식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굳이 따지자면 mp3세대지만 한때는 CD앨범을 꽤 열심히 샀었다. 왜일까. 아마 '나 음악 좀 듣는다' 티내고 싶은 허세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게 아니라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트랙리스트를 보며 두근거리다 비닐을 조심스럽게 뜯고 CD를 재생하던 시간. 그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음반을 산지도 참 오래된 것 같다.


music-1163286_960_720.jpg
 

라디오에서 나오는 한 곡의 음악이 소중하던 시절,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테이프나 CD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가 있어야 했던 시절을 지나 음악이 음원의 형태로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오가는 지금,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음반을 잘 사지 않게 된 건 나 하나만의 변화는 아닐 것이다. 개인의 변화가 아닌 시대의 변화이다. 실제로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본격적으로 음악이 온라인에서 취급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음반 판매량은 눈에 띄게 줄었다. 당장 2016년 음반판매량을 봐도 53만장이 팔린 방탄소년단의 정규 2집 < WINGS >가 전체 음반 판매량 1위로 90년대 김건모가 <잘못된 만남>이 286만장 팔렸던 것과 비교하면 그 하락세가 뚜렷하다.


201611030822339910_1.jpg
그룹 '빅스'의 앨범 '크라토스'에서 볼 수 있는 홀로그램 영상


많은 뮤지션들이 이런 흐름 속에서 오프라인에서 앨범 내기를 포기하고 디지털 싱글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뮤지션들이 오프라인에서의 앨범을 포기한 건 아니다. 대신 시대가 변함에 따라 CD앨범도 변했다. 음원 다운로드나 콘서트가 뮤지션들의 주수입원이 됨에 따라 음악 그 자체보다는 음악에 따라오는 비주얼이나 컨셉같은 요소가 중요해진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급증한 아이돌 그룹들은 이런 변화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비주얼적인 요소와 독특한 컨셉을 적극적으로 어필해 큰 인기를 끌었다. 비주얼적인 요소와 독특한 컨셉은 이들의 음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화보집이 들어있는 앨범, 멤버들의 랜덤싸인이 들어있는 앨범이 등장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각 팀마다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앨범의 모양도 천차만별이 되었고 다양한 기능을 넣기 시작했다. 더이상 CD앨범은 네모나지만은 않다. CD앨범에도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아졌다.


01-이랑-신의-놀이_retouch-1280-sRGB.jpg
책과 함께 CD가 아닌 음원다운로드 코드가 들어있는 이랑의 <신의 놀이>


또 다른 뮤지션들은 '음악을 담는 그릇'이라는 CD앨범의 단순한 기능적 측면을 넘어서 음악을 조금 더 독특하게 소유하고 뮤지션과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CD앨범을 고안했다. 지난 2015년 루시드폴은 자신의 음반을 자신이 농사지은 귤, 자신이 만든 동화책과 함께 홈쇼핑에서 생방송으로 판매했다. 준비된 수량이 모두 완판될 정도로 반응은 뜨거웠다. 유통 방식에 변화를 주어 성공한 것이다. 작년에 이랑이 발매한 일종의 북앨범 <신의 놀이>도 구성이 독특하다. 북앨범은 그 전에도 다른 뮤지션들이 꾸준히 시도했기 때문에 특별한 게 없어 보이지만 이랑의 앨범은 CD가 들어있지 않고 대신 음원다운로드 코드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예 CD가 없는 앨범인 것이다. 최근 지드래곤이 발매한 미니앨범 또한 그렇다. USB상태로 판매되는 앨범은 USB를 구매하면 그 안에 노래를 다운받을 수 있는 링크가 들어있는 식이다. CD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이랑과 지드래곤의 앨범을 'CD앨범'이라 부를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제쳐두고 오프라인에서 음악을 소유하는 방식이 바뀌어 간다는 건 분명하다.


turntable-1328823_960_720.jpg
 

앨범은 뮤지션이 대중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한 편이다. 각 트랙, 그리고 그 트랙이 배열된 순서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는 음악앨범과 책은 비슷하다. 두가지 모두 시대의 변화를 정면으로 맞고 있다. 책의 경우, 전자책이 등장했을 때 종이책이 없어진다는 얘기가 많았지만 아직까지 종이책은 건재하다. 과연 앨범CD는 어떨까. 아니, 이미 변하고 있는 와중에 '앨범CD'라는 표현보다는 '오프라인에서의 앨범'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오프라인 앨범은 모습을 계속 바꿔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더 진화할까 아니면 아예 역사 속으로 소멸하고 오직 온라인으로만 음악을 소유하는 세상이 올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소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누군가는 여전히 음악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소유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손에 쥔 채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길 원한다. 온라인에서 음악을 저장하는 것만으로 그 느낌을 충족시켜줄 것 같지는 않기에 오프라인에서의 앨범은 그 형태는 변해갈지언정 계속 생명을 이어나갈 것 같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음악 듣는 사람들의 즐거움일 것이다.




김소원.jpg
 

[김소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