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야수는 예술로 군림한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전

글 입력 2017.06.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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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는
예술로
군림한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전


poster.jpg

 
‘야수의 그림은 색채로 포효한다.’ 민망하지만, 제 프리뷰의 제목입니다.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는 야수파의 거장, 모리스 드 블라맹크를 설명하기 위해 썼던 제목이죠. 나름대로 야수파의 느낌을 잘 살렸던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제목인데…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이전 글의 제목이 민망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색채로 포효하는 야수는, 적어도 전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모리스 드 블라맹크 전은 ‘야수파의 거장’ 블라맹크의, 야수파 이후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야수파의 거장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야수파가 절정일 때의 그림은 단 한 점도 보여주지 않다니.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시를 보면 볼수록 블라맹크라는 사람을 ‘야수파’라는 한 단어로 정의하고자 했던 제 자신이 너무 편협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수파 이후 그의 그림엔, 또 블라맹크만이 가졌던 여러 매력들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전시는 세잔의 시기, 1차 세계대전 이후, 사르트르 근교·노르망디·브루타뉴 이렇게 3개의 섹션으로 나뉘는데요. 여기서 굳이 또 나눠보자면 세잔의 시기와 1차 세계대전 이후 초반부, 1차 세계대전 이후 후반부와 나머지로 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양한 색과 구도를 사용하고 점점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던 시기와,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해 거기서 발전을 시켜가던 시기로요. 두 가지 모두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더 인상 깊었던 후반부를 중심으로 리뷰를 써 보고자 합니다.



평면인듯 평면아닌 그림


52 - Retour de peche. Bretagne, 1947, oil on canvas, 60 x 73 cm.jpg
 
임파스토[명]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하여 질감 효과를 내는 회화기법


블라맹크의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을 들자면 임파스토였습니다. 아니, 임파스토라는 단어가 약하게 느껴질 정도였죠. 블라맹크의 그림은 ‘두껍게 칠했다’라는 말로는 부족했습니다. 차라리 ‘두껍게 얹었다’라고 표현하는게 더 적절하다고 느껴졌죠. 그만큼 유화물감이 많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보통 다른 그림들은 2D에 가깝지만, 블라맹크의 그림은 일정부분 3D였다고 할까요.

때문에 저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매 그림마다 고개를 숙이거나, 약간 앉듯이 해서 그림을 올려다봤었습니다. 물론 올려다볼정도로 엄청난 두께감을 자랑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올려다봤을 때 미묘하게 볼록 솟아있는 것들을 보면 어쩐지 그림의 다른 면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안 된다는 건 알지만, 한번쯤 그 질감을 손으로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블라맹크의 그림에서 이 임파스토 기법은 그저 ‘물감을 두껍게 올렸다’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블라맹크가 그저 고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가 표현하는 것들을 보다 더 잘 표현해내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두껍게 올린 유화 물감은 어느 그림에선 무겁게 쌓인 눈이 됐고, 어느 그림에선 건초더미가, 어느 그림에선 파도가 됐습니다. 그림에서 ‘양감’이 있으면 더 좋을 공간들에 딱 알맞게 올린 유화물감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보다 더 생생하게 표현해낼 수 있게 했죠.



눈이라고 다 같은 눈은 아니다


30 - Rue de village en hiver, 1928-30, oil on canvas, 60 x 73 cm.jpg

 
블라맹크는 설경, 즉 눈이 있는 풍경이 자신만의 심성을 드러내기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흑백의 대비를 자주 사용했죠. 눈이 덮인 마을과, 그 마을을 덮고 있는 어두운 하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그의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인지 블라맹크의 그림엔 눈 모티프가 정말 많이 사용됐는데요. 전시의 반 정도가 설경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았습니다. 좋아해서 잘 그리게 된 건지, 잘 그려서 좋아하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블라맹크의 눈 표현과 하늘 표현은 정말 기가 막혔거든요. 제가 굉장히 인상 깊게 봤던 것은, 붓에 물감을 듬뿍 찍어 일직선으로 그은 듯한 눈의 표현이었습니다. 눈 온 다음날 길을 걷다보면 담장에 소복하고 또 정갈하게 쌓인 눈을 볼 수 있는데요. 일직선으로 그어진 유화물감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정갈하게 쌓인 눈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블라맹크 그림 속 눈 덮인 풍경을 제가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바닥에 잔뜩 쌓인 눈이나, 흙과 만나 빛을 잃은 눈에 대한 표현도 무척이나 능숙했습니다. 눈이 쌓이고 약 반나절 쯤 지나면, 조금씩 녹기 시작하는 눈이 흙과 섞이며 점점 색이 바래가는데요. 어두운 색과 미묘한 경계를 이루고 있는 눈은 마치 그를 표현해낸 듯 했습니다. 사람이 자주 드나들 것 같은 거리의 눈은, 사람의 발에 의해 점점 색을 잃어가는 것을 표현한 듯 했구요. 나무에 핀 눈꽃은 천 같은 것에 물감을 묻혀서 찍은 듯 했습니다.

담장에 쌓인 눈은 붓을 일직선으로 그어서, 바닥에 쌓인 눈은 물감을 듬뿍 올려서. 색을 바래가는 눈은 적절하게 어두운 색과 섞어서. 나무에 핀 눈꽃은 물감을 뭍힌 천을 여러번 찍어서. 같은 ‘눈’인데도 이토록이나 다양하게 표현해내니,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보는 다양한 눈의 모습들의 모습을 그의 그림에서 다 본 듯한 기분이 들었죠.



블라맹크가 담뿍 묻어나는 글


27 - Vlaminck dans son atelier de La Tourilliere vers 1948-50 (dans les annees 1940).jpg
 

블라맹크는 화가일 뿐 아니라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했는데요. 그런 만큼 그의 글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엔 그림과, 그에 맞는 그의 글을 같이 배치돼 그의 세계를 더 면밀하게 느낄 수 있었죠.


"나는 평생 이런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시간의 전개를 멈춘 채,
캔버스에 고정시키기 위해 색채를 사용하여
말 또는 붓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또 다른 풍경, 소재, 물체를 활용해서
영원히 묻혀버리고 사라져 버릴 것으로 믿었던 감정들이
작품을 바라보는 이의 눈에서 재현되도록 노력했다,"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불러일으키는 것만이 예술 작품이다.
그것은 질적인 문제다.
다시 말하면, 예술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특질은, 
그것을 희귀거나 평범한 것, 혹은 저속하거나
고상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에 있다."


"나는 어떠한 체제에 순응하지 않으며
고착된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나는 절대적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하나의 터치도 캔버스에 허락하지 않는다."


"사실상 가장 평범한 주제가
예술가에게 가장 위대한 작품의 모티브를 제공한다.
단, 그 예술가가 자신의 감정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이해시킬 수 있다면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신비다."


실제 세상이 어땠는지보다, 자신이 느끼고 바라보는 세상을 그리고자 했던 그. 그 순간의 감정을 담으려고 했던 그. 세잔의 영향이나 고흐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후에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던 그. 그의 글은 그림 못지않게 수많은 그의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그림을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구요. 사진을 찍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전시라서, 이 모든 글들을 옮겨오기 위해서는 열심히 적는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수많은 글들을 열심히 담아올 정도로 그의 글에선 ‘블라맹크’라는 사람이 담뿍 묻어났습니다.



블라맹크, 야수


사실 전시에선 그의 ‘야수파’적인 성향은 거의 보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블라맹크를 떠올리면 ‘야수’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의 그림은 ‘야수파’의 그것이 아닐지라도, 여전히 야수와 같았으니까요. 형식과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담으려 했던. 거친 필치를 보여주던. 붓을 든 섬세한 야수. 세상에 두려울 것 하나 없다는 듯 당당하기만 한 그의 태도는 여유롭게 자신의 털을 뽐내는 짐승의 왕을 떠오르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의 일평생 그림인생을 ‘야수파’라는 말로 재단하기엔, 독자적인 그의 스타일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를 정의하는데 ‘야수’라는 말을 쓰기엔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색채로 포효하던 야수파의 화가는, 끝끝내 그 자신이 야수가 돼 자신의 예술세계 위에 군림했습니다. 죽을 때 까지 당당하기만 했던 그의 유언으로 글을 마쳐보려 합니다.


"난 아무것도 원한 것이 없었다.
인생은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며, 내가 본 것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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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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