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로크의 진수를 맛보다, 얼티밋 카운터테너 with 세종솔로이츠

글 입력 2017.06.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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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의 전당에 도착해서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 얼티밋 카운터테너 >에 대한 생각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스스로 클래식을 조금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첫 순서에 세종 솔로이스츠가 등장해서 헨델의 콘체르토 그로소 사장조를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물론 모르는 곡이었지만 그 사실에 상관 없이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화음에 빠져들었다. 해외 클래식계에서도 극찬 받는 앙상블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각 템포에 따라 단원들의 몸이 곡선을 그리며 각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곡이 끝나는 순간 너무 아쉬웠다. 이런 곡을 작곡한 헨델도 천재지만, 그것을 이처럼 정확하게 재현한 세종 솔로이스츠의 실력에 진짜 입이 딱 벌어졌다.

 여태까지 오케스트라가 주인공인 무대보다 뮤지컬이나 오페라 무대 아래의 좁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더 많이 봤기 때문에, 처음에는 지휘자가 없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거기다 대형 오케스트라가 아닌 현악기로만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의 무대는 처음이었는데, 현악기만으로도 이처럼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고 마치 곡예사가 줄타기를 하듯 강약과 속도를 조절하는 현악기의 매력을 톡톡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휘자가 없는데도 한 몸인 것처럼 움직이는 앙상블이 정말 압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지휘자가 없어서 더 합이 잘 맞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재즈처럼 한 곡 안에서 다른 파트끼리 밀고 당기면서 공을 던지고 받듯이 연주했는데, 지휘자가 아니라 단원들이 주체가 되었기에 그 전환이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헨델의 콘체르토 그소로가 끝난 후에는 세계 3대 카운터테너인 데이빗 대니얼스의 무대가 펼쳐졌다. 개인적으로 헨델 < 로델린다 > 중 ‘죽음의 공허한 영광이여… 어디에 있는가, 나의 사랑’이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제되고 정석적인 느낌의 목소리와 느리고 장엄한 반주, 깊은 슬픔을 노래하는 가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곡들도 다 좋았다. 괜히 세계 3대 카운터테너가 아닌 만큼 모든 곡에서 템포, 분위기, 가사, 기교, 음정 특히 고음을 정확하게 소화하는, 카운터테너의 정석이라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세종 솔로이스츠의 완벽한 연주까지 더해져 거의 음원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혼란스럽네 충실하지 못한 배우자여’에서는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왕 베르타리도의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이 피부로 전해져 온다. 치솟는 맥박과 감정을 형상화한 듯한 현악 진행과 카운터테너의 음성을 들으면서 바로크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무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베르타리도의 정서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움직이는 광경은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이처럼 데이빗 대니얼스의 해석으로 풀어낸 무대는 바로크 음악의 정석이라는 느낌이었는데, 뒤이어 펼쳐진 크리스토프 뒤모의 무대는 그와는 상반된, 바로크 음악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듯 했다.

 크리스토프 뒤모는 데이빗 대니얼스에 비해 조금 더 유려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이고 강인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뭔가를 묘사할 때 이렇게 많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정말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다. 다른 곡들도 좋았지만, 특히 헨델의 아리오단테 중 ‘의무, 정의, 사랑이’에서 크리스토프 뒤모가 가진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났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까지도 악기인 것처럼 강약과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도 호흡을 잃지 않는 점이 굉장히 대단했다. 역시 괜히 떠오르는 신예가 아니었다. 바로크 음악이라는 선을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곡을 해석하는 것 같았다. 전통과 현대가 그의 목소리를 통해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두 카운터테너도 대단하지만, 역시 현악 앙상블도 이번 공연의 동등한 주인공이라고 느꼈던 이유는, 둘의 목소리를 부각하면서도 뒤쳐지거나 너무 튀지 않게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화를 중시하는 바로크 음악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세종 솔로이스츠의 덕분이었던 것 같다. 가장 기대했던 듀오 < 오너라, 너 예술의 아들들이여> 중 ‘트럼펫을 울려라’에서도, 선율을 던지고 받으면서 곡을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두 카운터테너의 딱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가면서 둘의 목소리가 충분히 부각될 수 있도록 연주한다고 느꼈다. 퍼셀의 샤콘느 사단조에서는 고음부의 바이올린이 절정으로 치달음과 동시에 저음부가 바통을 이어 받아 곡을 진행했는데 공을 위아래로 주고 받는 듯한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뿐만 아니라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비발디의 협주곡에서도, 뛰어난 실력의 바이올리니스트 두 명을 앞세우고 역시 과하지 않게 뒷받침함으로써 조화를 이루어 낸 점에서 단원들의 역량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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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카운터테너 데이빗 대니얼스, 크리스토프 뒤모, 그리고 둘의 전혀 다른 목소리를 바로크 음악이라는 하나의 형태로 녹여낸 세종 솔로이스츠 모두가 이번 공연의 주인공이었다. 노래하는 인물만 앞세우지 않고 모두가 무대 위에서 동등하게 빛난다는 점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이들이 만들어낸 선율은 독립적으로 진행되면서도 교차되고 교환되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이처럼 바로크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조화’라는 가치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적어도 무대 위에서만큼은 모두 같은 위치에서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전적이라고만 생각했던 바로크 음악이 생각보다 무척 근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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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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