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악 기우제, 비야 내려다오 [문화 전반]

비가 고플 때 듣는 노래
글 입력 2017.06.1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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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휴일에 서울을 벗어나고 나서 놀라고 말았다. 강은 개울처럼 혹은 거의 흔적도 없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미세먼지가 덜해졌다며 맑은 공기에 기뻐하던 찰나였다. 비 소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에피타이저처럼, 몇 분 맛보기처럼 내리곤 하니, 말라버린 강줄기와 땅에는 감질맛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어딘가에선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고 하니, 한번 지내보련다. 음악 기우제. 비가 오면 생각나는 노래도 풀어볼 겸. 물론 내 마음대로 준비해본 기우제니, 음악 역시 아주 주관적일 수 밖엔 없겠다. 마음에라도 비 오는 기분이 들면, 하늘에도 좀 비가 오려나.



1. Epik high - < 우산 > (feat. 윤하) / 윤하 - < 우산 >



  에픽하이 앨범을 사고 듣자마자 너무나 좋았던 노래. 많은 사람들에게도 비 오는 날 절로 생각나는 노래가 되었다. 윤하의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처음 곡이 시작 될 때 비가 내리는 것처럼 두두 거리는 소리도 좋다.  찰박거리는 빗물소리와 아련한 가사를 듣다보면, 어떤 비가 내려도 좋겠다 싶다. 워낙 소설같이 이미지가 그려지는 가사지만 가장 좋은 가사를 고르라면  '그대 없이 난 한쪽 다리가 짧은 의자'. 곡이 워낙 인기를 끌어서인지 선물처럼 에픽하이가 '꼬꼬마'  윤하에게 윤하의 목소리로만 가득찬 우산을 선물했다. '어딜 가도 떠 있는 내 작은 먹구름' 같이 새로운 가사들도 들어있는데, 두 버전 모두 비 오는 날엔 후회하지 않을 곡이다.



2. 윤하 - < 빗소리 >


  이쯤 되면 윤하 목소리가 빗소리와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곡. 우산이 비오는 날의 살짝 우울하고 아련한 센치 감성을 건드리는 곡이라면, 빗소리는 포근하고 달달하다. 비오는 날이 싫었는데 질척거리고 축축한 비마저도 너와 함께 있으면 좋단다! 빗방울이며 온 세상이 너에게 잔뜩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할만큼 달달미터지고 몽글몽글한 느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곡. 피아노가 잔잔히 멜로디를 풀어놓으면 목소리가 나즈막하게 말하듯이 울려퍼진다. 나같아도 바깐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곡.



3.  이문세 - < 빗속에서 >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많은 가수들이 불렀던 곡일 터. 이문세의 노래에는 때마다 생각나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봄 가을이 오면 괜시리 < 소녀 >, < 옛사랑 >, < 가을이 오면 > 같은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 빗속에서 >는 안타깝고 슬픈 가사인데도, 그렇게 감정을 절절하게 사정없이 몰아치지 않아서 더 좋은 것 같다. 그대를 생각하고, 이룰 수 없던 사랑이 떠올라 마음이 아파도 겉으로는 그저 터벅터벅 쓴웃음을 지으며 걸어가는 모습, 약간의 자조와 쓸쓸함. 허탈함과 불안감 같은게 그려진다.  '오가는 저 많은 사람들 누가 내곁에 와줄까요'라는 가사가 그 와중에 들리면 알고 보면 우리 모두 참 외로운 사람들같다. 나쁘단 건 아니고, 가끔 그래서 지치는 거지.



4.  김현식 - < 비처럼 음악처럼 >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멜로디에 얹어진 이 가사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책에도 첫문장이 독자를 사로잡듯, 비와 관련된 노래에서는 가장 강렬한 첫 소절을 가진 노래. 대부분 노래는 후렴을 많이 아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곡은 개인적으로는 앞 소절만 알고 후렴으로 가는 전개는 잘 몰라서 어버버했던 곡. 느낌은 빗속에서와 전반적으로 같지만, 이 쪽은 가사를 들어보면 떠난 당신을 생각하며 비를 쫄딱 맞고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아직 상처가 채 여물지 않은 사람이 토해내는 곡같기도 해서 사실을 뒤로 갈 수록 마음이 아픈 곡.



5. 타블로 - < Airbag > (Feat. 나얼)


  타블로의 앨범 열꽃은 들으면서 참 여러모로 마음이 아팠던 앨범이었다. 초반에 airbag을 듣는데 비를 쫄딱 맞고 지친 듯한 목소리로 하는 랩에 콕콕 찔러오는 랩에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싶어서. 나름 팬이랍시고 음반만 열심히 사서 들으면 대체 뭐하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곁에 혼자가 아니어서인지 꿋꿋이 잘 버텨온 것 같아서, 그리고 나서 이 앨범이 나와서 강한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곡. 강하다는 건 마지막에 웃고, 마지막에 숨쉴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워낙 가사가 아프다 보니 자주 듣지는 않지만 가끔 생각이 난다. 나얼의 목소리로 나 지금 위험해, 하면 정말 시방 위험하고 상처입은 짐승같은 느낌이다.  택시를 타고 라디오를 듣고, 기사님을 관찰하고, 밖에 비가 내리고. 이런 의식의 흐름처럼 펼쳐지는 가사가 자연스러워서 좋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많은 곡이다.

'혼자이고 싶은 걸까? 아니면 눈에 띄게 
혼자이고 싶은걸까? 내게 외로움은 당연해. 
과연 내 곁에 누군가 있다고 해서
나눠가질 내가 있을까?'

'방황하게 되는 건,
집이 없어서 혹은 갈 길이 없어서일까? 
갈 곳은 많아도 그 어디에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6. 아이유 - < Raindrop >, < 싫은 날 >



  하나는 비가 내리는 곡이고, 하나는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곡이다. Raindrop 역시 풋풋한 마음이 들어가서 좋아한다. 비는 사실 밖에서 보면 운치있고 멋지긴 한데, 맞으면 그렇게 신나지는 않는다. 요즘처럼 사선으로 비가 오곤 한다면! 습도도 높고 몸도 찌뿌둥한게 물먹은 솜같은 느낌인데 이 곡은 좀 더 뽀송뽀송한 느낌이 나서 좋다. 싫은 날은 잘 몰랐던 곡인데 추천받아서 듣게 되었다. 집에 들어가기도 싫고, 비나 내렸으면 좋겠다는데. 그런 날에 딱 맞춰 비가 내려주면 얼마나 감사할까. 발이 묶일 핑계거리도 생기고.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꼭 술을 먹지도 않았고 날이 흐리지도 않은데 그냥 마음에 비구름이 잔뜩 생기는 날이 있다는 것.



7. Brown eyes - < 이 노래 >


  발을 멈추는 이 노래, 귀를 흔드는 그 멜로디. 이미 본인들도 알고 있었던 건가 싶게 가사로 써놓은 곡이다. 뭔가 고급진 느낌이 있다. 비엔나커피나 플랫화이트를 마시는 느낌일까.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빗소리와 함께 들으면 무척 분위기 있을 곡. 커피를 물처럼 마셔왔거나, 너무 울적한 노래만 들었다면 한 번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비오는 압구정> 같은 브라운아이즈의 다른 유명한 곡도 있지만 이 곡이 의외로 생각이 많이 난다.



8.  Tamia - < Officially Missing you >


  'All I hear is raindrop falling on the rooftop'으로 시작되는 이 멋진 곡. 노래의 제목은 영어에서만 나올 수 있는 표현이지 않은가 싶다. 한글로 표현하려면 참 애매한 구석이 있는 제목이다. 그냥 그립다고 해도 시원찮아서 마음 속으로만 그리워하기도 싫어서, 아주 드러내놓고 그립다고 하다니. 멜로디가 참 예쁜데 가사를 듣다보면 많이 절절하구나 싶은 곡.



9. George Benson - < This Masquerade >


  George Benson의 목소리와 기타가 참 멋진 곡. 제목처럼 가면무도회에서 무슨 말을 할지 뭘 해야 할 지 몰라 헤매고 있는 광경은 마치 우리의 하루 같기도 하다. 무슨 춤을 추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누구나 얇은 가면 여러 개쯤은 가지고 있는 법. 사람마다 누군가의 속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 건 그 사람의 얼굴이 가면이 씌워진 얼굴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얼굴인지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10. Julie London - < Cry me a river >


  Julie London이라 하면 응당 < Sway >나 < Fly Me To The Moon >을 많이 떠올리겠지만 비가 구성지게 내리는 날은 이 곡이 더 먼저 떠오른다. 가사를 귀기울여 듣지 않아도 cry me a river, 강물처럼 펑펑 실컷 울고야 말았다는 이야기는 반복된다. 이미 혼자 강을 이룰만큼 잔뜩 울며 괴로워 한 후에 너무나 늦게 돌아온 옛사람에게 괜찮다거나 잘 지낸다는 하얀 거짓말보다 차라리 솔직하다. 나는 정말 많이 울었는데 어디 너도 한번 울어보라고. 내 마음을 좀 이해해보라고. 몽환적이고 서글픈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곡. 악기로만 연주된 버전도 많이 있지만 가끔은 목소리만한 악기가 없는 날도 있다.



11. This is the police OST - < No good >


  게임 쪽엔 어차피 능력도 없고 문외한이었지만 게임에서 생각보다 좋은 음악이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알고보니 인기 있는 인디게임인 'This Is the Police'에서 이런 곡을 넣어놓았을지까지는 상상을 못했다. 그냥 느낌이 좋아서 듣다가 가사가 하나씩 들어오는데 왜 하필 연인들은 비오는날 떠나고 돌아오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흐르는 비가 등을 타고 흐르는 한기로 찾아오는데 아마도 새삼 진실이, 현실이 생각보다 냉정하고 무서웠다는 걸 깨달아서였던 것만 같다. 그렇게 따뜻하고 포근했던 건 언제적일지도 모를 만큼 이별은 빠르고 차갑고 허탈한 것이란 것도. 잘해줘봤자 소용없는 연인은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건지 no good could be born of loving you란 말이 아른아른하다. OST를 듣다보면 게임 자체마저도 어떤 건지 궁금해질만큼 좋다.



12. Sting - < My One and Only Love >, < Angel Eyes >



  Sting이야 < Shape of My Heart > 나  < Englishman in Newyork >등 엄청 멋진 대표곡으로도 유명하지만 영화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를 접한 사람이라면, 혹은 이 곡들을 처음 듣게 되면 또 이런 곡도 있었다고 놀라워할 수도 있다. 아직 영화를 추천만 받아놓고 보지는 못했는데 비틀리고 힘든 사랑인 것만은 벌써 알 것 같다. 죽고 싶어하는 알콜중독자와 어느 창녀와의 사랑이라면. < My one and only love >는 제목만 봐도 로맨틱의 끝판왕이다. I give myself sweet surrender. 이런 가사는 천국을 오가고 봄바람이 부는 달달한 사랑을 노래하지만 스팅의 목소리는 뭔가 멋스럽게 거친 사포질이 된 느낌이 있어서 쓸쓸하고 저릿하다. 비 오는 날 좀 더 몽글몽글 달달한 버전을 듣고 싶다면 John Coltrane & Johnny Hartman버전이 더 적격. < Angel Eyes >는 가사와 노래 말투에 꽂히게 된 경우인데, you try to play it cool perhaps pretend that you don't care, 쿨한 척 하려, 관심없는 척 하려고 한다는 부분의 느낌이 무척 좋았다.



13. Stan Getz - < Autumn Leaves >


  이건 개인적으로 테너 색소폰을 좋아해서 듣기 좋은 곡일수도 있다. 가을에만 들어야 하는 건 아니고 뭔가 차곰차곰하고 서늘하면 어울리니 비 오는 날도 좋다. 색소폰은 유독 사람 목소리와 비슷한 악기라고 하던데 부드럽게 풀어지는 멋진 색소폰 소리가 뭘까, 강가 주변에서 듣던 그 소리와 무엇이 다를까 궁금하다면 더더욱 추천한다. Stan Getz는 쿨재즈 쪽이라고 하던데 많이 아는 것은 없어도 확실히 깔끔한 느낌이 있다. 펼쳐놓았던 감정을 부담없이 갈무리할 수 있는 곡.



14. Gene Kelly - < Singing in the Rain > (영화 'Singing in the rain' OST)


 이렇게 대놓고 비맞고 신나고 탭댄스를 추는 정석 같은 곡이 있을까! 비 오는 날이라고 꼭 처지고 노곤노곤하고 슬플 필요는 없다. 어쨋거나 영상과 함께 보면 더욱 신나는 이 곡은 혼자 즐거움과 신남을 뿜뿜 보여주는 에너지가 넘친다. 저 모습을 여자친구가 봤어야 하는데 아쉬우면서도 감기걸리지 않을까 상당한 걱정이 되기도 할 정도. 유투브 댓글을 보니 비가 많이 오는 유럽에서 질리도록 비올때마다 듣곤 한다는데, 그러게 그정도면 자주 들어서 지겨울지도 모르겠다. 비오는 날 들을 수 있는 노래 중 가장 활기찬 곡.



[번외] 뱅크 - < 가질 수 없는 너 >


  비와 관련된 내용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데, 괜히 개인적인 비 감성에 들어 맞는 곡이다.  뱅크, 하이니, 김연우, 정승환 등 많은 가수들의 버전이 있는데 복면가왕에서 정승환 버전을 듣고 유독 가끔 찾아듣게 되었던 것 같다.(물론 오로지 취향탓이다) 술, 그리움, 아련함, 아픔, 사랑, 쓸쓸함 비와 관련된 이미지와도 참 잘 맞아서 넣어봤다.  지금 상황에 생각보다 들어맞는 것도 같다. 비를 바라는 마음은 많지만 우리에게 시원한 비는 내리지 않으니 괜히 엮어보았다. 그럴싸한 고사는 아니었을지언정 마음은 열성으로 글을 써보았는데 하늘이 언제 한번 날잡고 싹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답답하지 않을까. 간보듯 내리는 것도. 잠깐 어정쩡하게 오는 소나기 말고. 하루종일 퐁당 비에 비에 다 젖어서 축축하고 불편해도 기쁘게 맞이해줄테니. 얼른 강을, 땅을, 마음을 흠뻑 촉촉하게 적셔주셨으면. 그래서 이 곡들도 기분좋게 날잡아 들을 수 있었으면.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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